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두 번째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자, 데뷔 20주년에 맞춰 2026년 새롭게 출간하는 책이다. 이 소설은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무척 다양하고, 한 시대 안에서도 캐릭터마다 개성과 삶에서 내리는 판단들도 다채롭다.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다 따라서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이 작품은 놓쳤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 놓쳤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찰란 피크닉』은 어른들의 방식이 아닌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곱 아이들의 여정을 그린다. 소설을 읽으며 이 아이들만은 어른들의 비관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저마다 최대치의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자꾸 바라게 됐다. 이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꾸는 꿈이고, 우리 모두가 잊어버린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세상을 다 주는 힘은, 이 세상을 다 받아낼 힘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겠는가. 지숙이의 순수를 나는 '강인한 무지'라 부르고 싶다. 인간처럼 사회적으로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지숙이의 지능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탐구하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탐구해내는 용기가 온갖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사회성이 결여된 그 무지에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강하다.
세상에 책과 나 단둘이 남은 것만 같은 고요한 밤, 책이 나에게 작은 이해 한 쪽을 나눠 주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찰나에 잠시나마 이 불가해한 세상이 이해되고 내가 깨우친 사람이 된것같은 황홀한 착각에 빠진다. 혼자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상실, 비탄, 고통에 대한 이해 역시 책의 도움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읽는 것으로 성취를 바라지도 대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포기할 것도 없었다. 읽는 것에 있어 내가 질투할 유일한 대상은 미래의 나뿐이었다. 적어도 걔는 나보다 많이 읽었을 테니까.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짜릿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누구에게 무엇으로도 증명할 필요 없이 오로지 나의 관성으로만 지속하는 일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루
세계를 만드는 의지는 상상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창작의 힘은 '문을 개방하는 힘'에 가깝다. 좋은 이야기란 작가가 자신의 나침반을 믿고 가장 멀리까지 항해했을 때 마주하는, 선박에 닿은 파도의 흔적들이다. 작가는 사회가 바다에 박아놓은 구조물들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 과정이 곧 창작의 여정이다. ㄴ기존의 것을 답습하면 안 된다.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
우연히 읽은 기사에 소개된 책, 블로그 주인장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 띠지에 적힌 추천사가 좋았던 책, 내가 흠모하는 인물이 '인생 책'으로 꼽은 책 등을 바탕으로 만든 나만의 목록은, 이를테면 나라는 인간의 고유성이다. 데이터는 절대 알지 못할 우연한 만남들이 중첩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누구의 것과도 같지않은. 그리하여 그 자체로 고유한. 나라는 인간.
독서에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기억력과 요지를 파악하는 능력만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골몰하고 의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쉬워서 읽는 내내 철저하게 장악할 수 있는 글보다 휘말리고 휩쓸려서 어찌할 줄 모르겠는 이야기가 결국엔 우리 발목을 오래 붙잡으니까.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편협한 독자이고, 어떤 기준에서는 줏대 없는 독자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내가 복잡한 독자인 것이 좋다. 양서와 양서 아닌 것을 오가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독자인 것이 그런 자유야말로 내가 책 읽기에서 가장 누리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