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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홍경희
걷는사람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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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뒤돌아보지 않으면 상처의 이름도 알 수 없으니

돌탑
달아 놀자
저녁의 눈빛
뿔 속의 울음
사월의 좌표
때죽나무의 시간

나무와 새

마음 무덤
파랑 주의보
귓속에 눈이 내리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2부 눈물은 언제나 봄보다 먼저 피었다

쑥부쟁이
나를 나이게 하는 곳
어제는 오늘이 되지 않는다
바다라는 질량
수평선으로 밑줄 그은
흔들리는 끝
봄을 밀어내며
겨울나무
몸에 복사꽃 피던
구석의 시간
부재
질문
걸음과 그림자

3부 혹시, 굴러가면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비탈
거절의 방식
수평선 위의 사월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드르쌍 내불라
말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나이와 마주하여
그믐을 견디는 일
새벽
요일 이후
뒤가 생기는 자리
산책하는 사이
배고파지는 지점

4부 보이지 않는 소리에 기대어

자화상
2월
바다, 바보
휴지기
아침의 자세 1
아침의 자세 2
아침의 자세 3
아침의 자세 4
아침의 자세 5
아침의 자세 6
아침의 자세 7
아침의 자세 8
아침의 자세 9
아침의 자세 10
아침의 자세 11

발문
울면서 쌓은 돌, 바람을 이기는 단단한 시가 되고
-문경수(시인)

저자 소개 1

제주도 귀덕에서 태어나 2003년 《제주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리움의 원근법』 『봄날이 어랑어랑 오기는 하나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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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88g | 125*200*10mm
ISBN13
9791175010390

책 속으로

사람 속에도 돌이 있어
거칠고 차가워도
서로 받쳐 주면
모난 틈에도 빛이 스며드네

돌 속에도 부처가 있다 하나
층층 돌탑이 쌓이고 늘어 갈수록
사람들을 닮아 가네

사는 일,
이미 수행이었네
두 손 모아
결국 사람을 받드는 일이었네
--- 「돌탑」 중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뒤꿈치 구겨진 어둠
여전히 털어 내지 못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호젓한 그림자 위로 고양이가 지나가고
같이 걸어갈까 말하지 못한 그 어디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곁,
누구에게나 있다네
---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중에서


슬퍼 보이는 발자국은
슬쩍 주워 양지로 옮겨 주고 싶다가도,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며
새 울음을 듣곤 했다

어느 날, 푸른 보리밭이 바다를 부르고 있었다
바다의 오래된 발자국
섬을 부르고 있었다

나의 걸음 또한 머지않아
그 발자국을 따라나설 것이다
--- 「걸음과 그림자」 중에서


모든 끝에는 저마다의 제자리가 있어
휘청이는 마음 위에 돌 하나를 얹어
중심을 맞추는 동안

하늘은 붉게 사위고
그 빛은 수면 위에서 흔들렸다

마른 꽃 앞에서도
설레던 한때의 눈빛마저
물결 속으로 가라앉을 즈음

차라리 다행이라 속삭이며
사월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기억과 현실 사이
숨을 고른 바람처럼
--- 「수평선 위의 사월」 중에서


깨진 파편 위에 눈을 감으면
어제의 그림자가 짓이겨진다

그럼에도 밝아질 눈이 있고
끊어진 기대 위에도
고요히 내리는 눈이 있다

가난에도 절하고
돌멩이에도 절하며
내려놓지 못하는 날들이 있다

일어서는 게 시작은 아니지만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바람 속에 몸을 던져도
그림자는 따라온다
---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중에서


바람은 파도를 삼키며 비릿해졌다
바다는 무겁게 기울어
사선으로 누웠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은
결국 비우는 일

바다는 나를 내어 주고
노을은
당신을 감싸안았다
--- 「바다, 바보」 중에서


새들이 나뭇가지를 옮겨 앉을 때마다
지난 계절의 흔적은
뒷말처럼 흩어지고
젖니들이 다시 돋아나고 있어요

햇살 가득한 날,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말한다면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엽서처럼
잊히고 싶지 않다는 비의도
전해지겠지요

누구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끝에서 처음이 열리는 봄이잖아요

--- 「아침의 자세 11―열리는 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슬픔을 다져 쌓은 돌탑
그 틈새로 비치는 ‘결락(缺落)’의 미학


홍경희의 시적 화자는 마치 수행자처럼 언어를 다룬다. 시집의 문을 여는 시 「돌탑」에서 시인은 “돌 하나 들어 올려/귀를 씻고/입을 닦아/말의 무게를 고요히 다져”(「돌탑」) 탑을 쌓는다. 해설을 쓴 문경수 시인은 그를 일컬어 “쓰는 사람이 아니라 쌓는 사람”이라 명명했다. 펜 끝으로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언어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모난 마음의 돌들을 “서로 받쳐 주면/모난 틈에도 빛이 스며드”(「돌탑」)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는 시집 중반부를 관통하는 깊은 상실감과 맞물려 먹먹한 울림을 준다. 화자는 “나, 제발 버리지 마라”(「흔들리는 끝」)라며 매달리던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두고 돌아선 죄책감과 투병의 기억을 아프게 복기하거나 “끝끝내 죽청지 위에 쓰이지 못한 말”(「사월의 좌표」)들을 대신해 백비 앞에 서서 역사적 비극, 제주 4·3의 아픔을 마주한다. 하지만 시인은 억지로 슬픔을 봉합하거나 서둘러 희망을 노래하는 대신, “뒤돌아보지 않으면/상처의 이름도 알 수 없으니”(「달아 놀자」)라고 읊조리며 부재하는 것들의 빈자리를 끈질기게 응시한다.

어둠을 밀어내고 스스로 켜지는 빛
다시 섬으로 향하는 ‘아침의 자세’


철저한 고독과 슬픔의 터널을 통과한 시인은 4부 ‘보이지 않는 소리에 기대어’에 이르러 비로소 회복의 빛을 길어 올린다. 「아침의 자세」 연작은 웅크렸던 몸을 펴고 세상을 향해 다시 문을 여는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은/결국 비우는 일”(「바다, 바보」)임을 깨달은 화자는 “어스름을 창틈으로 흘려”(「아침의 자세 1」)보내며 스스로 맑아진다. 여기에 “잠시 덜 쓸쓸하게”, 외로운 이에게 “따뜻한 신발 한 켤레”(「아침의 자세 3」)를 신겨 보내고 싶다는 다정함은 시인이 고통 끝에 길어 올린 성숙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준다. “차가운 사람들 틈,/빛조차 닿지 않”(「아침의 자세 9」)았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시인은 이제 “등을 낮추어/섬으로 돌아가”(「아침의 자세 10」)겠다고 다짐한다. “갈라진 틈 속에서도/길을 내는 꽃”(「아침의 자세 10」)처럼, 상처를 봉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생명력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다. 이것은 패배나 회귀가 아니라, 바람 부는 섬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돌담처럼 자신을 지키겠다는 단단한 선언이다.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묵직하고 따뜻한 돌 하나를 건네는 시집이다.


그늘에 잠긴 이름들도
어느새 표정이 되었다

겨우, 나를 빠져나왔다

안녕이라는 말,
저 먼 어디로 스며들었을까

섬이
조금 넓어졌다

2025년 가을
홍경희

추천평

당신에게도 “사람 속에서 별 볼 일이 없어진”(「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후, “일주일째 이어진 불면의 밤”(「쑥부쟁이」)을 뜬눈으로 새운 적이 있는가.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삐걱거리는 시간에, “울컥이는 된소리들이/탁자 위로 엎질러지”는 술집 모퉁이에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얼룩진 밤을 지켜 냈으나/단 한 사람의 곁도 구하지 못”(「달아 놀자」)했다는 회한과 자책으로 서로가 바깥인 사람 사이에서 섬에 갇힌 것처럼 외로울 때, 빗나가고 “어긋난 시간들을 달래며”, “외발로 서 있던 날들”(「귓속에 눈이 내리면」), 당신은 “삶이라는 병”(「파랑주의보」) 어떻게 통과했는가. 당신은 그러한 날들에 “웅크린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어 주고/숨이 돌아올 틈을”(「귓속에 눈이 내리면」) 대체 어떻게 마련했는가. 겨울과 봄 사이, 밤과 아침 사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 “가장 은밀한 빛을” 당신은 얼마나 “숨죽여 끌어안”(「파랑주의보」)았는가. 홍경희의 『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는 아침이 밤에 보내는 헌사이자, 밤이 죽을 만큼 천천히 오는 아침의 안쪽에 경배하는 시집이다. “낡은 낙엽 틈에 물집이 잡”(「질문」)히고, “슬퍼 보이는 발자국”(「걸음과 그림자」)을 오래 바라보며, “울음이 따라붙은 말”(「뿔 속의 울음」)들로 채워 간 깊은 숨 고르기다. 하여 이 시집은 “육탄전을 치른듯한/겨울 연못”(「마음 무덤」) 같은 마음에 무덤 한 채를 지어야 했던 우리 모두의 울음이자 위로가 된다. “숨기 좋은 구석”에서 “잃을 것이 없어서/오히려 따듯”(「구석의 시간」)한 그믐밤 같은 시인의 시간을 함께하며, 당신은 문득 마음이 따스해져 올지 모른다. “가난에도 절하고/돌멩이에도 절하며”(「울었던 자리마다 돌을 쌓으며」) “그래도,/남아 있는 것들이 있”음을 감사히 껴안으며, 그믐이 조금씩 빛을 틔우리라 믿어 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함께는/거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그 거리를 품고/서로를 지켜보는 일”(「산책하는 사이」)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다시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 김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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