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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빗물의 안부
나무에게 나무가 부겐빌레아 딱 그만큼 쓸쓸한 동네 바람의 목에 방울을 달아 주네 방치 외도 산 하나만 사 주세요 쉿, 그리고 싶은 그림 떠나는 동백에게 웃어 주기 잊어야 한다면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평화주의자 파도를 대하는 조약돌처럼 2부 다람쥐에게 나무에게 무덤에게 따뜻한 기억들 악의 이런 사치스러운 사람 배와 군밤과 코코아 주머니에서 바람을 끄집어내면 곁눈질 묵호에서 개의 사랑법 해가 좋아서 대식가 이야기의 무덤 진짜 나쁜 년 했던 말 속의 했었던 말이거나 아무도 나에게 노래를 불러 주지 않았다 3부 우리 마음껏 파괴되면서 살아요 신기루 돌고 돌아 탄생설 마지막 소설 내 고기는 어디 있나 정말 측량 포옹 눈물이 없는 사람 장미와 나르시스와 전지가위 옆집 여자 파초 4부 소금밭의 낮잠 달 따러 가자, 천천히 걸어서 피에로가 우릴 보고 웃어 꿈이라서 웃었다 밤의 심장을 조금 찢어 주었다 새의 노래 청동 거울 의안 새끼 염소는 잘 크고 있는지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나는 드럼을 치고 싶고 너는 책이 읽고 싶었으므로 아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는 아직 다리는 있거든요 남은 사촌들 비단뱀의 꿈 목련 해설 결여를 거부하는 위악의 시학 - 이병국(문학평론가) |
김려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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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촌을
나무 밑동에서 만나고 돌아온다 바람의 방향을 잘못 읽어 의족 하나와 빚만 남겨 놓고 떠난 고철 더미 위에 비는 추적추적 쌓이고 그가 남긴 쇠붙이는 바위였다가 사촌의 다리였다가 온천천 왜가리가 삼키려다 뱉은 잉어였던 우리는 이제 아프지도 외롭지도 늙지도 않을 빗물 --- 「나무에게 나무가」 중에서 일몰은 사실과 달라서 스러짐을 받아들이면 따사로웠다 신발이 없어서 울고 있는데 발 없는 사람이 웃으며 지나갔다 어느 모퉁이에서나 숨죽인 내가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학을 타고 날아도 아팠다 --- 「방치」 중에서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라고 빈집인가 싶어 빈집처럼 누군가 찾아와 주길 기다리다가 웃기 싫을 때마다 웃어도 괜찮겠지만 바다는 울어도 나뉘고 기침해도 나뉘고 내가 웃으면 우는 조약돌 울면 웃는 기침하면 기침하는 사람이 되기로 해요 --- 「파도를 대하는 조약돌처럼」 중에서 잠시 후 어린애가 다가와서 찌개에 비눗방울을 불어 넣었다 도대체 다들 나한테 왜 이러냐고 소리쳤더니 자기가 잘못한 거 다 알고 있다면서 혀를 내밀고는 달아났다 밥을 남기고 집으로 오는 길에 시장을 지나왔다 이가 하나도 없는 할머니가 상한 생선을 말린다고 소쿠리에 늘어놓았다 해가 좋아 그러시나 본데 아마 절대 안 마를걸요 한마디 해 주고 집으로 왔다 --- 「해가 좋아서」 중에서 안개는 하늘에 닿지 못합니다 유리 항아리에 잡아 둔 전갈 야생 메뚜기를 먹여 기릅니다 독은 음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외로울까 봐 한 마리 더 넣어 줬더니 싸우다 한 마리가 죽습니다 더욱더 외로워졌을까 봐 다시 넣어 준 한 마리와는 사이가 좋습니다 키우다 풀어 줬는데 기쁨의 방향인지 슬픔의 방향인지 비틀린 사랑 --- 「신기루」 중에서 작은 새가 벌레를 물고 가다가 큰 새를 만났어요 그 후론 아무런 서사가 없죠, 새끼가 엄마 품에 안길 일도 없는 것처럼요 이러면 너무 슬픈 얘기 지구본을 한 바퀴 돌고 오면 벌레도 작은 새가 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죠 --- 「돌고 돌아」 중에서 죽은 척하는 걸까 이 세상에 가릴 수 있는 게 있을까 초록색 스타킹을 사 주던 그 검은 바위에 대하여 파란 등대에 대하여 망사 주머니에 든 지렁이에 대하여 쓸쓸할 때마다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 대하여 무서울 때마다 기어 나오던 발 많은 꽃게에 대하여 오해보다 이해가 편하다 새들이 지나간 자리에도 길은 생기니까 아빠는 그를 사랑했으니까 --- 「내 고기는 어디 있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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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로 가서 다짜고짜 따귀를 갈길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 하나 정도는 생길 테니까 도둑맞은 오랜 편지가 - 굴러다니는 11월 김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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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상처에 민감해지고 두려워지는 것을 병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롤프 젤린은 상처를 입었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우선 처치의 방안으로 “외면하지 마라”, “반드시 반응하라”라고 조언한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삶 쓰기. 김려 시인은 그걸 일생의 프로젝트로 삼은 듯 보인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처를 환상으로, 구멍을 숨구멍으로 치환해 놓는다. 그의 말대로 상처 하나하나는 개연성이라고는 없이 독립적이어서, 하나의 상처는 하나의 산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 백지를 처음 맞이하는 습작생의 기분으로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올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삶. 그러나 여기서 반전. 파국은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그는 기꺼이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목소리를 듣노라니, 상실함으로써 획득하게 될 환상적 상상력은 어떤 전지가위로도 잘라 낼 수 없다는 놀라운 진실. 더없이 유쾌한 몸의 시학이 물결친다. “아가미가 없는 물뱀도 얼마든지 있다”(「저는 아직 다리는 있거든요」)고, 아가미 없는 바다뱀의 몸과 영혼으로 잠수하며 몇 시간을 바다 밑에서 머물다 온 생명체처럼 “우리 마음껏 파괴되면서 살아요”(「파초」)라고 시인은 소리친다. 그러니 시집을 펼친 독자들이여, 가위 따위는 버리고 환상에 동참할 준비를 하시라. - 김안녕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