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설을 기다렸다. 망설이기 전에 저질러버리는 인물들이 삶을 들이받는 이야기. 천명관의 소설을 집어든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인간군상들이 상상하는 그 속도로 내달린다. 전쟁과 이념이 할퀴고 간 1950년대의 서울. 해방촌 판자촌에 “도시의 유령”처럼 남은 앵벌이들은 죽은 이의 시체에서 벗겨낸 바지를 입고 “지푸라기만도 못한 인생”이라도 이어나가려 제 곡조로 목청껏 노래한다.
“우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는 아버지 양 목사의 말씀을 받아먹은 앵벌이들이 약에 취하고 두들겨 맞고 불에 타고 모욕당하는 순간, 눈 먼 소녀 ‘연이’의 성스러운 목소리와 거리의 악사 ‘동이’의 아코디언 소리가 찰나를 밝히는 순간, 빛을 목격한 이들이 기어이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서로를 돌아보는 순간, 약하고 악한 존재들이 추악한 방식으로 고귀해지는 순간. 소설이 끝난 자리에 남는 건 구슬프고 흥겨운 아코디언의 음색이다. 이제 그 음악에 홀린 우리가 소설의 속도대로 맹렬하게 살아갈 수밖에.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소설, 가슴에 불을 붙이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