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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
서론 |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이유 절대 완전한 기도 | 새롭게 풀어 쓴 주기도문 1장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2장 이름이 거룩합니다 3장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4장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 안에 5장 오늘 우리의 양식을 주소서 6장 우리가 용서했습니다 7장 시험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8장 악에서 구출하옵소서 9장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새롭게 풀어 쓴 주기도문 독자가 풀어 쓰는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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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선교의 의지를 다져야 한다. 그분의 이름이 선포될 때만 구원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이 말씀의 시제가 ‘미래형’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과 백성들로부터 높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 영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분명 그 날은 도래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의해 드러날 것이다. 그 놀라운 미래적 성취를 위해 우리가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고 기도할 것을 주님이 가르치신 것이다. ---p.42 이처럼 우리 인간 역사의 중심에는 늘 하나님 없이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이른바 욕망이라는 열차에 탄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주님이 아셨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기도보다, 하나님을 위한 어떤 종류의 사역이나 역사보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가 삶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만일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잠시 좋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자기에게 갇혀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살게 되며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을 아신 것이다. ---p.52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이 걱정하는 사탄의 문제에 직면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제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사탄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화적 사고 때문이다. 그같은 신화적 사고는 우리가 쉽게 이길 수 없는 존재로서 악한 영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런 생각이 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이, 다시 말해 “하늘, 공중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놓여 있느냐?”라고 의심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이 온전히 통치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같은 오해는 바울이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사탄을 말할 때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등으로 쓴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늘(공중)을 아직도 완전히 멸해지지 않은 사탄의 세력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p.60 우리는 이처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상해서 아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제대로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지만 아들이 주저한다. 아버지에게 명령이나 요구는 고사하고 눈치만 살핀다. 왜 그런 것일까? 만일 아들이 입양된 경우라면 아직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완전히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p.82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은 그 앞의 주기도문과 달리 약간의 논쟁이 있다. 먼저 그 부분에 대해 이해한 다음 그 의미를 살피려 한다. 논쟁의 흔적은 개역개정번역본을 비롯한 한글번역본이 이 기도 부분을 ‘괄호’로 처리한 데서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 부분이 KJV을 제외하면 NIV 등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에는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이것만이 아니다. 이 기도문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또 다른 논쟁은 이 기도문 앞에 ‘대개’를 포함하는 여부이다. 요즈음 찬송가에 나오는 주기도문에는 ‘대개’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지만, 예전 통일찬송가에는 ‘대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1936년 이전의 성경에는 아예 괄호도 없이 ‘대개’까지 포함된 채 기록되어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기록한 것일까? ---p.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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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크리스천이 기도하지만 기도는 늘 어렵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위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다. 그만큼 완벽한 기도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반드시 드리고 싶은 기도이기에 예배 중 늘 사용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주기도문은 예배의 끝을 알리는 기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현상이 생긴 이유는, 주기도문이 분명히 주님이 가르쳐주신 완벽한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기도문 자체가 완벽할 뿐 아니라 그 기도문의 각 단어와 문장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까닭에, 그 뜻을 풀어 헤아리지 않으면 마치 암호로 축약된 기도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그 자체로 완벽하기에 그 뜻을 온전히 알고 읽는 것만으로 충분한 기도가 된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기’를 가르치는 《절대 완전한 기도》는 주기도문의 뜻을 풀어 놓은 주님의 기도를 배우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새롭게 고쳐 쓴 주기도문을 읽는 것만으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온전하게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주기도문의 뜻을 자세히 해석하여 ‘새롭게 풀어 쓴 주기도문’이지만, 각 기도를 드리다 보면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와 만나는 일이 벌어질 것이고,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도 보일 것이다. 그때 우리 기도는 풍성하게 확장된 기도가 될 것이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우리 삶에 녹아든 기도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로 온전한 기도를 하기 원하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 이 기도를 드리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 하정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