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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源一,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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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어떤 소재를 선택할 때, 그 소재는 그가 여태껏 써온 소설의 유형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에는 소재의 경계점이 울타리를 두르고 있으며, 그는 그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 소재를 끄집어낸다. 인종이 피부색 언어 종교의 동질성을 좇아 모여살 듯, 가축이 사이가 좋은 이웃끼리 한울타리 안에서 살 듯, 소재 또한 그 작가의 개성에 걸맞게 비슷한 유형을 이루어 상상의 공간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원폭 피해자의 비극적인 삶을 소설화한 <히로시마의 불꽃>과 관련하여 얼핏 목축이란 말이 떠오른다. 일정한 용적을 확보하여 사방에다 널빤지로 울을 치고 가축을 그 울 안에서 방목하다 어떤 목적에 의해 그 중 한 마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럴 때, 가축이 많은 작가는 행복하다.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소재의 빈곤이란 가난한 목축업자를 연상케 한다. 내가 즐겨 선택하는 소재는 소외 억압, 또는 결핍과 관련된 삶이다. 갇힌 자, 병든 자, 굶주린 자를 선택할 때 어떤 이야깃감이 떠오른다. 그런 소재가 나에게는 자연스럽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내 목장에서 키우는 가축은 대체로 목에 쇠줄이 매여 버둥거리는 짐승, 병들어 신음하는 짐승, 주인이 먹이를 제때 주지 않거나 초지가 가뭄으로 말라버려 굶주린 짐승이 될 터이다. 그 짐승들이 절망의 눈빛으로 작가에게 간절하게 해방을 요구한다. 해방이란 갇힌 상태에서 자유를 얻게 하거나, 병을 고쳐주거나, 먹이를 풍족하게 주는 일일 것이다. 아니면, 가축을 기르는 용도가 그러하므로 선택된 짐승이 도살될 수도 있다. 도살의 경우, 잔인한 비유가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선택된 가축을 우리에서 꺼내는 그때부터 작가의 고통스러운 집필이 시작된다. <히로시마의 불꽃>이야말로, 그 목축의 비유가 적절한 예로 떠올랐다. 나는 그 소재를 오랫동안 준비했다. 쓸 짬을 얻지 못했기에 자료를 더욱 꼼꼼히 챙길 동안, 원폭 피해자 가족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자신이 당하고 있는 괴로움을 두고 한 맺힌 사연을 하소연해왔다. 물론 실제가 아닌 목장 안에서의 일이다. 나 역시 그들과 동참하여 아파하며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억누를 수 없는 분노로 필을 멈추곤 했다. 소설을 착수했을 때 주인공을 분신이란 극한까지 몰고 갈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씌어지고 말았다. 객관성과 냉철함을 확보하지 못했지 않았느냐란 반성도 들었으나 그들을 살려내어 그 어떤 희망을 줄 수는 없었다. 현실의 그 어느 구석에도 그럴 만한 구원의 빛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여러 차례 한국 원폭 피해자의 실태 보고서와 진정서가 상정되었을 때처럼, 이 소설 역시 사회로 하여금 그들에게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여전히 소외 억압 결핍 속에 방치된 상태이다. ‘산 자의 매장’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첫 발표 때의 원고를 다듬고 제목을 고쳐 다시 내보낸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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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92년 발표한 <그곳에 이르는 먼 길> 원고를 다듬고 ‘히로시마의 불꽃’으로 제목을 고쳐 새로 선보이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비극적인 삶을 소설화한 것으로 작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들을 치밀하게 취재해 원폭의 피해와 그 후유증,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생히 보여준다.
산제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인 화가 묘산의 집에 같은 고향 사람 정동칠과 아들 순욱, 딸 수임이 며칠 신세를 지기 위해 불쑥 찾아온다. 묘산이 고향을 떠난 지는 근 40년으로 아련한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정동철은 묘산보다 다섯 살 정도 위로 ‘똥칠’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푸줏간에서 일하던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의 가족은 원폭 투하 때 히로시마에서 죽었으며 동칠은 원폭으로 인해 피부병에 기억상실증, 말더듬증, 실금증 등을 앓고 있는 불구자였다. 역시 원폭 피해자인 게이코(경자) 사이에 낳은 순욱과 수임 역시 원폭 피해자 2세로 갖가지 병을 앓으며 사회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지만 특별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정동칠 일가가 갑자기 묘산 집을 찾은 이유는 병세가 더 나빠진 정동칠의 진찰과 치료를 위해, 그리고 관계 기관에 응분의 보상과 지원을 탄원하기 위해서이다. 달가워 않는 묘산 부부의 집 지하실 방에 겨우 머물러서는 먼저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방문하고, 다시 피폭 확인을 받고자 적십자병원, 또 진료를 받기 위해 경희의료원을 힘들게 찾아다녀 간신히 치료를 받게 된다. 원폭 피해의 살아 있는 증거가 되는 순욱은 피폭 당시의 상황과 후유증 사례를 모으고 원폭과 핵에 관한 서적을 읽어왔으며 피해자의 진상과 실태, 경제적 어려움을 알리고 대책을 강구하는 요망서를 작성하여 일본대사관에 제출하기 위해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파출소에 끌려가게 되고 결국 분신의 길을 선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