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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골목 지도
엄마 겁 골목 지도 신데렐라의 선녀 엄마 나도 아파요 빈집 포기 세상의 모든 언덕 변비 사알살 금요일 저녁상 퇴원 표류 2부 그리운 당신 그리운 당신 비린내 왜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을까 성적 취향 나이 박 여기는 노인의나라역입니다 당신 부인 말인데 허름하긴 하지요 휘파람새가 있는 여름 아침 이승 흰머리파 3부 아파트에 내리는 눈 쎄로켈 죽은 사람을 살리지 말아요 지린내 유령의 집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하루만 더 칼로 째다 효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낮에 나온 반달 면회 1 맨 등짝 면회 2 엄마 침대 아파트에 내리는 눈 4부 신촌역에서 서울역까지 신촌역에서 서울역까지 약속 기쁜 전화 소음 예민충 사기그릇에 물 넘기듯 긴 병 9일째 안경 쓰고 울다 일곱 달하고 열하루째 혼자 말하기 평온한 날 할머니들이 하는 일 허벅지 봄, 새벽, 휘파람새 해설 돌봄 생존자의 언어, 애도愛道와 애도哀悼 사이에서 - 김수이(문학평론가) |
양애경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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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뜨거운 물에 거즈를 빨아 들고서 엄마의 눈가부터 꼼꼼하게 닦기 시작한다 엄마가 조그만 소리로 불평을 하신다 - 얘, 네가 닦을 때마다 세상이 흔들거려져. 나는 엄마의 코를 지나 입술까지 연신 거즈로 문지른다 쪼글쪼글한 입가 주름 때문에 닦기가 쉽지 않다 - 그거 한다고 세상이 흔들리다니?. 세상 탓을 하지 말고 흔들리지 않게 좀 노력을 해 봐요. - 뭐어? 라고 엄마가 조그만 소리로 항의를 하신다 늘 비틀비틀 갸우뚱갸우뚱하면서 땅이 평평하지 않다고 불평을 하는 엄마 어떻게 해야 내가 엄마 앞의 모든 언덕을 평평하게 펼 것인가 --- 「세상의 모든 언덕」 중에서 열여덟 살의 나는 교실 안의 친구들 곁, 아주 먼 곳에 서서 빨리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어 아니,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면?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시간이 나를 뚝 떼어 이 자리에 부려 놓고 가자 이제 진짜 할머니가 되었는데 나는 그때 원하던 대로 되었을까? --- 「나이」 중에서 아주 오래전 좋아했던 사람 엉뚱한 데서, 어떻게 지냈어? 불쑥 고개 내밀 수 있게 아직 같은 생에 서 있는 게 좋아 따로 흘러가고 있더라도 --- 「이승」 중에서 유령은 죽었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이네 탁! 불을 켜고 문을 스르르 열고 의자를 드드득 끌어와 앉고 옛날 노래 한 소절을 부르다가 탁! 불을 끄네 유령의 집이라 부르지 말아요 그 집은 여전히 그 사람의 집 죽은 걸 잠깐 잊었을 뿐이네 --- 「유령의 집」 중에서 여기가 우리 집이니? 심각하게 하루 한 번씩 엄마는 묻고 나는 맞다고 하지 40여 년 전에 엄마가 사고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우리 집 이 집은 저승으로 향한 이승 쪽 마지막 정류장 어슴푸레한 가로등 밑에 지팡이를 짚은 엄마의 작은 손을 잡고 슬픈 내가 서 있네 ---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중에서 우리는 못 들어가는 유리문 안으로 휠체어 타고 밀려 들어가는 엄마 머리를 높게 올려 쳐서 살이 드러난 엄마 뒤통수 무방비의 차 타고 돌아오다 그 뒤통수가 떠올라 울기 시작했다 내일은 꼭 엄마 데려오게 전동 침대 빌려 달라고 전화할 거야 (...) 이렇게 헤어져서 무너지며 울려고 나와 엄마는 함께 그 세월을 버텨 왔을까 나는 아마도 엄마를 못 데려오려나 보다 이렇게 우는 걸 보니 --- 「면회 1」 중에서 엄마, 사랑해 다음 생엔 내 딸로 태어나 내가 잘해 줄게 사랑한다고 아무리 많이 말해도 말할 때마다 목이 멘다 --- 「9일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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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시련’이라는 말 뒤: 돌봄의 사회적 묵음을 깨다
이 시집은 돌봄의 고통이 더 이상 ‘개인적 시련’으로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엉엉엉 나 어떡해 나 무서워/멀쩡한 사람은 못 견디니까요“(「쎄로켈」)라는 절규는 간병 현장에서의 절망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원금을 다 갚은 빛의/이자를//영원히 지불하고 있는 것 같은/기분이 드는 것“(「효도」)이라는 구절 역시 ‘효도’와 ‘간병’이라는 이름 아래 세습되는 돌봄의 굴레를 간파한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는 돌봄의 짐을 짊어진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의 정체를 직시하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태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죄책감과 인간적 한계: 슬픔을 넘어선 용서와 위로 양애경의 시는 사랑과 헌신으로 시작해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돌봄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시인은 ”내가 내 손으로 엄마를 요양원에 데려가/문을 쾅 닫고/혼자 돌아오다니!“(「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라고 쓰며 극한의 죄책감을 토로하고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견딘다. ”엄마 없이“(「긴 병」) 행복해져도 되는지 스스로 질문한 끝에 ”엄마는 마음에 묻고/나는 행복하게 살아야지“(「일곱 달하고 열하루째」)라 다짐하며 시인은 용서의 언어에 도달한다. ”‘사랑해요’보다/백만 배 무거운 말//엄마 집에 가자“(「면회 2」)라는 구절은 돌봄의 무게와 인간적 한계를 함께 보여 주며, 슬픔을 받아들이는 용서가 곧 위로의 시작임을 말한다. 고통을 넘어선 회복: 돌봄 이후의 삶을 재건하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에는 고통을 지나온 이가 다시 자신으로 서는 순간이 담겨 있다. 시인은 ”탈피하여 나비가 되어/훨훨 날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허름하긴 하지요」)는 자신을 발견하며 상실 속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를 되찾는다. ”다음 생엔 제 딸로 태어나세요/다 못해 드린 것들을 해 드리며 살게요“라는 시인의 고백에서 볼 수 있듯 갚지 못한 마음을 희망으로 바꾼다. ”나는 시인/어차피 사람은 철저하게 혼자란 걸 아는 영혼“(「왜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을까」)이라는 구절은 간병인과 딸의 정체성을 넘어 다시 ‘시인’으로 서는 선언이자,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하는 문장이다. 4부에 등장하는 ”평온한 날이다/환자도 없고/나도 안 아프다/행복하기까지 하다“(「평온한 날」)라는 시구는 긴 돌봄의 터널을 통과한 뒤 도달한 평온과 자유를 보여 준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의 시구들은 돌봄과 상실의 경험을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남길 것이다. 시인의 말 엄마 보살핌을 받고 살다가 좋은 친구로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 아기처럼 된 엄마를 돌봐드리며 살다가… 이제 아버지 계신 산에 두고 온 엄마 다음 생엔 제 딸로 태어나세요 다 못해 드린 것들을 해 드리며 살게요 2025년 가을 양애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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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양애경 시인을 만난 것은 1979년 가을. 그때 양애경은 대학을 졸업하고 유성에서 중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주 귀여운 중학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나? 따져 보니 46년이다. 그러기에 그 중학생 같은 모습의 양애경은 이제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고 나는 더더욱 할아버지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양애경과는 여전히 그 마음 그대로,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육친의 느낌이라 그럴까?
양애경의 구체적인 삶이나 실상은 내가 모르지만 느낌만은 늘 가까이 살고 있기에 그러하다. 본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양애경은 참 이승 사람 아닌 것 같은 때 있고 겉으로 나이를 먹기는 하지만 속사람으로는 나이를 안 먹는 사람 같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녀는 그 자리에 그 마음 그대로 서 있는 사람 같다. 그만큼 그녀는 본질적이며 순결과 맑음, 그 자체다. 양애경의 시적 기질과 나의 그것은 전혀 같지 않음에도 나는 양애경의 느낌을 너무나도 잘 안다. 차라리 친애親愛한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이 땅에 이만한 시인이 없다. 그러나 양애경은 시인으로서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시인이다. 그만큼 그녀가 수줍고 내향성인 사람이라 그렇다. 하지만 그녀의 시편은 끝도 없이 절절하다. 더없이 안타깝고 더없이 진지하고 더없이 충분하다. 이번에 만나는 엄마와의 동거와 이별에 관한 시편은 또 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의 길에 있을 곡절들을 미리 보여 주는 보고서인지 모르겠다. 다만 가슴이 아득하니 아프고 말을 잃는다. “다음 생엔 제 딸로 태어나세요/다 못해 드린 것들을 해 드리며 살게요”(「시인의 말」) 세상에 저런 딸이 있었다니! 다만 눈물겹고 감사할 따름, 그 문장을 가슴에 안는다. 잘 자라, 예쁜 아가야, 그 마음 그대로. - 나태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