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털 모자를 쓴 시인을 본 적이 있는가. 시인 이전의 그는 양을 죽여 성과 속의 접경에서 통과의례를 치렀다. 살해자라는 죄목으로 산정에서 추방당할 때 자신이 죽인 양의 털로 만든 모자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순결한 양의 털과 깃털의 유전자를 보유한 채 저잣거리를 유랑한다. 죄가 들끓는 세속으로 내려와 속되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만나는 자. 순결한 생명체를 죽여 얻은 이름 시인으로 세상을 주유하며 이야기 유포자이기를 자처한 자. 그는 수시로 변하는 세계를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고, 길 없는 길에서 도리어 수다한 길이 태어나는 자유를 구가한다. 그가 하는 일이란 떠돌이 근성으로 “춤추는 먼지의 노래”를 부르는 것(「나빗가루 립스틱」). 모든 고정된 것과 일방향의 좌표를 부정하며 양털 같은 언어를 날린다. 어쩌면 그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 칩거하던 동굴에서 나온 자라투스트라의 변종일지도 모른다.
이 인물이 지혜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시를 읊조리며 낯선 세계가 또 다른 자아를 발생시키는 사정을 언표한다. 그는 창녀들이 있는 골목으로 안내받았을 때 정글보다 거대한 홍학 이미지로 그 잔상을 덮으려 하거나, 시집을 꺼내어 읽을 틈을 엿보는 뼛속까지 시인이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도리어 의외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노라며 환영하고, 최상의 것을 얻으려는 극렬한 투쟁보다 살아 있음의 감각을 더 소중히 여긴다. 체험의 시간과 글쓰기의 시간이 나란히 놓인 삶에서 그가 하는 일이란, 언어 사전에 새겨진 정의를 일껏 부수고, 같은 음을 다르게 듣는 감각과 역설, 반어로 변이종을 만드는 것이다. 그를 키운 건 마음을 가로지르는 온갖 통점들. 이는 살갗이 벌어지는 듯한 고통의 순간에 자기의 것이 되는 시 언어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자유의 형식을 만들어 가지만, 그 자유가 곧 고행이기도 한 수행자의 면모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