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을 하나 붙여 볼까. 이경옥은 ‘시(詩)바라기’다. 누구보다 시를 많이 읽고 쓰며 몸으로나 정신으로 시를 ‘사는’ 사람이다. 친구 따라 오락실 가고 만화방 가는 아이처럼, 그의 곁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덩달아 시에 물든다. 시란 참 좋은 것이구나, 새삼 처음처럼 쓰고 읽는 흥분에 휩싸인다.
“산벚나무꽃은 순간이지요” “멈춘 것 같지만 조금씩 흐르고 있답니다”(「구름, 호수를 산책 중입니다」)라는 문장을 지나 “귤은 왜 씨가 없지?”(「귤의 시간」)라는 발견에 이르기까지 그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에는 절절함이 깃든다. 불심(佛心)이라 해도 좋고 아멘(Amen)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그 절절함 때문에 삭신이 곪고 피가 끓으며, 너덜너덜해진 삶의 한가운데서 마침내 시가 탄생한다. 어쩌랴 “믿음이란 그런” 것임을. “한 올 의심 없이/무작정 따라나서는 첫걸음”(「믿음이란 그런 거예요」)인 것을.
첫 시집 표제작에서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돌아오는 날이 길어져도/ 절대 그대들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혼자인데 왜, 가득하지」)라고 고백했건만 ‘그대들’은 아직도 이경옥 시인을 자유롭게 놓아두지 못하나 보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서는 더 목 놓아 ‘19호실’을 찾아 외치는 게 아닌지. “애타게 울음이 옮겨 다”(「한 수 배우다」)니는 풍진세상에서, 매일매일이 ‘허방’인 당신과 나의 관계 속에서, 그의 19호실이 무사하기를. 건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