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사람들을 잠깐이라도 같은 자리, 같은 크기, 같은 마음으로 겹쳐보려는 ‘겹소망’을 꿈꾸는 소설가. ‘도끼책’을 쥐고 깨기만 하면 새로운 담론이 범람하는 단단한 땅을 찾아다닌다. 모든 대화와 관계가 절대 메워지지 않는 ‘맞틈’으로 느껴지지만 불가능해도 맞물려보고 싶다. 지우고 덮어도 드러나는 게 있으므로. ‘꿈펜티멘토’는 그런 악몽에 시달린 날들에 달아둔 제목이다. 당신이 슬픈 사람이라면 ‘흉충’을 쥐여준 뒤 말해주고 싶다. 슬픔을 말하는 단어가 있을 뿐 슬픈 단어는 없다는 것을. 장편소설 《여름은 고작 계절》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바깥의 사랑들》이 있다.
“집요하게 그리워하고 진심으로 빌 줄 아는 능력, 신비의 영역에 기대를 거는 능력. 윤지현은 그 빛나는 ‘슬픔’의 힘으로 이야기를 불러들인다. 이 소설은 한낮의 물비늘 같다. 손을 뻗으면 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어느새 깊이 빠져들고 마는, 비명과 울음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한 편의 추도사와 같다.”
이 사랑의 화살 같은 소설은 과녁에 꽂히지 않고 영원히 앞으로 나아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딘가로 향하는 것, 내내 기다리는 것,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것은 오직 호기심, 집요한 관찰, 기다림, 그리고 쏘아질 결심이다. 사랑을 쏘다, 그건 어쩌면 동의어를 반복하며 열렬히 타이밍을 재는 큐피드의 혼잣말. ─
정신은 가만히 걸으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종이 아래 동전을 두고 연필로 그 위에 계속 선을 그으면 동전의 모양이 본떠지는 것처럼, 뭔가가 보이지 않을 때 어딘가를 내리 걷고, 밟으면 그게 뭔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쳇바퀴 같은 학교 밖과 안을, 도시를 하염없이 걸어 다닌 날들도, 정원에서 일부러 나뭇잎을 밟았던 날도, 이네스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조차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