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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자크 라캉 3. 줄리아 크리스테바 4. 간주곡 : 과학철학에서의 인식론적 상대주의 5. 뤼스 이리가레이 6. 브루노 라투르 7. 간주곡 : 카오스 이론과 <포스트모던 과학> 8. 장 보드리야르 9.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10. 폴 비릴리오 11. 괴델의 정리와 집합 이론 : 남용의 사례들 12. 에필로그 13. 부록 # A 경계의 침범 : 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 14. 부록 # B 패러디에 덧붙이는 말 15. 부록 # C 경계의 침범 :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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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난질에서 시작되었다. 몇 해 전 우리는 미국의 학계 일각을 휩쓸고 있는 지적 조류에 접하고 나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우리도 그냥 <포스트모더니즘>이라구 부르겠는데,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광범위한 영역이 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수용한 것으로 우리 눈에는 보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합리주의 전통을 거의 노골적으로 부정한다는 것, 경험적 검증과는 동떨어진 이론적 담론이라는 것, 과학을 수많은 <이야기>나 <신화> 또는 사회적 구성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인식론적,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우리 중 한 사람(소칼)이 변칙적 실험을 시도하기로 했다. 여러 해 전부터 급증하고 있는 저술 양식을 패러디한 논문을 미국의 인기 있는 문화 연구지인 <소셜 텍스트>에 투고한 뒤 과연 편집자가 그 글을 게재할 것인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경계의 침범 : 양자 중력의 변형 해석학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논문은 억지와 후안무치한 궤변으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은 극단적 형태의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내걸고 있다. <그 어떤 개인으로부터도, 아니 인간 전체로부터도 독립된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구태의연한 <도그마>를 비웃고 나서 이 논문은 <사회적 '실재'는 물론이고 물리적 '실재'라는 것도 기껏해야 사회적, 언어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못박는다. 잇따른 논리의 비약을 통해 이 논문은 <과거에는 보편적인 것, 불변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유클리드의 나 뉴턴의 G(중력)도 지금에와서는 불가피하게 자신의 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주장과 대동소이한 내용이 논문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소칼의 논문은 채택되어 잡지에 실렸다. 설상가상으로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적 구성주의에 대하여 뛰어난 과학자들이 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논박한 <소셜 텍스트> 특별호에 실리게 되었다. <소셜 텍스트>의 편집자들은 자기네 발등을 도끼로 찍은 것이다. 얼마 뒤 소칼이 진상을 털어놓자 언론계와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수많은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가 소칼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아주 감동적인 내용도 있었다. 그들은 소칼에게 고마움을 나타내면서 자기들의 학문을 지배하고 잇는 포스트모더니즘 조류와 상대주의 경향에 대한 반감을 토로하였다. 한 학생은 공부를 하기 위해 자기가 피땀 흘려 모은 돈이 동화에 나오는 벌거숭이 왕의 옷을 구입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개달았다고 말했다. 또 어떤 학생은 자기와 주변의 친구들은 그 패러디를 읽고 감격했지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썼다. 전공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아무리 굴뚝 같아도 일단 안정된 자리를 얻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p.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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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인슈타인의 전략을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지만 설명법을 내실 있게 분석하려면 그 바탕에 까린 이론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아인슈타인이 글에 들어 있는 표현기법과 물리학의 내용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투르의 분석은 아인슈타인이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 p.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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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전면적 비판으로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킨 <지적 사기>(1997)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른바 '소칼의 장난Sokal's Hoax'으로 불리는 이러한 일련의 논쟁적 사건은 소칼이 패러디와 넌센스로 가득 찬 논문 [경계의 침범: 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를 ≪소셜 텍스트Social Text≫라는 포스트모던 저널에 기고, 결국 게재에 성공하였으며, 후에 학문적엄밀성을 시험해 보기 위한 시도한 것이라고 폭로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어 소칼은 루벵 대학 물리학과 교수 브리크몽과 협력하여 <지적 사기>를 프랑스에서 출판하였고, 여기서 프랑스 철학자들이 과학을 남용한 사례를 철저히 분석, 비판하면서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해 전면적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소칼과 브리크몽이 이 책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의 남용 사례들을 철저하게 열거하여 비판하는 것, 둘째 포스트모던 과학에서 나타나는 인식론적 상대주의의 조류를 비판하는 것이다. 첫째, 소칼과 브리크몽이라는 전문 과학자의 눈에 비친 일군의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상은 한마디로 엉터리다. 라캉, 보드리야르, 크리스테바, 들뢰즈 같은 이름난 지식인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원래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과학적 개념을 써먹거나 이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성찰은 고사하고 개념의 정확한뜻조차 밝히지 않은 채 전문 과학 용어를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은 라캉으로부터 시작된다. 수학, 특히 위상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키려는 라캉의 시도는 하찮은 지식을 과시하고 의미가 결여된 문장을 조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라캉의 시도는 '세속 신비주의' 그 이상이다. 피상성의 측면에서 크리스테바는 라캉보다 앞선다. '시적 언어는 수학의 집합 이론을 기초로 하여 이론화할 수 있는 형식체계'라고 단언하는 크리스테바는 이렇다 할 설명이나 근거 없이 분절집합, 합집합, 확률분석, 힐버트의 유한론 등의 용어들을 그대로 인용한다. 소칼과 브리크몽의 눈에 비친 이리가레이 역시 유체역학에 자리잡은 수학적 문제들과 물리적인 것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예를 들면 '고체는 남성으로 인식되는 반면, 유체는 여성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유체역학은 고체역학보다 뒤떨어져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기호학적으로 해석하는 라투르는 상대성 이론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로 인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 또한 '보드리야르의 철학을 덮고 있는 번지르르한 말의 베니어판을 걷어냈을 때 거기에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할 정도로 보드리야르의 저서에서는 과학 용어가 본연의 의미를 철저히 무시당한 채 엉뚱한 맥락에서 남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오스, 극한, 에너지 같은 과학 용어와 카디널 이론, 리만 기하학, 양자역학이 거론되는 들뢰즈·가타리의 저서는 엄밀한 논리성 없이 문맥을 벗어나 사용된 고밀도의 과학적 용어들을 담고 있다'고 비판한다. 둘째, 현대 과학철학의 상대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것은 '만약 모든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담론에 불과하다면 물리학은 문화 연구의 분과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은 문화적 조건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유효하다'는 소칼과 브리크몽의 기본 입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른바 과학적 보편주의와 상대주의로 일컬어지는 과학적 인식에 대한 논쟁에서 이들이 취하는 입장은 그만큼 확고하다. '프랑스 사유의 거대한 전통을 과학적 엄밀성만으로 환원, 거세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칼과 브리크몽이 시도한 일련의 의도적 행위는 일단 자신의 학문적 혹은 정치적 입장을 사회적으로 쟁점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이후 가히 '프랑스 철학 열풍'으로까지 표현할 만큼 프랑스 철학의 결정적 영향을 받은 우리지식계는 이 책이 향하고 있는 비판의 화살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지적 사기>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들이 우리 지식 사회에 미칠 파장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