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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은이정
걷는사람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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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여기는 냄새 빠진 정물의 세상
늙은 딸에게 주는 레시피
시신이 제일 고생이죠
환영해 Zoom
환상지
손목 터널 증후군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헌책방, 외딴
철인 28, 또는 27호
파리지옥
메타데이터
허그 로봇의 결례
토끼 씨의 언덕
하늘소 A씨 3주기 인터뷰

2부 슈크림 붕어빵은 강물에 놓아주기로 해요
Money tree
심장을 먹다가
멸치볶음
고딕식 유리 천장
써브웨이
깍둑썰기
결대로 먹기
다코야키식 근황
뷔페 빈자리에 관한 의문
망상 식당
홍합탕
진담
서른 넘어, 아이스크림

3부 얘야 나는 갈수록 가짜가 되어 가는구나
미래 완료
해피 데이
백작
우아한 알바
개의 방문
남광주시장
유효 기간
싹둑, 가위질
낡은 발레리나
유비쿼터스
메조소프라노
이명
양양 갯강구의 여름밤

4부 적나라해지거나 깡그리 뭉개 버리거나
Kiss and Ride
PTSD

산의 기침
세고비아
23.5도의 하루
부은 발들
1월의 리스
귀신의 집
네안데르탈
발 빠짐 주의
변기 컨설팅
착지의 기술
인류세

해설
삶의 레시피, 혹은 관계를 견디는 시간
—김정수(시인)

저자 소개 1

서울에서 태어나 2023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204g | 125*200*11mm
ISBN13
9791175010659

책 속으로

하나씩 처치할 시간이야
냉장고 파먹기처럼

베개는 얇게 소금에 절여
껍질을 벗기기 어렵다면 채 쳐도 좋고 시트는 꼭 짜서 한쪽으로 밀어 두면
가끔은 갈피에서 돈이 나오기도 하지 찢어진 건 버리고 동전만 따로 모아
고명으로 올리면 그럴듯하단다

(중략)

냅킨 대신 노을이 접히면 묻곤 했지?
네가 누구냐고
너는, 너 너는 더듬거리면
그 안달 난 얼굴 보는 맛이 갓 짠 참기름 같았는데

그날처럼 턱받이를 잊으면 소스는 필요 없고
주전자가 굴러다녀도 묶어 두지는 말아
푸른 손목을 가지게 될 줄 누가 알았니
--- 「늙은 딸에게 주는 레시피」 중에서

카페 사장, 당근이 되어 꽂혀 있어요
주문마다 흙을 터느라 정신이 없네요

더 이상 쿠폰을 발행하지 않습니다 원자재가 인상돼 제 몸을 갈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메뉴는
당근 오픈 샌드위치

(중략)

올라가지 않는 오른팔 대신
왼손의 시간이 올 줄 알았는데 지켜보는 삶에는
기회조차 오지 않습니다

당근 뿌리에 묻어 이주한 흙은
뽑힌 자리를 기억하지도 어긋나지도 않아요
오래 한곳에 머물러 고양이 울음이 되어야 해요

땅속을 걸어야 한다며 부츠를 주문할 때도
왼팔은 외면합니다 땅 위를 비틀대면서 땅속은 어찌 걸을까요 흙을 털기 전에
당근에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해 줄까요
신선한 팔을 들어 올려 잊힌 날씨를 가름합니다

카페 사장을 갈아 넣은 샌드위치는 먹을 만했어요
--- 「환상지」 중에서

바닥의 평등을 맞추지 못하면
뒤뚱거리는 건 평생 제자리가 없는데

자지 않는 시간에도 헐떡이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설계도를 요청해도 비버는 갸웃거리며 물푸레나무를 턱으로 가리키고는
댐으로 깊어졌다

(중략)

넘어지지 않아도 안아 준다는 마음이
마르길 기다리는

하늘을 자르며 날아온 후투티가 누구보다 먼저 발자국을 찍고

왕관이 아니라서 원래 일부이던 것처럼 들어맞는 환대
비슷해야 내 것이 되는

갚을 수 없는 율동에 여유가 얽힌다

비켜서 맘껏 오해해도 되는 시간
가볍게 기대며 흔들리는
---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중에서

I—25는 요양원 전용으로 배치되었다 따라서 허그 로봇이 감행하는 3가지 모험은
끌어안고 돌보고 구하는 일이다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이곳에선 그래서 로봇은 실례가 된다

(중략)

3분이 지나도 대상자의 리듬이 없으면 알람은 맥시멈 볼륨으로 울리고
로봇은 왜곡되는 슬픔 없이 기본 세팅을 다시 시작한다
쉽게 식는 것은 어느새 서로 닮아 있다
--- 「허그 로봇의 결례」 중에서

한 번 떨어지면
달콤해지는 거짓말
둥글게 뭉쳐 있을 때는
너뿐이야
길어진 방울에도 붙어 있다 믿었지만
오늘은 네가 녹았다
고깔 아래서 이유 모르고 흘러
찌그러진 턱으로 끄덕여 줬다
물러 버린 피딱지 체리로 휩쓸려
움직이던 태풍이 질퍽해진다
시려서 머리 아팠던 사랑
(중략)
쉬잇
바닐라 색 검지를 입술에 대고
그 앞에 마주 서는
말이 없으면 솔직해진다는 믿음
서둘러 혀부터 내미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서른 넘어, 아이스크림」 중에서

날마다 연주하는
삐죽한 방으로 들어갔어요

어쩌다 만났지만
제 발로 들어온 것만 듣고 싶어요

고개 흔든다고 떠나지 않아요
끄덕인다고 다정하지도 않지만요

(중략)

미운 것도 가여워지는 손이 나이를 내밀어요
어떻게 아는지 당신은
자꾸 모서리를 파고듭니다

당신의 세상을 지워 버린 채
내 안에 들어와 소리만 파먹고 있어요

광산이 막히면 제 발로 걸어 나갈까요
먹먹한 당신은

---「이명」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다른 벽으로
창문을 냈습니다
타원형 고백은 기다림 탓이에요

이제
당신을
시작하려 합니다

2026년 봄
은이정

추천평

은이정의 시에서는 “2층 화장실 손잡이 위엔 화석이 있어요/고생대 슈크림이/그대로 말라붙었어요”, “슈크림 붕어빵은 강물에 놓아주기로 해요”(「진담」)처럼 통통 튀는 위트가 넘치는 구절들과, “매트리스 위에는 항문에 박아 둔 기저귀 조각을 활짝 펼쳐”(「늙은 딸에게 주는 레시피」), “카페 사장을 갈아 넣은 샌드위치는 먹을 만했어요”(「환상지」)와 같은 블랙 유머들이 곳곳에서 별사탕처럼 터진다. 이런 위트와 유머 이면에는 “하루를 바꿔도 같은 데시벨/떨어지지 않으려 꽉 붙잡은 놀이 기구/날마다 빙글빙글 잘도 돌아가네요”(「이명」), “바닥의 평등을 맞추지 못하면/뒤뚱거리는 건 평생 제자리가 없는데”(「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와 같이 고통을 승화시킨 흔적들이 있다. 좋은 예술가들은 자신 고유의 결핍을 가지고 있고 그 결핍 때문에 남다른 시각을 얻는다. 은이정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동을 끄자 혈관에도 무지개가 뜨네요 그 아래 누우면 줄무늬 환의를 주세요”(「손목 터널 증후군」), “날마다 연주하는/삐죽한 방으로 들어갔어요”(「이명」)와 같은 아프지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구절들이 탄생한다. 은이정의 시를 읽으며 몸이 없는 철학은 철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떠올랐다. 은이정은 몸을 통한 생생한 지각知覺의 현상들을 노래한다. 그녀는 적극적인 감응력을 가진 존재로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저항하고 감싸안고 맞물려서 세계와 만난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순수함 그 자체인 ‘현상적 장’을 ‘생활 세계’라고 불렀다. 은이정 시인은 신체 도식을 도구로 시인의 몸을 세계로 연장한다. 그녀가 지각하는 세계는 계속 변화하며 흔들린다. 윤곽선이 여러 겹인 세잔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 정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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