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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그 불빛으로 일하러 간다 착지 뿔 흰 봉지 나이프 엔젤 벽지 속의 새 남극에는 이설이 없다 역광에 흔들리는 캔버스 유채 스크린 도어 목련 사진관 슈필라움 포도밭에 묻힌 동전 늘봄에게 오르골을 되감는 오후 비 감정사 당도가 사라진 후에 개기월식 2부 퍼스트 펭귄 거미 올라간 사람 적다 혈액형 파치 웅크린 자국 모든 국수 측량 다크초콜릿 광장의 고치 운수대통 나비가 되는 법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 나비물 슬픔은 무슨 색일까 화수분 미용실 3부 풀의 궁전 슬플 때 박물관에 가면 정읍 목어 오늘의 구름 핫 팩 로제트 식물처럼 봄이 셔터를 누르다 파빌리온 머그 샷 소금 사막을 찾아서 숨 모든 시간은 연필에서 시작되었다 빛 치료 가둘 수 없는 시계 행복한 제사 해설 기계에 둘러싸여 있어도 숨을 쉬기 위하여 —이승하(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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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아문센이 걸었던 눈길을
뒤따르는 중이구나 극점에서 보면 사람은 대륙 밖에 존재하는 외계인일까 지평선과 빙하의 세계가 접촉하는 낯선 문명 채널은 여전히 방영 중이고 꿈은 원격으로 부팅 중이다 보이저 1호는 우주를 떠돌고 산 사람들은 지구를 유랑하고 있다 ---「남극에는 이설이 없다」중에서 카메라로 찍으면 사진이 남고 시간으로 찍으면 영혼이 남는 게 인화된 우리라고 해도 될까 이번 생은 암실에서 나오고 싶다고 아이야, 세상의 이미지들은 만들어지는 꿈이란다 ---「역광에 흔들리는 캔버스 유채」중에서 나는 내달리는 누 떼가 되지 거대한 강둑에서 불안에 쫓겨 물이 차오르고, 나일악어 같은 악다구니가 기다려 어쩔 줄 몰라 물살에 떠내려가고 눈을 뜨면 단안경 같은 빗방울 하나가 이마에 닿는다 번지는 동심원, 그 안 아직 말하지 않은 진심이 감정되고 있다 ---「비 감정사」중에서 적는 일은 기억 하나를 꽂아 놓은 압정 같은 것이지 기억의 고정, 배운 적 없는 짐승들의 첫배 본능은 누군가 적어 놓은 방법 같은 것일까 공통분모는 기록의 한정판 헤이, 메모리 칩 어디 두었지 ---「적다」중에서 어머니, 저는 날갯짓으로 날아오를 겁니다 빛 속에서 어둠의 배를 가를 겁니다 목련이 꿈틀거리며 봉오리 여는 것처럼 간밤 내 몸이 터 가는 느낌, 침낭 속에서 호흡을 밀어 넣으면 날개가 돋았다 회신되는 메일, 메어 있을 리 없는 매일 구석은 여기까지다 ---「광장의 고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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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내 프레임 속에 들어온 채운, 무지개구름이다 친절한 손님이 봄처럼 걸어온다 2026년 9월 이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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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숨의 시에는 회복의 불빛이 있다. 고된 일상의 세목들 속에서도 절망으로 치닫지 않고 회복하고 지켜 내는 힘이 있다. “소등과 점등을 위해 일생을” 소진하는 현대인들의 “지리멸렬한 반복의” 삶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우주를 나는 상상을 한다. 도시 노동자들의 비애가 한꺼번에 상큼한 회복의 “자체 발전”을 하는 에너지로 둔갑한다.(「그 불빛으로 일하러 간다」) 이러한 회복의 윤리는 소외된 존재들을 바라보는 주체의 정서가 건강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령 “허공과 타워 크레인 사이에 걸쳐 있”(「거미」)는 노동자의 불행을 거미에 비유하여 악재의 이미지를 구현하거나 “산기슭 무연고 묘”(「풀의 궁전」)를 통해 한 작가의 일생을 풀의 자서전으로 형상화하는 힘은 밝은 시인의 눈 때문이다. “베이고 찔렸던 사람의 고통”을 상징하는 피 묻은 칼을 통해서도 “천사를 일으켜 세우”는 용서를 만나려고 한다.(「나이프 엔젤」) 견자의 눈은 “나무의 모든 이파리는 언어”(「목어(木語)」)라는 전언과 만나면서 “봄의 경전”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또한 “믿음이란 사라진 것이 형체를 갖는 일”(「숨」)이라는 경구를 경험적 문장으로 내뱉는다.
이숨이 닿고자 하는 곳은 늘 따뜻한 빛 가운데 있다. 슬플 때는 박물관에 가고, 오늘의 구름을 물조리개로 바라보고, 핫팩 하나의 온기와 봄이 셔터를 누르는 봄날의 이미지를 온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시인의 눈은 “세 살배기 증손녀 눈빛”(「행복한 제사」)과도 같다. 어머니의 기일을 생일 축하로 전이시키는 풍경이 슬픔을 행복으로 둔갑하는 마음의 힘이다. “집도 한 번씩 슬픔을 갈아 주어야 한다/그래야 달랠 수 있다”(「빛치료」)는 이숨의 시집은 비극을 온기로 전하는 진심의 집이며, 슬픔을 달래는 위로의 집이다. - 김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