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한 시절을 제대로 통과해 본 사람만이 지닌 눈빛이 있다.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고 헤아린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시선의 폭과 깊이, 그리고 따스함. 최진아 작가가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같은 자리에서 걸려 넘어진다. 이제 괜찮아졌다고 여기는데도 어떤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때로는 몸이 아파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곳에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삶의 한 장면이 있을지 모른다. 주황빛 커튼이 드리운 안방 문 앞에 앉아 있던 다섯 살의 아이처럼,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데려가 달라며 애원하던 열네 살의 아이처럼.
최진아 작가는 그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평온한 일상에 생겨난 균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오래된 기억과 마주하고, 그 시절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을 하나씩 읽어낸다. 그 과정에서 부모를 향한 원망과 사랑이 공존할 수 있음을,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과 자신의 삶을 지키는 일이 양립할 수 있음을 배워간다. 무엇보다 귀한 것은 그 지난한 시간 끝에 얻은 시선이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낸 사람은 타인의 아픔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의 아픔을 따라가다가 문득 자기 삶의 어떤 장면 앞에 멈춰 서게 될 것이다. 저마다의 상처는 보편적이면서도 지극히 개별적이기에, 누구도 대신 해석해 줄 수 없는 마음의 행간이 있다. 이 책이 그 행간을 읽어볼 용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상처가 모두 아물어야 비로소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테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최진아 작가가 자신의 상처와 거듭 마주해 온 시간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자꾸만 같은 자리에 걸려 넘어지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준다. 참 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