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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다 늙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
눈사람
할매 옥수수
집이 슬프다
수제비 먹으러 갈래요
택배차
애호박
세신사 형
말도 못 하게 시끄러워서
새 식구
삼일장
만수 할배
만수 할배 실종 사건
우리 마을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개복숭아꽃이 피었습니다

2부 어린 여름처럼
권정생 17주기
딸 자랑
속물과 군자 사이
아버지를 씻기던 때가 있었다
숨어 사는 사람들
청산도 꽃구경
밥 한 그릇
직산
봄 사과

태백

문패
아무도 몰래 변두리 노래방 계단을 올라간 적이 있다

3부 소는 보이지 않고
대치
비꽃
파리 올림픽
양파 캐기
봄인가 하면 한 번씩 눈이 내렸다
베트남이라는 말
숭고한 일
개껌
어떤 봄
기아라는 말
코발트 광산에서의 학살
코발트 광산에 비가 내린다
코발트 광산에 백일홍이 피었다
코발트 레드
생몰
슬픈 일

4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여우꼬리 맨드라미
가을 국화
불길
금방이라는 말
배롱나무 식재에 관한 리포트
손을 사랑하는 일
퇴근길
유비무환

씨감자에게
싹 다 고칩니다 전파사
뉘우치는 시간
노래

해설
혼과 교유하는 시의 마음
—노지영(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1967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99년 계간 《사람의 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우는 시간』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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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82g | 125*200*20mm
ISBN13
9791175010635

책 속으로

밤새 내린 눈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눈과 사람 사이에 오간 찰나의 생명

잠깐 살다 가는 것은
사람이나 눈사람이나 마찬가지
눈 코 입 달아 놓고
그새 휜 등을 쓸어 본다

밤새 녹아 없어진 사람들이 많았다
--- 「눈사람」 중에서

노인들만 사는
우리 마을은
커다란 고아원
엄마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가 없어
밥때도 놓치고
숙제하라고 다그치는
엄마가 없어
마당 가득 풀밭이다

우리 마을은
다 늙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
커다란 고아원
--- 「우리 마을」 중에서

먼저 죽은 사람들은
어디 멀리로 간 것이 아니라
곳곳에 숨어서 살고 있다

내가 듣기로 사람이 죽으면
몸은 그림자도 없이 투명해지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생전에 궁금했던 어떤 시점에 가 보기도 하고
지근거리에서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기도 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어제,
몸살이 나서 창가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가
역광으로 비치는 아버지의 실루엣을 보았다
투명 인간이 되었지만 여전한 불투명 인간이어서
왼손을 허리춤에 얹고 걷는 모습이
영락없이 아버지였다

허리 병을 고쳐서 보내 드렸어야 했는데
갑자기 가 버리셔서 그러지 못했다
--- 「숨어 사는 사람들 전문」 중에서

모래 더미를 토닥거리며 집짓기 놀이를 하던 어린 내가 마흔여덟이 되어 손수 깎은 문패를 걸었다 이 집에 온 그해 여름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 온 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집 둘레를 몇 바퀴나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하셨다 아버지는 문패를 가진 적이 없었다
--- 「문패」 중에서

그럴 줄 알았으면 산에서 그냥 죽을 걸 그랬어요
아버지가 죽고 아재가 죽고 아무개가 죽고
개돼지처럼 사람이 죽고 사람처럼 개돼지가 죽고
기어이 죽일 거였으면 결국은 죽을 거였으면
그 푸른 바다는 건너지 말 걸 그랬어요
그 높푸른 하늘을 우러르지 말 걸 그랬어요

코발트 레드
빛나는 피바다를 건너 나는 이제 집에 갈래요
어멍 아방 묻혀 있는 섬으로 갈래요
--- 「코발트 레드」 중에서

불은 길을 내면서 동시에 달렸습니다
의성에서 영덕까지 그 험한 산길을 순식간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그랬습니다
가로막는 모든 걸 태우면서
우리가 고속 도로를 낼 때 그랬습니다
나무를 살해하면서
새를 도륙하면서
산을 뚫고 강을 건너며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기어이 불길을 만들고 바다까지 달려갔습니다
불은 우리가 낸 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쉴 틈조차 없어 고속 도로 휴게소를 태우면서
그만 멈추라는 표지판도 태우면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우리가 그랬습니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불은 모든 걸 다 태우고서야 멈췄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멈추지 못하고
활활 타는 중입니다
국경을 넘어 달립니다
대기권을 벗어나 달립니다
길도 아닌 곳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불길 전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미래에 대해 생각하니 미래가 걱정이다
벌써 오래전에 미래에 도착했는데

죽은 시인이 남긴 시를 자주 읽는다

시를 읽는 동안 꽃은 지지 않고 기다렸다
이상한 시간이었다

2026년 5월
피재현

추천평

솜씨 좋은 정원사이자 목수이기도 한 피재현 시인은 온갖 살아 있는 나무들, 죽은 나무들과 함께 지낸다. 그의 손길을 통해 씨앗이나 묘목이 꽃을 피우고, 부서지고 망가진 존재가 오롯이 되살아난다. 시인이 나무에게서 터득한 ‘식물성’의 시선은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문패」에 담긴 여정처럼, 그 자신이 불안하고 고단한 이주와 이식의 경험을 지녔기 때문이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뭇 존재들에 대한 가없는 공감과 연대, 세상을 떠난 이들도 극진히 모시고 기억하는 마음은 거기서 발원한다. 본래 시인의 일이란 이런 것이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고/일단 함께 울어 주는 일”이다. “함께 겨울을 견디는 일/땅이 녹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그의 정원과 공방은 마을과 세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1부에 정감 있게 그려진 마을의 일상은 2부의 가족사를 거쳐 3부에 이르러서는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농촌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 주는 시편들로 확장된다.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의 애환을 읽으며 ‘누가 우리의 이웃이고 식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4부에서는 생태주의적 사유가 중심을 이룬다. 시인은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산천을 바라보며 “나무를 살해하면서/새를 도륙하면서/산을 뚫고 강을 건너며/앞만 보고” 달려온 문명의 질주를 멈추라고 말한다. 피어나는 꽃보다는 ‘씨감자’ 같은 그의 시들을 아껴 읽으며 전쟁이 계속되는 봄날을 견딘다. -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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