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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강물을 타고 갔네
비박
시 셀프 세차장
저예산 영화 제작소
김시인 씨의 주종목, 씨름 혹은 시름
김밥천국
밤, 전당포
바이킹
수제비를 끓이는 저녁
중독
이명
억새 군락지
구름의 해산
내 이름은 빨강
빌려 읽는 사랑

제2부
자정의 희망곡

뜨거운 안녕
한 잔의 가을
출가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안부
달빛은 사라지지 않고
모항에 들다
당신도 울고 있네요
그때 우리 사랑에 확성기가 있었다면
불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미아리

제3부
빗속에서
가슴의 쓸모
오래된 골목
스위치가 없다
십 분쯤
폭설 이후
년 월 일
경주
선운사, 틈새가 많은 가을
불량 젤리
얼룩 클리닝 금지
취한 시간을 위한 말들


제4부
어떤 이유
진흙쿠키
수평선 다방
얼룩무늬나비 떼
섣달그믐
여름이 올 때
박하사탕
발작하는 구름
주저앉아 우는 여자
푸른 멍
전설이 될 모래강에게
아름다운 진화

해설__ 지속 가능한 진화,‘ 언니’의 이야기 | 노지영

저자 소개 1

김은경

1976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량 젤리』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 『사랑의 근력』을 냈으며 제2회 길동무문학창작기금 수혜 대상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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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04g | 120*188*20mm
ISBN13
9788966550210

책 속으로

“우리가 만날 때마다 비가 오네.”
당신의 말이 도시 틈새로 스며들어 구름의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우기도 아닌데 비는 종일 내렸다. 저녁에도 새벽에도 수챗구멍의 하루살이들이, 쌀통의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나는 간지러웠다.
“온몸이 물로 꽉 찬 다육식물처럼 시치미 뚝 떼고 살아가는 게 생(生)이란다.”
누군가 등 뒤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물고기의 살만 온전히 취할 수 없는 것처럼, 기어이 버릴 수 없는 가시가 있어 시를 쓴다. 여기 얹힌 것들이 궁기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 저자의 말

갈대가 건너오네
포플러잎이 등을 긁어주네
물살은 가장 잔잔한 귓속말
누구나 긴 손톱이 등에 닿으면
긴밀해져요

조그마한 명주잠자리 입술을 어루만지네
바람은 둥글어
나는 점점 가벼워지네 춤을 추겠네
눈물도 경쾌하게 번지네

그러나 무거운 옷을 껴입고도
나는 아직 춥고

언제 긁혔는지
기억나지 않는 살갗에
손 얹어주는 나무들 물결들
하루 내 외로웠니
상처는 초록과 동색이라서
병든 몸 어루만져주느라
물은 푸르게 멍들었네

아릿한 사람들
목적 없이 싹 틔우는 뭇 것들
저마다의 발자국 찍어대며
어디로 가도 좋을 여강, 여강길

하염없이 나를 만지네, 얼굴 없는 손
침 고인 혓바닥
머금어보는 강물 한 모금에선
단내가 나네
칼로도 지울 수 없는
-「강물을 타고 갔네」


솔직히 말할까 익살꾼의 농담보다
담배 연기 한 줌
날 깔깔 웃게 만든다고

내 침대 밑에는 도루코 칼
말라비틀어진 중국산 담배
빨강 초록 불량 젤리 덩어리들

놀다 지칠 땐
젖은 걸레로 악취나 닦아보자
어디서 왔는지 모를 냄새를 빼내기 위해

봄이 와도
베란다엔
알 수 없는 것들 넘쳐나고

말해볼까,
너의 배꼽보다 피어싱을 더 좋아해
네 말보다
자꾸 깨물어버리는 혀를 더 확신한다는 거

볼록한
젤리를 씹으면서
씨익 웃는다는 거
-「불량 젤리」

저녁 일곱 시가 좋아, 천변에서의 줄넘기는

약간 무거워진 구름
싫어도 돌아오는 새들
핸드백 속 무지개 폭죽들

휘파람을 불지 않아도 좋아
머리 위로 순식간에
같은 오늘이 흘러간 걸

넘길 수 없는 게 없어
비가 새는 얼굴들도
가뿐한 연기 같은 거였지

내가 읽든 네가 못 읽든
미끄러짐을 가장하여 넘어질 테지만
하낫둘셋 가지 많은 나무들을

연애를
너라는 늙은 묘혈
전대미문의 서른 살을
넘기고 부수고
어제 읽은 책을 나는 읽고 또 읽고

통통, 튀어 오르면
슬픔 따윈 몰라!
줄 댈 곳 없는 나를 세상에 넘겨도
나는 총구
어두워지는 지평선 끝에서
한 번 더 탕탕,
발작하는
-「발작하는 구름」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볼록한 불량 젤리의 촉감,
불량한 세상을 불량하게 노래하다


“세계는 상실과 애도로 뒤덮였다”는 해설(노지영 문학평론가)의 첫 부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많은 문학작품들이 상실과 애도를 노래한다. 때론 우울하게 침잠하듯,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함으로, 때론 스스로를 발랄하게 위장하면서.

『불량 젤리』는 상실과 애도로 뒤덮인 세계를 견뎌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온몸이 물로 꽉 찬 다육식물처럼 시치미 뚝 떼고 사는 게 생이라고 말한다. 다육식물은 줄기나 잎 또는 식물체 전체가 두껍게 살이 찌고, 수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식물을 말하는 것으로, 사막의 삭막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 “사는 게 매일매일/ 공중 줄타기”(「바이킹」)라고 여기면서도 눈물을 집어삼키고, 아직 모든 게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뱀처럼 질긴 불안(「밤, 전당포」)”은 얼마나 집요하게 그들을 괴롭힐까. 그런데도 『불량 젤리』의 시적 화자들은 “통통, 튀어 오르면/ 슬픔따윈”(「발작하는 구름」) 모른다며, 자신을 총구라고 지칭하고는 탕탕, 발작하기에 이른다.

상실감은 어두운 곳으로 침잠하지 않고 화사하고 불량하게 치환된다. 급기야 슬픔의 다른 빛깔을 찾아낸다. “내 이름은 빨강/ 붉은색을 삼키면서 내 이름은 빨강/ 노래를 불렀지/ 가늘고 붉은 비둘기의 다리/ 잡힐 듯 날아가는 빨강/ 끝내 번지고 마는 빨강/ 멈추지 않는 핏속/ 장미를 흠모하는 빨강”(「내 이름은 빨강」부분).
그녀의 시들은 평면적 언어로 그려지지만, 입체적인 덩어리로 치환되어 감각적으로 비유된다. 이를테면 노지영의 해설처럼 ‘해산’이나 ‘탈장’을 경험하는 ‘구름 덩어리’가 되기도, ‘눈 덩어리’, ‘얼음 덩어리’, ‘달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표제작인 「불량 젤리」에 이르러서는 볼록한 불량 젤리 덩어리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의 혀가 불량한 세계를 감히 불량하다고 노래할 수 있다면, 불량한 세계를 불량한 방식으로 탄력 넘치게 조명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언어가 볼록한 불량 젤리 덩어리의 촉감을 재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시 속에서 ‘씨익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노지영 해설 「지속 가능한 진화, ‘언니’의 이야기」부분

『불량 젤리』는 볼록한 촉감의 불량 젤리 덩어리들을 통해 화사하면서도 입체적인 감각들을 불러낸다. 그러고는 이 불량한 세상을 불량하게 노래한다. 때문에 시적 화자의 상실감은 유폐되지 않고 세상 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화하는 것이다.

발랄하고 씩씩한 위로,
진화를 꿈꾸는 ‘언니’들의 이야기


다이내믹하게 표현되는 시어들은 고독과 상실감을 중화시키며 읽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어서 잡으라는 듯이. 누군가 작가의 태어난 해(1976년)을 언급하면서, “사랑 때문에 아프기엔 어딘지 쪽팔리고, 사랑 없이 살기엔 너무 뜨거운 나이”라고 표현했다. 최승자 시인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삼십이 왔다고 고백하듯, 작가에게 삼십은 쪽팔리지만, 그렇다고 없어서는 안 되는 뜨거운 사랑과도 같다. 『불량 젤리』의 시적 화자들은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안녕하며 유한한 이 생(生)을 발랄하게 견딘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며 연대한다. 혼신의 입김으로, 따스한 목소리로. “다시 태어나는 법을 나는 모르므로/ 어둠이 뿌린 빗살 계단을 밟고 오세요, 당신/ 기꺼이 손을 잡아드릴 테니/ 금간 당신 뼛속에 내 입김을/ 불어넣어 드릴 테니”(『아름다운 진화』부분).

이렇게 발랄하게 노래하면서도 상실 이후의 시간을 씩씩하게 견뎌낼 수도 있구나 싶어, 같은 신체 기관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뿌듯하기도 하였다. 닮아가도 좋을 만한 ‘중도’를 선물 받았으니, 지금 이 ‘언니’에게는 감탄보다는 감사의 마음이 먼저 든다.
-노지영 해설 「지속 가능한 진화, ‘언니’의 이야기」부분

『불량 젤리』는 상실을 딛고, 성장과 진화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메타포로 수놓여 있다. 그들을 위해 직조된 포근한 이불을 건넨다.

추천평

김은경 시인의 시에서는 고독조차 화사하다. 이 화사한 고독은 “봄에도 녹지 않는 배스킨라빈스/ 31번가의 응달”이다. “고흐의 방아쇠 그날의 녹슨 정적이/ 떨어지는 길 중의 길”, “태양이 혐오하는/ 태양을 혐오하는”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고독의 메타포가 이렇게 형이상학적이고 다이내믹한 경우는 우리 시에서는 드물다. 우리는 분명 이 혼돈과 증오의 시대에 “일몰이 서역을 넘기 전에 손을 잡고”, “사과향 짙어가는 그곳으로 함께 가”야 한다. “꽃 속으로는 꽃 소식만 오가는 게 아니”지만 누구나 “다시 태어나는 법을 모르”므로 “강물이 바짝 마르기 전에” 신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를 다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랑으로 인간은 아름답게 진화해갈 것이다.
최종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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