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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서 성큼 걸어들어간
그곳에 그도 나도 있었다 옷장 속에 무엇이 있었냐 하면 오래 가둬둘 것이라 답할 것이다 --- 「권승섭, 〈새소식〉」 중에서 큰 별을 손에 쥔 아이가 차가운 얼음 강에 별을 던진다 네가 숨겨놓은 미지로부터 --- 「권현지, 〈이글루를 찾아서〉」 중에서 실업을 당했습니다. 이제 나는 더이상 어릿광대가 아닙니다. 이건 비유가 아닙니다, 어릿광대. 당신을 웃기는 사람. 당신이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짓는 사람. 뻔한 사물의 쓸모를 궁리하는 사람.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늙은 사람. 그 이야기에서 숲을 꺼내고, 책상을 꺼내고, 술을 꺼내고, 풍선을 꺼내는 사람. --- 「김안, 〈Pedrolino〉」 중에서 사랑할 땐 분홍이더니 지금 보니 잿빛이구나 말짱 타 버리고 나서야 종소리가 들린다 --- 「김안녕, 〈오늘의 요리는 볼락구이〉」 중에서 달력을 북 찢듯 사과 하나 떨어졌다 단단한 꼭지에서 말문이 터졌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빨갛게 익은 말투는 코카서스 미트라에서 온 것 신의 무지개를 통과한 것들이다 --- 「김춘리, 〈꼭지〉」 중에서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은 것들로 생겨나 있다는 것을 본다. 아니지, 결정하지 않은 결정적으로 생겨 있다는 것이지 관여하지도 않은 얼굴로 가장 나인 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인데 --- 「박해람, 〈비현실〉」 중에서 화야산 어린 아가씨들은 해마다 산정으로 올라간다. 그녀들이 귀해질수록 환호성이 따라간다. 마침내 공주들은 성채 같은 멸종도감으로 이주한다. 미인을 내준 산은 비로소 고요하다. 카메라 대신 과도를 든 아주머니들이 쑥을 캐며 웃는다. --- 「반칠환, 〈식물의 사생활〉」 중에서 창밖으로 일요일의 야구장이 이어지고 있다 청소부가 문 앞까지 날아 온 월요일을 쓸어 담는다 사탕을 입에 문 아이들이 화요일을 녹여 먹고 있다 --- 「임지은, 〈요일이 오는 순서」 영혼이 어떻게 생겼냐고 너에게 묻자 저게 네 영혼인가 날아가는 비닐봉지를 가리키면서 아니 영혼은 옥상 위에 널린 구체적인 빨래야 아니 그건 투명한 사다리 --- 「주민현, 〈네 영혼이 비닐봉지처럼 날아간다〉」 중에서 끊임없이 주위만 맴도는 인공위성 같은 아이가 내 앞에 앉아 있어요 지구의 소속인데 지구에 불시착할 수 없다고 하네요 고아도 변종도 이종도 아닌데 떠돌아야만 하는 비행 --- 「하린, 〈상담실〉」 중에서 가까이 부르며 그저 먼데 보는 것은 한마음 바라 늘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지그시 눈이 감기는 그 거리 때문입니다 --- 「진순분, 〈간격 또는 밀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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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음역대로 펼쳐지는 무수한 세계
시인 열한 명이 자아내는 경이로운 차이들의 시학 이 앤솔러지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독일어에서 ‘보살피다’라는 단어는 ‘아름답다(schon)’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보살피는 마음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의 의미가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묻는다. 무언가를 보살피는 마음이 빛바랜다면 아름다움도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한편 여기엔 반작용이 있다. 세상이 점점 다르게 바뀐다면 오히려 그 현실에는 세상 곳곳에 있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헤아리는 시인이 필요하다. 우리는 내 안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생태학 또한 충분히 탐사하지 못했다. 특히 마음생태학을 비롯해 사회생태학 그리고 자연생태학을 탐사하려는 시들이 계속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_해설 「경이로운 차이들의 시학」에서 무수한 가능성과 보살피는 마음이 만나는 곳에 시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손을 잃은 손목이 온기를 찾고 있”(「유예」)고 아이들이 “즐겁게 미끄러질 낙화를 꿈꾼다”(「이글루를 찾아서」). 누군가는 “발이 없어 도망칠 수 없”(「파지把持」고 “나를 태우고 갈 / 미지”(「미지의 세계」)를 기다린다. “왕복은 아주 가끔 일어”(「둘러대는 것들의 길이는 멀다」)나는 장소이면서 “최대한 죽은 이의 말투로”(「문상」)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거실 한가운데 산불이 번”(「대륙 산불을 끄는 법」)지는 일처럼 눈에 보이는 상황과 머릿속 일이 뒤엉키는 상황도 생기는데 “출구와 입구가 따로 없는”(「마이크 테스트」) 곳이기에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산능선 노을 내려와 딸깍, 어스름”(「숲을 켜는 화법」)을 켜면 세상이 먹빛 벨벳으로 옷을 갈아입고 고요해진다. 아무도 모르는 길로 가득한 그 세계는 수많은 단어가 가득한 또다른 다음날로 이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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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열한 명은 저마다 다른 음역대를 보여주며 다성악(多聲樂)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시인들은 저마다 아무도 모르는 길을 가고 있지만, 지금 여기 사람들의 마음생태학, 사회생태학 그리고 자연생태학의 안녕과 ‘지탱가능성’을 묻는 시적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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