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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미디어는 꿈꾸기의 수단이요, 매개이기 보다는 꿈꾸기를 제한하고 한정짓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때 영화는 꿈의 미디어였지만, 오늘날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 오히려 꿈을 가두고 있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서 혹은 영화를 보면 꿈꿀 수는 있어도 영화를 넘어서 꿈꾸기는 점점 더 힘들어 졌다.
--- pp.158-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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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게이츠. 얼마 전 당신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물러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을 때 나는 그 속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구요? 당신은 그동안 너무 빨리 왔고, 이제는 그 빠른 속도가 확보해준 느림을 즐길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느림의 세계 속에 푹 잠겨보길 바랍니다. 그건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거니와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일이 될 겁니다. 그 느림을 즐기는 가운데 당신은 재충전될 것이고 동시에 그 느림 속에서 확보된 당신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에 걸 맞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탄생시킬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죠.
당신이 응용하고 개발해 디지털 세상을 독점하다시피 한 PC와 '윈도' 시스템은 날마다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을 감안할 때 다시 한 번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PC는 그 가격이 몇 해 전보다 내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쌉니다. 아이들과 부인에게도 각자의 PC를 사주고 싶지만 적지 않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비싼 PC를 꼭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PC기능의 십분의 일도 채 쓰지 않습니다. 지금의 PC에는 너무 많은 기능들이 들어 있습니다. 인터넷의 도로를 질주하는 데는 스쿠터 같은 작은 오토바이면 충분합니다. 굳이 몇 톤짜리 트럭을 몰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PC는 몇 톤짜리 트럭과 같습니다. 그래서 타고 다니는 데는 스쿠터면 충분하다며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들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사용료만 지불하고 쓰자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물러나기로 한 결정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을 하더군요. 미국정부와 반독점 소송을 벌이고 있는 당신이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디다. 일부 언론에서는 당신의 퇴진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분사(分社) 이후까지 내다본 장기 포석으로 이해하기도 하더군요. 즉, 분사될 경우 개발부문은 당신이, 판매부분은 스티븐 발머 신임회장이 맡아 타격을 줄이고 향후 재통합까지 노리는 전략이 밑그림으로 있다는 것이죠. 물론 당신은 '게임의 달인'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미스터 게이츠, 나는 이런저런 세간의 말들에는 솔직히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겁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이 지난해 출간했던 《생각의 속도》라는 책을 떠올려봅니다. 당신은 '1980년대가 질(質)의 시대요, 1990년대가 리엔지니어링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지요. 결국 당신은 디지털 세상이 전개되면서 속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지적한 셈입니다. 얼마 전 MIT의 폴 크루그먼 교수가 〈뉴욕 타임스〉(2000년 1월 16일자)에 실은 칼럼에서 당신을 전격전(blitzieg)의 장안자 구델리안(Heinz Guderian)에 비견한 것도 당신의 속도론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이해되더군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디지털 세상에서 속도가 가치를 만들고, 돈을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도를 내는 궁극적인 이유는 단지 돈을 좀더 만지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여유와 느림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는 그 여유와 느림을 어떻게 즐길 것이냐가 더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디지털 세상은 더 많이 압축된 시간과 더 넓어진 고독의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할 테니까 말이죠.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교육학 교수인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가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은 아프리카 개코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코원숭이는 일생의 삼분의 일을 잠자는 데 쏟아 붓는다. 그리고 깨어 있는 시간은 돌아다니기, 먹이를 구하고 먹기, 자유롭게 놀기로 삼 등분된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개코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와 당신도 그렇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때로 어슬렁거리고, 입맛을 다시며, 이리저리 바람같이 지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느림의 시간들이 우리 안에 있는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테니 말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 --- 빌게이츠에게 부치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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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로직은 마음의 텃밭에서 자라고 욕망을 통해 발현된다. 따라서 감성의 로직은 꿈을 주목한다. 꿈을 꾼다는 것은 자기 욕망의 타래를 그저 풀어놓는 것이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말하는 꿈은 단지 목표가 아니다. 목표에 집착하는 것은 반드시 후회를 낳는다. 그래서 진정한 꿈을 향한 목표는 집착으로 닫혀 있기보다는 희망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표는 때로 실패와 좌절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집착으로 닫혀 있지 않고 희망으로 열려 있다면 그 실패와 좌절은 후회를 만들기보다 새로운 도전의 목록을 만든다.
--- p.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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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의 속살 드러내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은 단지 기술혁명, 테크놀러지 혁명의 산물만이 아니 다. 디지털 원리는 기술과 테크놀러지의 외피를 벗고 우리의 일상 깊숙이 내습해 감성과 사고의 패턴까지 재편하고 있다. 이 책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각 부문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디지털 문명의 실체를 인문·사회학적으로 접근해 아직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디지털 세상의 속살을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속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빌 게이츠의 혁명 기치는 새로운 세상을 견인하는 힘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빨라져야 하는가? 정작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듣지 못한 채 사람들은 인체 신경망보다 복잡하게 얽힌 정보통신망 속에서 분주하게 헤매고 있다.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라고 일갈했던 밀란 쿤데라가 소설 《느림La Lenteur》에서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그 옛날의 한량들은?……. ' 묘사한 대목은 이러한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되묻는다. '속도가 느림의 즐거움을 앗아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리에게서 느림의 즐거움을 앗아간 것은 속도 그 자체가 아니라 속도를 빙자한 우리들의 조급함이다.' 저자의 이 같은 지적은 '우리는 왜 빨라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획득하는 데서 나아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걸 맞는 속도의 미덕을 창출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흔히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공간은 차가운 회색 지대라고 이야기된다. 정보화 사회의 여러 폐단과 그늘을 지적하는 온갖 목소리도 여기에 기초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명쾌하다. '디지털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정보도 기술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 이 책 《아톰@비트》를 통해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말, '감성을 깨우고 각자의 레퍼런스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자'라는 전언은 바로 이 대목에서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힘을 얻는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아톰에서 비트로의 변화는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며 디지털 문명을 적극 옹호했다. 《허풍 떠는 인터넷》의 저자 클리포드 스톨은 '인터넷은 포장이 극히 얇은 싸구려의 함정'이라면 비아냥 섞인 목소리로 디지털 세상의 폐단을 지적했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보는 디지털 세상은 인류의 온갖 희망을 현시할 유토피아도, 새로운 재앙을 몰고 올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가 그 속에서 숨쉬고 살아가야 할 새로운 삶터일 뿐이다. 진정한 디지털 문명은, 그들 몇몇 엘리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디지털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뿌리내리고 확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