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가만히 걸으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종이 아래 동전을 두고 연필로 그 위에 계속 선을 그으면 동전의 모양이 본떠지는 것처럼, 뭔가가 보이지 않을 때 어딘가를 내리 걷고, 밟으면 그게 뭔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쳇바퀴 같은 학교 밖과 안을, 도시를 하염없이 걸어 다닌 날들도, 정원에서 일부러 나뭇잎을 밟았던 날도, 이네스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조차 전부 마음의 모양을 알아내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음은 입술의 모양, 혀의 모양, 숨과 바람의 모양이 되었다가 제멋대로 커져서 터져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