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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 온 하얀빛
이건우
걷는사람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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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언제나 조금 더 먼 것처럼 우리는
탐지견
어거스틴
스티커
크림
결석
어항
희고 따뜻한 손
어제의 어금니
베타 테스트
베란다
한사코
차연
유아론
우리 어린 날의 사랑

2부 숲은 오래 머무는 밤 같다
우리의 숲
등화관제
우후
크라운 샤이니스
사이안
우기
데드 섹션
새는 밤
믿음의 다리
라자루스
애글릿
Gyro

3부 여름은 빛나고 축축합니다
흰 새
버스가 경로를 이탈했지만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마린스노
침상
푹푹
존재의 바다
나프탈렌
트랜스
레윈존데
배꼽만 남은 사람에게
아주 긴 폭죽 구경
폭죽

4부 방금 떠 온 하얀빛
풀장
흘러가는 안녕들
안 버리는 밝은 마음
무중력 거미
대적반
물마루
양생 중입니다
데스밸리
올리브그린
더미
추상

술래잡기
구태여

해설
빛의 끝
―김태선(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2018년 계간 『포엠포엠』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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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00g | 125*220*10mm
ISBN13
9791175010352

책 속으로

희고 밝은 해
빛으로 짠 그물과
붐비고 푸르고 많고 드넓은
돌아가고 돌아오는
바다와 물결과
단단함과 또 단단함과
문득 눕는 바위와
여전한 흰 새와
흰 새 떼
사이
가르는 빠른 흰 배

찢어지는 바다
흰 새를 닮은
돌아가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희고 밝은 바다
빛으로 짠 그물을 찢으며
가는 빠른 흰 배
--- 「흰 새」 중에서

나는 일없이 거실을 거닐다가
창밖을 보는 일이 잦다
가까이 붙어 선 유리창은 흐리다

나프탈렌보다 밝은 방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두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달빛을 닮은 것들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

마음은 흐르고 몸은 선다
--- 「나프탈렌」 중에서

쏘아 올린 것들에 기대어 영원을 건너다보는 한 철이었다

붉어져선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마음이라 생각했고

그런 여름을 오래오래 겹살곤 했다

남은 것조차 냄새처럼 흩어지는 밤

아침이 오면 가을이 온다

늘 그랬다는 듯 하얗고 맑은 채로

모두 돌아오듯 오고야 말 것이라고

해변의 죽은 포말들을 주우며 생각했다
--- 「폭죽」 전문


표면에는 늘 맺히는 것들이 있고
맺히는 것들은 하나 둘 하나가 되고
흐르기 시작하고
너와 내가 잠겨 있는 계절의 방식으로

우리에게서 건져 낼 수 있는 것은
방금 떠 온 하얀빛

표면이 녹아 하얀 반점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
기쁜 일이야

안 버리는 밝은 마음
하늘이 맑아서
--- 「안 버리는 밝은 마음」 중에서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어렵게 고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건너지 않았으니 호수 같은 미래가 오겠지요 또다시 주말이 오고 여름이 오듯 무서운 미래가 건너오겠지요

오늘은 여름입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네요

--- 「양생 중입니다」 중에서

차가운 숨을 들이마셔도 뜨거운 숨이 나옵니다 마음이 익는 방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나비라고 부릅니다

희고 밝습니다 피어남과 동시에 흩어집니다 나비가 나는 방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나비가 앉아 있고 나는 나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희고 밝은 나비는 보이지 않습니다 흩어지는 것들은 사라지기 위해 돌아옵니다 늘 그랬습니다

숨이 보이지 않습니다 희고 밝은 것들이 빈 곳에서 날아오고 있습니다

--- 「술래잡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건우 시인의 첫 시집 『방금 떠 온 하얀빛』이 걷는사람 시인선 147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이 오랜 시간 사유해 온 존재와 관계, 시간과 소멸의 감각이 밀도 높게 펼쳐진다. 이 시집은 ‘빛’을 중심 이미지로 삼아 보임과 사라짐, 도달과 이탈이 동시에 일어나는 세계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먼발치에 머무는 빛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은 빛이 닿는 곳과 더불어 그 이면에 자리한 어둠까지 함께 끌어안으며 세계를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환원하지 않는다. 이건우의 시에서 빛은 단순히 사물을 드러내는 매개가 아니다. 빛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어둠과의 대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인식은 시집 전반을 관통하는 관계 맺음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와 만나고 어긋나며, 그 과정 속에서 잠정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어거스틴」, 「크림」, 「마린스노」 등의 시편에서 시인은 시간의 흐름과 소멸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는 일이면서 동시에 어둠과 그림자에 이르는 과정임을 시는 차분히 보여준다. 익어 가는 열매, 흘러넘치는 크림, 바닷속에 흩날리는 마린스노의 이미지는 생성과 소멸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운동임을 암시한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자라게 하는 토대가 된다. 이 시집에서 ‘마음’은 흩어지고 되돌아오는 것으로 그려진다. 서로 다른 존재들은 완전히 이해되거나 하나가 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말을 건네고 나누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는다. 말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이며, 현재를 넘어 서로의 미래에 닿으려는 시도다. 시적 화자는 언제나 표면에 머무르며 넘을 수 없는 경계를 자각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미세한 빛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태선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건우의 시는 “빛을 보며 그것이 떠나온 곳을, 다시 이르게 될 곳을 살”피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와 다시 돌아갈 그곳을 헤아린다”고 짚어 냈다. 이건우의 시는 사라짐과 헤어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떠나보내는 일과 시작하는 일이 다르지 않음을 사유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과 헤어진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자, 그 상실을 견디며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 첫 시집은 빛이 머물다 떠나는 자리에서, 존재들이 남기는 흔적과 마음의 움직임을 끝까지 응시한다.

시인의 말
빛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내게 주는 자명한 믿음이 있다.

나의 믿음들은 그림자처럼 곳곳에 있다.

빈 곳에서 날아오는 희고 밝은 것들을 기다린다.
나는 그림자를 앞세워 환하게 걷는다.
2025년 겨울
이건우

추천평

이건우는 도무지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지 않으려 해도 기어코 터져 나오는 것 사이에서 쓴다. 쏟아질 것 같은 환한 마음으로 쓴다. “거대한 빛의 구멍”(「애글릿」) 같은 세계를 바라보며 쓴다. 웅덩이에 비친 얼굴을 지나치지 않으려 애쓰며 쓴다. 그래서 이건우의 시를 읽으면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떤 얼굴로 살고 있는가.
이건우는 끝나지 않는 긴 꿈과 같은 시간 속에서 “고여 있는 것들”(「양생 중입니다」)의 슬픔을 보는 사람이다. 있음과 없음 사이에 존재할 수 있을까, 사라짐으로 가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추운 꿈에서 덜 추운 꿈으로”(「베란다」) 자꾸만 깨어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투명의 안으로 보고자 하면서, 투명으로 빽빽한 헛간 같은 세계에 있다. 아귀가 딱 맞지 않은 채로 존재하거나 때때로 녹아 흘러내 리는 ‘나’를 발견한다. 모래성이 녹아 해변이 되고, 바다로 나아갈 수도 있음을 안다. 그런 힘으로 “만질 수 없는 방식으로만 만질 수 있는 것”(「희고 따뜻한 손」)에 닿으려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는 미래를 본다. 두 손으로 “두꺼운 미래”(「라자루스」)를 기꺼이 열며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한다. 밝은 하얀빛을 시로 뜬다. - 안미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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