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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울음의 원무
허택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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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마른장마
영도와 여의도 사이
상실의 흔적
붉은 비닐 노끈
부부의 초상
야차 LC
웃음과 울음의 원무
N번째 살인미수 사건

해설 몸과 욕망의 서사와 새로운 수사학 | 정홍수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치과의사, 소설가. 200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소설 「리브 앤 다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리브 앤 다이』 『몸의 소리들』 『대사증후군』 『언제나 편하게』 등이 있다. 2017년 부산소설문학상, 2018년 제18회 부산작가상, 이주홍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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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135*200*20mm
ISBN13
9788982183621

출판사 리뷰

허택 소설에서 몸과 욕망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변주되고 있는 테마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변주의 소설적 방법들이다. 허택 소설의 관심은 현실의 반영과 모사 못지않게 현실의 재구성 쪽에도 있는 것 같다. “허택의 소설은 실재하는 현실과 작가가 만들어낸 인공의 현실을 동시에 껴안고 있는 이중성의 세계를 보여준다”(정호웅, 『몸의 소리들』 해설)는 비평적 언급은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인공의 현실’은 작가의 세계 해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현실의 변형과 재구성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허택 소설에서 알레고리,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기’의 화법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허택 소설에서 ‘몸’과 ‘욕망’은 테마이며 동시에 이야기의 형식이 아닐까.

선명한 대립 구도를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쪽에는 도덕, 윤리와 무관하게 자신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추구하는 인물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인물이 있다. 허택 소설의 많은 이야기는 이 구도로부터 시작된다. 이번 소설집을 여는 「마른장마」의 중심인물 정주와 명희는 고교 동창인데, 명희가 재수를 해서 정주와 같은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단짝 친구였다. 그러나 명희는 정주의 남자 친구 민석을 빼앗아 결혼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 난다. 이후 명희는 비교적 성공적인 길을 달린 남편과 함께 번듯한 가정을 꾸려가고, 정주는 배신의 상처를 안고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비슷한 구도는 「상실의 흔적」에서도 반복된다. 여성 화자 ‘나’는 대학 시절에 만난 ‘훈이’와 결혼했고, 표면적으로는 무난한 가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남편의 절친인 고교 동창 A가 있었고, ‘나’는 세 사람이 함께했던 대학 사진반 여행에서 A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숨기며 살아왔다. 우정을 짓밟고 폭력적으로 틈입한 몸의 기억은 끊임없이 ‘나’의 평온을 뒤흔드는 트라우마적 상처로 남게 된다. 가혹한 생존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한 남성 가부장의 일그러진 욕망이 아내나 자식들에 대한 폭력적 억압으로 표출되는 이야기들도 있다. 「웃음과 울음의 원무」, 「N번째 살인미수 사건」이 그런 경우인데,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가해와 억압의 또 다른 선명한 대립 구도를 보여준다. 남근적 욕망의 자기 파멸의 서사를 환상적 우화로 그려낸 「야차 LC」, 남편의 성적 착취에 맞선 아내의 끈덕진 처벌을 담아낸 「붉은 비닐 노끈」에서도 가족 관계에서 내연하고 있는 대립 구도의 변주된 양상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영도와 여의도 사이」에서는 집과 경제 관념을 둘러싼 세대간 대립 구도가 뚜렷하다.

물론 대립 구도를 풀어내는 방식은 작품마다 다르며, 가해나 억압의 세부적 양상 또한 단선적이기보다는 중층적으로 뒤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립 구도의 반복적 활용이 얼마만큼은 현실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적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점이 허택 소설을 통상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소설적 좌표로 이동시키는 것 같다. 허택 소설은 세부적 현실의 재현으로부터 하나하나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물이나 상황을 압축하는 환유적 표현에 힘을 기울이면서 그 환유의 수사학을 소설의 전체적 구도, 전언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이때 소설의 서사는 환유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가령 「마른장마」에서 자신의 욕망에 거침이 없는 명희라는 인물을 그릴 때, 작가는 명희의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주목한다. 소설에서 명희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솔 음’이라는 환유의 수사학으로 표현된다. 비슷한 수사학의 예는 ‘집’에 대한 생각을 둘러싼 부자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영도와 여의도 사이」에서도 만나게 된다. 노년의 문턱에 이른 ‘나’와 아내에게 ‘집’은 영도 산동네의 자그마한 재개발 아파트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 집은 ‘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해상 사고로 세상을 뜬 후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장만한 것으로, 영도 조선소에서 ‘깡깡이 아지매’로 일한 어머니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나’의 고단한 세월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 집은 ‘나’에게 어릴 적부터 오르내리던 ‘달빛 아래 벚꽃 가로수길’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N번째 살인미수 사건」에서 우리는 대립 구도의 자기 분열/증식을 본다. 이 작품에서 소설화자 ‘나’가 거듭 죽이려고 시도하는 존재는 생존경쟁의 내면화, 폭력적인 남성 가부장의 허위의식 속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이다. 혹은 괴물이 되어버린 내면의 욕망이다. 소설에는 거듭 ‘놈을 죽여야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주식투자에 빠졌고, 주식에 중독된 채 삼십대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자식들을 키운 것은 아내였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 아들의 뜻을 마구 짓밟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나’의 자기 분열, 자기 대면이 피해자이기도 한 아내의 적극적인 조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허택 소설의 개성적 구도와 화법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표제작인 「웃음과 울음의 원무」다. 평생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했고, 함께 입사한 절친을 배신하면서까지 직장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소설화자 ‘나’는 허택 소설의 전형적인 남성 인물이다. 소설은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추도식 날 하루를 담고 있다. 어머니의 사고와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믿는 아들과의 관계가 특히 좋지 않지만,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에 대해 두 딸도 소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나’가 막내딸의 8개월 된 외손녀를 이날 처음으로 보게 된 상황에 ‘나’를 둘러싼 가족의 현재가 압축되어 있다. 아내가 떠난 후 ‘나’가 군림해온 집이라는 성채는 기실 ‘공허’와 ‘적막’뿐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추도식 날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나’는 자신만의 철옹성이라 믿었던 서재에 고립된다. 구원의 계기는 외손녀로부터 찾아온다. 서재로 들어온 아기가 할아버지를 보고는 울음을 그치고 방실방실 웃음을 짓는다. 아이의 웃음이 ‘나’에게 뜻밖의 몸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그치며 앞만 보고 질주해왔던 ‘나’는 눈물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아기의 ‘너무도 깨끗한 웃음’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눈물은 그렇게 잊었던 몸의 기억을 일깨우며 찾아온다. 몸의 기억은 연쇄적이다. 허택 소설은 예의 ‘몸의 시학’을 통해 ‘나’에게 찾아온 반성과 구원의 계기를 포착하려 한다.

허택 소설에는 전쟁통에 태어나 힘겨운 시대를 살아낸 어떤 세대의 초상이 겹친다. 현직 치과의사라는 작가의 이력은 몸에 대한 각별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이어지면서 인간 욕망의 미로를 탐사하는 많은 이야기를 빚어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바, 욕망을 둘러싼 선명한 대립 구도는 허택 소설의 중요한 서사적 동력이면서 그 구도를 허물고 넘어서는 소설 화법의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다르게 말하기’는 알레고리라는 소설 화법의 특징과도 연결되지만, 문학적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작가적 의욕의 표현이기도 한 것 같다. 허택 소설에서 ‘몸’은 끊임없는 소설적 탐구와 발견의 대상이면서 그 자체 소설의 새로운 형식, 새로운 화법을 요구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늦은 등단에도 불구하고 벌써 다섯번째에 이른 소설집의 상재(上梓)가 보여주는 것처럼,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는 젊음의 시간을 방불케 하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 열정의 힘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세계가 기대된다.

추천평

허택 소설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직진이다. 몸을 향한 욕망과 갈등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짧은 문장은 어떤 가식이나 장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알몸, 그러니까 사회적·물질적 성취에만 내달렸던 인물이 한순간 자신의 나약함이나 성숙하지 못한 의식, 불확실성의 실체와 맞닥뜨리는 자리, 그 위태한 경계에 허택 소설만의 몸의 말이 정면으로 놓인다고 믿는다. - 양진채 (소설가)
허택의 소설은 점점 더 바람을 닮아가고 있다.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공기처럼 가볍게 막힘없이 흐르는 것을 지향하는 듯이 보인다. 형식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내용은 복잡함이 없이 담박하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이란 아픔을 견뎌서 어떻게 꽃처럼 피어나는가. 그런 물음으로 살아온 날들을 더듬고, 여린 아기의 웃음에서 미래를 희망한다. 그렇게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봄여름가을겨울은 다시 봄으로 돌아온다. 심오한 것과 복잡한 것에 매달리기보다는, 가볍고 단순한 것에서 세상의 이치를 찾는다. 생명이란 흘러야 살고 막히면 죽는다. 살아 있는 것은 살아야 하고, 봄은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나서 다시 봄으로 돌아온다. 바람이 분다. 허택의 소설은 그렇게 공기의 흐름을 따라서 가볍고 유연하게 흐르고 있다. - 전성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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