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보험금. 막무가내의 탐욕 앞에서 “단순한 모욕을 넘어 인간이라는 근원을 부정”당하는 감각을 감지할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 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은 탐욕의 죄를 심판하는 법원의 풍경과 이를 둘러싼 논리 싸움을 공들여 묘사하고, 법조계에 몸담아온 작가만이 전달할 수 있는 섬세한 디테일과 더불어, 일반 정서대로 이뤄지지 않는 법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종사자와 의뢰인이 경험하는 무기력과 분노를 생생하게 담는다.
“합리적 의심이 조금도 없을 수준까지, 일말의 의혹도 없는 확신에 도달할 만큼의 증거”를 요구하는 게 한국의 법 현실이다. “개성이 있고, 세계관이 있고, 저마다의 확증편향”이 있는 판사들의 판단에 따라 “다른 절차, 다른 재판, 다른 결론”이 도출되는 것도 법 현실이다. 법이 “정의의 실현보다는 사회의 유지, 즉 질서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도 법 현실이다. 하지만 여러 착오와 개정을 거쳐 만들어진 법은 확고부동하지만은 않다. 사건별로 다른 해석을 적용하면서 조금씩, 아주 느리게 변한다. 법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소설 속 대사처럼, 결국 우리가 법이 움직이게끔 계속해서 들이박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의 재판』 속 악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세한 맹점을 파고들며 법을 마음대로 휘두를 때, 법은 피해자를, 의뢰인을 독사처럼 깨문다. 악인의 폭력만큼이나 법의 무심함이 맹독처럼 피해자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악과 맞서기 위해 법이라는 형식과 제도를 연구한 이가 법의 틀 안에서 반격을 준비할 때, 법은 서서히 또다른 뱀처럼 머리를 세우기 시작한다. 밟히면, 꿈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