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죄 없는 것들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진서윤의 희망은 허공을 흔쾌히 견딘다. “사람의 시간을 살고 있는” 현실을 견디려면 냉혈동물의 시린 징후로 체온이나마 남는 법인데, 그마저 징그럽게 느껴지면서 “갈수록 사는 일에 발음이 서툴”다. 매일 태어나는 서류와 새로운 필체들의 밀림 속에서 그는 “나를 끌고 다닌 것이 부유하는 책상뿐”인 일상성의 운명 속에 속절없다. 그러니 “그의 몸엔 구름이 가득하다.” 그것은 “잘 마른 구름”이어서 “통증 없는 아픔을 앓”는다. 게다가 “자유가 허기질수록” “감당해야 할 것은 굴욕”만이 아닌, “불길하고 아름답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도무지 “꿈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같아” 마른 구름으로부터 “점점 굵어지는 비를 허락”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산책자로서 “한없이 젖고 싶은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결국 “자신을 쥐어짜던 손아귀의 힘과 가장 가까웠던 일생/ 살아온 날들이 대부분 젖”은 빨래의 자장권 안에 낮게 엎드려서 살아왔다. 이때 “가장 환한 몸으로 뭉쳐져 있는/ 바짝 마른 성자”가 걸레이다. 구름-비-걸레로 하강하는 구름의 시학이 진서윤을 떠돌고 있는 의식이라면, 비의 상상력은 “가지 끝에 매달린 물방울 안에서 새 한 마리를 꿈틀거”리게 하듯 “시절도 인연도 한곳에 머물지 않고 순환되어 흘러간다.” 그래, 그러다 보면, “소박하고 미안한 것들이 모여 있는 저녁”에 “나무에서 불고 나무에서 그치는 바람이 가득”하게, “공원의 나무마다 푸른 점화가 한창이”면, “목마른 당신”과 함께, “비의 방향”으로, “아직 아무도 걸어보지 못한 길”에 골몰하는 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두려움 없이, “속없어 아름다운” 길이 “어쩌지 못하는 몰락”일지라도, 그게 회귀에 대한 희망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