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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위의 검은 새
문선정
걷는사람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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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무단 생존 중입니다만

마그리트풍 창문
감자에 싹이 나서
고자질
감정을 상속받다
어차피 항복
출입 통제선
루나의 연애에 풍선을 달아 줘요
모란 모란 모란꽃
입국 심사
나무의 주소
꽃잠
힘내요, 날씨
나는 오렌지였어

2부 말이 되는 침묵

물의 벼랑
무명 씨
꿈의 국적은 어디입니까
내가 너를 데려가겠다
웃음들
소리를 걷는다
입술 위의 검은 새
비는 손의 모습으로
피아노를 지키는 밤
책방 일기
슬픔이 뛰어내리는 장소
제대로 삐뚤어졌습니다
농담 한 송이
달러 이야기

3부 관찰자의 거리

이번 역은 향기역입니다
숲의 개인사
매미의 계절에
불쑥, 사과
레미콘을 운전하는 엄마
오늘의 일용할
밤 버릇
첨벙이라는 귀
떫은 겨울에
손의 말을 들어 보면
엄마의 산에 오르세요
저녁이 앉아 있네
나를 안아 주세요

4부 새와 우주, 비가시의 거리

작설
여름이면 여름이지
걸어서 오는 새
새는 누구인가
새집 무료 분양
응시
딱 걸렸네

우주가 온다
우주가 왔다 1
우주가 왔다 2
달의 무대
오버

해설 고독의 데페이즈망
-이병국(시인ㆍ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2014년 《시에》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68g | 125*200*10mm
ISBN13
9791175010376

책 속으로

이런 나를 내려다보는 그림이 술렁거리기 전에
날개를 편 새의 모양으로 하늘을 오려 내어
내 가슴에 창문 하나 만들고 싶다
세상에 그려진 무수한 이정표의 끌림에도
오직 내게로 날아든 새는
구부정한 나의 허리를 일으켜 세워 주리라
--- 「마그리트풍 창문」 중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누가 내게서 훔쳐 갔을까

아버지의 외로움이 내게 대물림되었다
조용한 폭력이고 잔인하고 정교한 유산 상속

수없이 재생되는 상속의 방
출발점을 찍고, 지도를 따라간다
--- 「감정을 상속받다」 중에서


작전은 실패했다
나는 암살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감정을 지키던 경비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항복한다

기억이 침투한 자리를 봉인하지 않겠다
눈물이 지나간 자리도 그대로 둘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건, 지우지 않겠다

나는 누구의 그리움으로 남아 있어도 괜찮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에서 살아도 괜찮다
--- 「어차피 항복」 중에서


나는, 무엇이든 되고 싶었고
하고 싶었고 가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고
소리 내고 싶었다
거짓말에 오렌지빛 문장이라도 덧칠해야 했다

슬프지 않을 때 펑펑 우는 오렌지
기쁜 일이 없어도 크게 웃는 오렌지
이런 서사를 쓰는 오렌지는 저 혼자 새콤달콤 맛을 살렸다
--- 「나는 오렌지였어」 중에서


듣고 있니?
입술 위를 맴도는 순한 호칭을 그리고 싶었어

새 한 마리 내 혀 밑에서 기다린다
말이 태어나기 전에 부리를 찢고 나와
순한 말을 쪼아 먹는 육식성 검은 새

현관 앞 화분, 부스럭거리는 쓰레기 봉지,
덜 마른 빨래 위로 내리는 3월의 눈 좀 봐
앵두꽃이 앉아 있는 허기진 나뭇가지도 눈을 먹어 치운다

너는 자꾸 어디로 사라져, 아직 그리지도 못했는데
흑연 가루처럼 몰려왔다 먼지처럼 사라지는
새 한 마리, 휙?
--- 「입술 위의 검은 새」 중에서


흙냄새, 풀 냄새, 바람에 묻혀
사라진 엄마들
어디라도 살아 있을 것 같은
우리들의 엄마는 모두 산으로 올라갔다

나도
엄마의 냄새가 그리울 때는
엄마의 산에 올라 냄새의 포식자가 되는 날 있다
그런 날은
조금이라도 힘이 세져서 내려왔다
--- 「엄마의 산에 오르세요」 중에서


나의 입술에서 새의 말이 자라나고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싶은 통증의 번역기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어쩌면 나는
새이거나
새의 이름으로 지어진 꿈을 걷는
새를 돌보는 마지막 인간이거나

혹은
그 모두이거나

--- 「새는 누구인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실존적 고독과 불안을 낯설게 하기

문선정의 시적 화자는 세계와 불화하는 존재다. 시집의 문을 여는 「마그리트풍 창문」에서 화자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같은 하늘”을 응시한다. 시인은 익숙한 일상을 낯선 시선으로 재배치하여 그 속에 숨겨진 불안과 권태를 드러낸다. 표제작 「입술 위의 검은 새」는 이러한 내면의 분열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화자는 “입술의 말을 쪼아 먹는 검은 새”가 되어 “혀끝에서 맴돌던 이름”을 부수고, 삼킨 말들이 “목구멍에서 발톱처럼” 돋아나는 고통을 감각한다. 이는 타자와 진정으로 닿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해 “잘못된 드로잉”처럼 어긋나는 관계의 비극을 선명한 이미지로 보여 준다. 시집의 중반부에 이르러 시적 화자는 스스로를 “감정을 말살하는/암살자의 운명”(「감정을 상속받다」)이라 칭하며, 불쑥 솟아오르는 슬픔과 그리움을 제거하려 애쓴다. 그러나 기억은 “탄환을 비웃”으며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어차피 항복」에 이르러 화자는 “작전은 실패했다”고 선언한다. 화자가 자신이 암살자가 아니라 실은 “오랫동안 감정을 지키던 경비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지워지지 않는 건, 지우지 않겠다”는 이 ‘항복’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와 결핍조차 자신의 고유한 역사로 받아들이겠다는 능동적인 수용이자, 슬픔을 봉인하지 않고 직시하겠다는 단호한 결단이다.

고요한 내면에 도착한 경이롭고 아름다운 신호

철저한 고독과 자기 응시 끝에 시집은 4부 ‘새와 우주, 비가시의 거리’에 이르러 놀라운 확장을 보여 준다. 폐쇄 회로처럼 맴돌던 ‘새’의 이미지는 이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함께 ‘우주’로 비약한다. 「쿵」과 「우주가 온다」 연작에서 아이의 첫 심장 소리는 “블랙홀의 맥박”이자 “우주로부터의 답장”으로 명명된다. 시인에게 한 생명의 탄생은 단순한 출생이 아니라, “수천 광년을 관통한 후/한 인간의 체내 우주에/조심스레 착륙한 외계적 기원”이다. “지금 이 별의 모든 시간이/너 하나로 다시 리셋되고 있다”(「우주가 온다」)는 선언은, 고통으로 점철된 과거의 시간을 중지시키고 삶의 좌표를 미래로 재설정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선사한다. 해설을 쓴 이병국 문학평론가 “문선정 시인은 절망적 정동으로 존재를 방치하지 않”으며 “새날의 연둣빛”(「감자에 싹이 나서」)에 깃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입술 위의 검은 새』는 불안한 오늘을 견디는 이들에게, 당신의 심장 소리 또한 우주가 보내온 신호임을 일깨우는 다정한 위로가 될 것이다.


말이 잘 안 붙는 말들이 있었어요

그런 말들을 모아 시를 썼고요
감자는 멋대로 싹이 나고
비는 손 모양으로 내리고
한 아이가 세상에 왔죠

들여다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혹시 들여다보게 된다면
당신 마음에 한 구절쯤
‘쿵’ 하고 남았으면 좋겠어요

2025년 가을
문선정

추천평

대체로 생은 굴곡진 길이다. 다만 어디가 처음이고 마지막인지 모르고 태어날 뿐이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말하는데, 사람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닐지라도 극복으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면 구태여 시를 써서 무엇하겠나. 세상에는 마주한 굴곡에 몸을 가누지 못해 주저앉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문선정의 시는 그러한 굴곡의 변곡점을 말초 신경처럼 미세하게 감지한다. “비의 혀가 나뭇잎을 핥”(「숲의 개인사」)듯 시인 문선정의 언어는 마치 “일천 년 동안” “경전”(「나무의 주소」)을 써 내려가는 일과도 같아서 작은 것 하나도 평범하게 쓰지 않는다. 평범함의 비범성은 시라는 장르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일이다.

문선정은 이 비범성을 “말이 되는 침묵”이라는 가일층 대담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시적 향방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문선정의 시를 읽으며, 시는 슬픔의 언어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좌절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수억만 개의 물비늘이 밀려”(「저녁이 앉아 있네」)오듯 세상의 간구는 끝이 없어서 우리는 시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가 일천 년 동안 경전을 쓰는 마음으로 익명의 절망과 슬픔을 기록하는 일이라면, 문선정의 시는 이제 세상에 나아가서 그 익명들의 침묵이 어떻게 언어가 되는지 증명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부디 “슬픔이 뛰어내리기”(「슬픔이 뛰어내리는 장소」) 좋은 속눈썹처럼, 굴곡의 길 위에서 휘청거리는 생이 시인 문선정의 문장 위에 시름 한 조각이라도 내려놓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김명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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