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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조금 더 다정해질 때까지
당신의 밤은 어때요 안녕, 나야 못의 기분 아직 처마 밑이다 지문 인식 핸드 프린팅 당신도 얼룩말입니까 잠깐이라는 산책 감쪽같이 사적인 슬픔의 안부 낭만 보존의 법칙 저녁의 시 그림자 산책 오늘의 결심 가을 한 채 2부 길들지 않은 문장이어도 달의 외출 안녕, 엄마 귀를 열다 육추育雛 의자의 연대기 수국 궁전 아홉 살의 운동화 나는 자주 불안을 물어뜯었다 낙엽 국지성 호우 천국의전 서쪽의 온도 손의 기억 해동 일기 어떤 잠에 대하여 3부 사는 건 단단해지는 것 머들 바다 학교 뿔소라의 노래 누가 묻는다면 달방 있습니다 환대 어머니의 어머니는 설문대할망 가파도 해바라기 노루귀 산물 해삼 인디언 옐로 밀양이라 부르면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4부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당신의 처방전 장두 이재수 월광 농사 코레아 우라 어떤 입국 신고서 곤을동 해바라기 첩첩산중 나는 아직 산을 모른다 붉은 신발 여기는 지금 비가 와요 물 위의 이름들 철원의 별 응우옌 럽 사진에 관한 노트 바람 하나 바람 둘 산내 골령골 수상한집 5부 섬이라는 말과 덕분이라는 말 사이로 목련이 돌아오는 골목 봄의 설계도 그 하늘이 참 곱다 평등이라는 말은 아직이에요 석모도 대화 두더지 게임 서울 단상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침 달 우리 금능으로 가요 해설 시작의 섬광과 결정의 빛 - 김지윤(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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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단단한 질문
당신의 밤은 어때요 키보드 자판들이 어둠을 다듬는 동안 밤의 가장자리에 웅크린 당신과 나 아팠어, 말하지 않아도 먹먹한 밤이 고이고 지난 계절 나의 뜨락은 생밤 같은 달의 나라 --- 「당신의 밤은 어때요」 중에서 하루의 시간을 오려 하늘 한 번 보는 일 당신이 재촉하는 겨울 문턱을 넘다가 잠깐은 어디까진가 멈추고 선 날이다 기차를 기다릴 때 밥물이 끓고 있을 때 아직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를 때 사라진 간이역처럼 먼 데서 오는 것들 --- 「잠깐이라는 산책」 중에서 사소한 오늘과 나를 무엇이라 번역할까 무너지지 않으려고 계속 쓸 수 있을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반성문만 쓰는 나 깨어진 기타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아 시가 없다 사랑도 없다 서로가 멀어질 때 슬픔과 슬픔이었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 「사적인 슬픔의 안부」 중에서 소나기를 만났어요 땅만 보고 뛰어가다 정신없이 뛰어가다 돌부리에 걸렸지요 우산을 그만 놓치고 흠뻑 젖은 날들에게 심장을 그어 대는 첼로의 현을 따라 소나기가 깔깔대요 숨고만 싶어져요 엄마의 자궁 속은 오래전 나의 다락방 참았던 힘을 다해 끝까지 달려가요 턱밑까지 차오른 이 기분은 여름이에요 핏덩이로 태어나 딸이 되고 여자 되고 아내 되고 어머니 되는 딸들의 연대기를 나는 아직 쓸 수 없어요 구름의 노래를 너무 자주 불렀나 봐요 이 저녁 누가 자꾸 눈물을 훔쳐 가요 --- 「안녕, 엄마」 중에서 주먹 쥔다는 건 내려놓지 못한 말 늦가을 안쪽처럼 반성 못한 일처럼 주먹을 다시 펴 보면 가진 게 너무 많아 많아서 흘리고 흘러서 담지 못하고 어제를 지나온 길이 이와 같지 않은지 온전히 나를 뒤집어 다시 쓰는 아침이다 --- 「손의 기억」 중에서 부러진 마음에서 내일이 자라는 거야 쓰러진 세상에서 길을 다시 트는 거야 베란다 다육이에게 처방받은 나의 봄 --- 「당신의 처방전」 중에서 넘어진 삶을 일으켜 다시 사는 이 봄날 당신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여기 없고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들 짐승 같은 시간들 바람에 씻겨 보내도 눈물은 그리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 행불자 묘역에 들어 아버지를 닦는다 닦고 또 닦아 내는 사월의 문장들은 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 일 아파라, 동백 꽃송이 또 누구의 신발이었나 --- 「붉은 신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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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자리에서 다시 쓰는 존재의 연대기
김진숙의 시 세계는 ‘멈춤’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시인에게 산책은 단순히 걷는 행위가 아니라 밥물이 끓거나 기차를 기다리는 사소한 일상의 틈새에서 “하루의 시간을 오려/하늘 한 번 보는 일”(「잠깐이라는 산책」)이자 관습적인 시간을 정지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 짧은 멈춤의 순간에 시인은 모니터 속 세상이 아닌 내면의 불안과 마주하는데, 이때 밤과 잠은 편안한 휴식이 아닌 “쏟아지는 사유의 밤”(「당신의 밤은 어때요」)이자 치열한 내적 투쟁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시인은 이러한 고독한 응시 끝에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슬픔과 슬픔이었”(「사적인 슬픔의 안부」)다는 삶의 역설적 진실을 길어 올리며, 변화와 의지의 매개체인 ‘손’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다짐한다. 꽉 쥐었던 아집과 미련을 놓아 버리고 손을 펴는 행위는 곧 “온전히 나를 뒤집어/다시 쓰는 아침”(「손의 기억」)을 맞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이며, 비록 “하루를 통과할 때마다/내가 잠깐 사라”(「지문 인식」)지는 상실감을 겪을지라도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삶이 지탱됨을 믿는 시인의 태도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화해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한 연대로 이어진다.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빛, 역사를 위로하다 시집의 후반부에 이르러 시인의 시선은 개인의 서정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현장으로 확장되어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붉은 신발」)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호출한다. 제주에 뿌리를 둔 시인은 장두 이재수의 외침부터 제주 4·3의 비극,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그리고 세월호와 밀양 송전탑 투쟁까지 우리 역사의 아픈 지점들을 두루 살핀다. 특히 잃어버린 마을의 상처 위에 해바라기 꽃씨를 뿌리며 “더 이상 덧나지 않게” 치유를 기원하는 「곤을동 해바라기」나,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의 억울한 세월을 기록하며 “길 잃은 당신을 위해 방을 비워” 두겠다고 말하는 「수상한 집」은 단순한 고발을 넘어선다. 이는 “서로의 심장을 향해/겨누던 총구”(「철원의 별」)가 되었던 비극을 넘어 평화와 회복을 꿈꾸는 ‘살림’의 시학이며, “어둠에서도 기어이 빛을 바라보고 빛 속에서도 어둠을 잊지 않는”(김지윤 평론가) 시인의 문장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흔들리며 걷고 있을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하고도 서늘한 악수와도 같다. 시인의 말 첫눈이 지나고도 한참을 아팠다 눈 내려 그런 줄 알았다 아프다 말하지 못했다 세상이 더 아팠으므로 올리브 묘목 한 그루 작은 화분에 심었다 내게도 꿈이 생겼다 2025년 가을 김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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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시는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인다. 당신의 밤을 더듬으며 사유하는 감각의 시간들이 빼곡하다. “지난 계절 나의 뜨락은/생밤 같은 달의 나라”(「당신의 밤은 어때요」)라는 시간의 사유와 비유는 천천히 따뜻한 시의 자장 안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시인의 사랑은 비를 자주 맞고, 사물의 기분까지 헤아리며 사물의 몸을 통해 새로운 존재를 인식한다. 시인은 잠깐의 산책을 통해 그리움의 정체를 들락거린다. 사실 시인은 순간을 통해 본질을 꿰뚫는 직관의 힘을 가진 존재이다. 김진숙이 “몸에 붙은 울음을 습관처럼 잘라 먹다가”(「사적인 슬픔의 안부」) 이별의 문법을 발견한 힘의 원천은 사랑이다. 육친에 대한 사랑은 귀를 열게 하고, “어머니 우는 모습 몰래”(「수국 궁전」) 보았다는 고백을 하게 한다. 사랑은 온갖 자연에게서 배우는 힘을 가진다. “물에 든다는 건 바다를 배우는 거”(「바다 학교」)라는 삶의 지혜를 오랜 사랑의 힘으로 얻는다. 시인이 걷는 내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계를 사랑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 아닐까. 김진숙의 이러한 애정사는 오래오래 시를 쓰게 하는 에너지이자 시의 큰 덕목일 것이다. - 이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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