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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편하게
피가 흐림 후 맑음 습진이 만든 병 허무, 끝 1995년의 결 어처구니없게도, 그러나 끝나지 않는 싸움 찰나의 연극 발문 | 무명한 사랑의 방법 | 전성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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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에 이르기까지 허택 소설에서 심화되어온 주제는 신체적, 사회적 몸의 건강이다. 사회가 급진적인 발전을 이룩하면서 유명한 삶을 좇게 된 수많은 무명한 이들의 몸이 허물어졌다. 성공한 여성으로서 아름답고 우아한 젊은 시절을 누렸던 「피가 흐림 후 맑음」의 ‘나’가 심근경색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몰리고, 「습진이 만든 병」의 남자가 도둑질도, 얌체 짓도 가리지 않는 도덕적 파탄자가 된 것도 바로 그 유명의 욕망 때문이다.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상실한 몸의 마지막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허무, 끝」의 화자는 자신의 여자를 빼앗은 친구에게 복수를 하고, 아내를 겁탈하는 위악을 저질렀다. 원망이 쌓인 그의 몸과 마음은 균형을 잃었다. 어떤 행동으로도 이미 틀어진 균형을 바로잡을 수 없기에 그는 허무의 끝에서 투신을 선택한다. 「찰나의 연극」 속 교차로 삼중추돌 사고로 사망한 두 사람은, 늘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외부의 압력에 취약한 삶을 살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끝내 스트레스와 압박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내적으로 붕괴된 순간에, 즉 안팎의 균형과 조화가 무너진 찰나의 순간에 사고가 발생했다. 「끝나지 않는 싸움」은 균형이 파괴된 실상을 양손의 대립이라는 독특한 상상력을 통해 그려낸다. 선한 의지를 가진 왼손과 악행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오른손. 한 몸에 있는 두 손이 이처럼 분열된 것은 사회의 냉기가 사람을 허기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냉기가 허기를 낳고, 허기가 쌓여 독기가 된다. 오른손이 저지르는 악행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온기, 즉 사랑이다. 36.5도 사람의 온기가 사회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이다. 표제작인 「언제나 편하게」의 화자인 여자는 앞선 화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불어닥친 시련과 고난을 거쳐 사랑과 생명의 가치에 눈을 뜬 사람으로 그려진다. 멈추지 않고 이어진 불행의 끝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전 남편과도 편하게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다. 그녀는 그렇게 성장한 윤리적 주체로서 존재하고자 한다.
『언제나 편하게』는 질병이 만연한 시대를 치유할 수 있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서로를 착취하는 상황을 넘어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현대사회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처참하게 무너뜨린다. 피로와 슬픔을 견디기 위해 더욱 해로운 것을 찾는 역설적인 악순환이 반복되고, 그러다가 때때로 젊은 사람이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 살풍경의 틈에서 치유자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온기를 잃은 채 오른손을 휘두르는 사내에게 온정을 베푸는 「끝나지 않는 싸움」의 보육원 할아버지와 꽃집 할머니가 그러하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살아온 두 친구의 대립을 중재하는 「1995년의 결」에 나오는 주점의 할머니가 그러하고, 교통사고로 죽은 자들의 영혼을 애도하는 「찰나의 연극」의 교장 선생이 그러하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러나」 속 외할머니는 가장 뚜렷하게 자애로운 치유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격무에 지쳐 역류성 식도염까지 앓게 된 외손녀를 불러들여 건강을 회복시키는 그녀는 치유자로서 존재하는 현로(賢老)의 전형이다. 시드는 생명을 정성껏 가꾸고, 성난 것들을 너그럽게 누그러뜨리고, 아파하는 것들을 애처롭게 보듬어 안는 존재들 앞에서 성나고 모난 것들은 날카로운 기세를 꺾지 않을 수 없다. 꽃잎들 위 이슬이 햇살 따라 영롱하게 반짝인다. 천사들의 보석처럼 영롱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빨갛다. 순결하게 빛나고 있다.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햇살에 담긴 장미 꽃잎들이 찬란하다.(「허무, 끝」, 105~106쪽) 이러한 건강한 세계, 충만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저마다의 생명이 약동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 꽃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세계를 잃어버린 우리는 문명을 얻은 대가로 건강을 생각하는 것을 잊었다. 『언제나 편하게』에는 생명이 소멸되어가고, 몸과 마음이 훼손되는 불인한 세계를 건강한 세계로 되돌리고 싶은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 간절한 마음을 실은 바람이 소설집 곳곳에서 불어온다. 바람은 생명의 숨결이다. 그것은 죽어가는 것들을 되살린다. 『언제나 편하게』는 지치고 다친 이들에게 후? 하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려 한다. 그것이 허택이 소설가로서 회복을 지향하는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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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대해 이토록 신경 써본 때가 있었던가. 일찍이 없던 팬데믹 상황이기에 작가 허택의 네번째 소설집은 그 의미가 더 깊다. 이번 작품들에서도 그가 천착해온 테마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몸의 소리’이다. 아예 ‘몸의 소리’를 내세운 소설집도 있었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런 메시지는 일관되게 흐른다. 각각의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몸의 소리’. 작가 허택에 의해 소환된,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를 병든 인물들. 그들 속에서 꽁꽁 갇힌 채 참고 참다가 더 견디지 못하고 절규로 터져 나오는 ‘몸의 소리’들. 그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 안에서 꿈틀대며 솟아나는 화해의 소리. 바로 그게 작가 허택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인 것이다.
- 정태언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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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허택의 작품은 몸을 살피게 이끈다. 치과 의사가 만나는 육체의 실상을 언어로 바꿔 재탄생시키는 작업, 그것이 허택 문학의 본령이다. 책은 얼음장 밑을 흐르는 냇물 같은 몸의 소리를 길어 현실의 언어로 힘 있게 옮기는 작품들로 차 있다. 소설 주인공들은 모두 몸을 지니고 있지만 제각각 다른 가치와 의미를 몸에 부여한다. 옥시토신, 심전도, 온기와 같은 몸의 소리는 포근함, 외로움, 웃음과 같은 삶의 언어로 모습을 바꾼다. 허택 소설에서 몸은 물리적 실체인 뼈와 살로만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영혼을 담으면서 영혼이 가는 방향을 때로는 천상으로, 때로는 지옥으로 틀어 썩게도 만든다. 몸이 변신해서 굴레를 벗고 움직이면 영혼도 무게를 덜어내고 훨훨 활동한다. 느긋하면서도 꾸준한 치유의 문학이다. - 정광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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