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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유럽 종교개혁의 서막
- 발데스(Vaud?s)와 리옹(Lyon)의 빈자들 02 프랑스 종교개혁의 서장 - 르페브르 데타블(Lef?vre d’?taples)과 ‘모’(Meaux) 그룹 03 개혁주의 종교개혁의 출발 - 츠빙글리와 취리히의 종교개혁 04 개혁주의 종교개혁의 본고장 - 마르틴 부처와 스트라스부르 종교개혁 05 프랑스 종교개혁의 새 토대 - 칼뱅(Calvin)의 뿌리 ‘누아용’(Noyon)과 그의 젊은 시절 06 종교개혁에 동참한 발도파 교회 - 샨포란 회의(Chanforan), 메린돌 학살, 생존과 자유 획득 07 칼뱅의 도시, ‘개혁된 도시’ 제네바 - 칼뱅의 헌신으로 개혁파 종교개혁 중심지가 되어 08 프랑스 종교개혁의 생생한 현장 - 위그노(Huguenot)의 땀과 눈물의 현장 ‘파리’(Paris) 09 위그노의 마지막 항쟁, 자유의 상실과 망명 - 위그노의 수도, 항쟁의 최후 근거지 라로셀(La Rochelle) 10 현대 프랑스 개혁교회를 생각하며 - 광야시대와 관용령, 그리고 현대 : 사막박물관(Le Musee du Desert)을 찾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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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데스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수차례 오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상인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신앙적 고민에 빠진 이후에는 자신의 궁금증을 놓고 하늘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에는 남부 프랑스어로 번역된 복음서 단편을 가슴에 품고 복음을 옛 동료 상인과 리옹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오갔다. 그의 삶과 발걸음을 생각하며 옛 도시의 길을 어슬렁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 가게들 안팎을 기웃거려 본다.
---p.36 최초의 교회(프랑스, 모 교회)가 설립된 장소를 찾았다. 처음 와 본 도시에, 안내자도 없어 한참을 헤맨 후에야 옛 교회 설립 흔적을 찾았다. 교회가 있었던 터 위에 세워진 건물 벽에는 1985년 제작된 작은 기념명패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에티엔 멍정’이라는 이름과, ‘이곳에서 프랑스 개혁교회가 시작되었다’는 내용, 그리고 14명의 개혁자들이 1546년 10월 4일에 파리에서 재판을 받은 8일 후 순교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단 몇 줄의 기록이었지만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듯 했다. ---p.71 상대방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거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신앙인의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악,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또 하나의 모습을 츠빙글리는 보여준다. 성서와 칼, 그래서 부조화이긴 하지만 츠빙글리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조화를 이룬 모습으로 다가온다. 동상의 츠빙글리는 우리에게 “그런 선택의 상황이 닥쳤을 때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묻는 것 같다. ---p.93 유대교의 오류를 지적하고 그리스도교의 참됨을 전하려던 조각상은 언제부턴가 그들을 학살자로 생각게 했고, 연좌제처럼 후손들을 탄압하고 죽여도 된다는 논리로 나아간 것이다. 신앙고백을 담은 조각이 언젠가부터 교리화됐고 중세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역할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죄성으로부터 유래한 차별과 증오의 감정을 유대인을 향해 쏟아냈고 해소의 기쁨을 만끽한 것이다. “오, 주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소서.” ---p.126 사실 스트라스부르는 때론 독일 땅으로, 때론 프랑스 땅에 속했다. 지금은 프랑스 땅이지만 그런 역사로 독일인과 프랑스인으로 불리기보다 ‘알자스’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어느 곳에 속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 자신만의 특징과 모습으로 서 있고자 한다. 그렇다. 우리들도 ‘가톨릭’과 ‘기독교’라는 소속보다는 ‘그리스도’의 이름, ‘교회(그리스도인 공동체)’라는 이름을 더욱 중요시하면 어떨까? 우리의 소속감은 종교적 틀이나 영역 보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있기 때 문이다. ---p.154 발도파는 13세기 중반부터 종교개혁이 시작된 16세기 초까지 유럽 곳곳에서 색출, 심판, 처형으로 죽임을 강요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길거리 복음 전파를 포기한 발도파는 점차 도시에서 시골로, 그리고 산골짜기로 숨어들었으며, 서유럽에서 교회와 세속 당국의 탄압이 약한 동유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발도파는 농사꾼이 됐고 화전민이 됐으며, 착한 보통 이웃 사람으로 살아남았다. ---p.210 본문 중에서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학살자들은 전쟁에 눈이 멀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에게 주민들은 사냥감일 뿐이며 짐승보다 못한 존재였다. 더 잔인한 학살법을 찾아 시행한 그날 그들은 악마의 모습을 했다. 학살의 날은 예수가 무덤에 머물던 어둠의 날이었다. 어둠이 승리를 선언한 그날,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에서 발도파와 함께 계셨다. 학살이 끝나고 부활의 새벽이 밝아왔다. ---p.256 (제네바 대학교) 신학부 교실과 사무실 등을 둘러봤다. 문 앞에서 칼뱅의 얼굴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칼뱅의 눈은 마치 문 앞으로 다가서는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 같다. 아니 나아가 ‘이곳 제네바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무엇을 느끼고자 하느냐’고 눈빛으로 질문하는 듯 했다. ---p.291 인간이 인간을, 그것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학살이 이곳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곳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기록도 없는 그곳 어딘가에서 죽었을 위그노들의 아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거짓 종교’와 ‘거짓 그리스도인’, ‘종교지도자’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킨 그날을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렸을 하늘의 모습이 느껴진다. 점심을 훌쩍 넘겨 빵 집에서 빵과 커피를 구입해 거리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살해당한 위그노의 처참한 모습과 그 모습을 불쌍히 바라봤을 파리 시민들, 그리고 위그노를 발본색원 하려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친다. 빵이 목에 걸린다. 급히 물을 찾았지만 한 모금 넘기기가 어렵다. “주여, 이 죄악을 어찌하시렵니까? 죽인 자나 죽임을 당한 자나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 교회의 이름으로 행한 것 아닙니까? 왜 인간은 이러한 잘못된 판단과 행위를 반복해야 합니까?… ---p.342 라로셀 시민(위그노)들은 육상 봉쇄에 이어 해상까지 철저히 봉쇄당한 채 부족한 식량으로 인한 기아 와 싸워야 했다. 2만 5천여 명이 넘었던 숫자는 수차례 전투와 기아, 일부 이탈로 인해 5천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도심으로 날아든 돌덩이로 성벽과 일부 건물은 허물어졌다. 희망이 없었다. 배고픔과 고통, 거기에다 희망의 상실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했다. 결국 위그노 신자들은 1628년 10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위그노는 패배하고 무기를 빼앗겼으며, 오래지 않아 목숨을 내건 항쟁으로 획득했던 종교의 자유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p.386 박물관 한 곳에 글귀가 새겨진 돌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Resister’(저항하다)는 문구였다. 어쩌면 이 단어는 광야시대 위그노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 그대로 박해와 탄압에 신앙인은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론 무기를 들고 격렬하게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저항’은 그런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 자신들이 행하는 행함을 통해, 불의에 맞서, 불관용에 맞서,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참된 그리스도인, 프로테스탄트(항의자)가 되는 것이다. 박물관의 마지막에 한 작은 장소에 섰다. 박물관이 강조하는 ‘저항’의 의미와는 또 다르게 다가오는 장소로서, 어쩌면 광야시대 프랑스 종교개혁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라고 생각된다. 바로 성서다. 1세기 동안 침묵을 강요받던 시절 신앙은 말씀을 통해, 가정 예배를 통해 감동적으로 전해졌다. 그것을 통해 프랑스 개혁교인들은 왕실과 당국, 가톨릭교회에 저항했고 관용의 승리를 쟁취해 낸 것이다. 그것이 광야시대 프랑스 개혁교인들의 초상이다. ---p.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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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와 칼뱅, 개혁주의 종교개혁의 역사를 개혁자들이 활동한 현장을 방문해 느끼고 경험한 내용과 함께 생생하게 서술한 책이다. 그러나 여행기처럼 단순한 순례 여정이나 감상, 피상적 느낌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개혁 역사를 연구, 성찰하고 당시의 역사를 글 속에 녹여 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프랑스 종교개혁과 개혁주의 종교개혁, 나아가 이탈리아 개신교 역사의 한 시대를 성찰한 저자의 신앙고백이요, 연구의 결실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자’로서 12세기 말 프랑스 남부 리옹에서 실천적 갱신운동을 시작한 발데스를 시작으로, 종교개혁시기 프랑스 첫 종교개혁자들인 르페브르와 모 그룹, 개혁주의의 시조로서 취리히의 종교개혁자인 츠빙글리,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부처, 개혁주의의 든든한 토대를 만든 칼뱅, 알프스 신악지대를 근거지로 종교개혁 역사를 이어온 발도파, 그리고 프랑스 종교개혁을 온 몸으로 외쳤던 위그노의 흔적을 추적한다. 저자의 순례여정은 2017년 1월 리옹과 제네바 방문을 시작으로 20~30여회 프랑스 동서남북에 위치한 여러 도시를 찾아 진행되었다. 저자는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8박 9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등에 작은 배낭을 맨 순례자로서 각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때론 인적이 없는 새벽의 도심을 홀로 떠돌기도 했고, 추운 겨울 기차역 대합실에서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오랜 시간 추위에 떨기도 했다. 어떤 때는 4~5일을 심야버스에서 잠을 청하며 순례하기도 했으며,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마스크를 쓴 채로 여정은 계속했다. 순례 이후 저자는 며칠 밤씩 책상에 앉아 여정에서 정리한 내용과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글을 쓰고 부족한 내용이 생기면 다시 자료 찾기를 반복했다.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지킨 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고, 감동이 몰려올 때는 글쓰기를 멈추고 홀로 방안을 서성이며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흐른 후 프랑스와 칼뱅, 개혁주의 종교개혁을 담은 이 책은 완성되었고, 순례여정에서 찍은 300여장의 현장 사진과 함께 독자들의 손에 전해지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12세기 후반 시작된 발도파 운동을 첫 출발지 리옹과 종교개혁 참여를 결정한 샨포란, 학살 장소 중 한 곳인 메린돌, 그들이 살아남아 이탈리아 개혁교회로 자리매김한 알프스 산악지대를 직접 찾아 생생하게 소개하는데, 아마도 이 내용은 한국에서는 처음 다루는 내용일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개혁주의 영향 속에 있는 존 낙스의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네덜란드 독립과 개혁주의, 독일 등으로 망명한 발도파와 위그노를 다루지 못한 점이다. 저자는 이미 이들 장소도 여러 차례 방문하고 일부는 글로 쓰기도 했지만 이번 저술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책의 분량과 독자들의 독서를 고려한 때문이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는 “이 책은 발로 쓴 종교개혁의 역사로서 유럽에서 태동하고 흘러 온 프랑스계 개혁교회의 흐름을 이처럼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책을 보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조만 목사(한국성결신문 주필)는 “순교로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는 이들의 결의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힘에 의해서 표출되어지는가를 밝히려는 신앙탐구서”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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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뛰는 기자의 생생한 역사 현장
이 책은 그야말로 ‘발로 쓴’ 종교개혁의 역사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회사를 서술한 책이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400면이 훌쩍 넘는 책의 내용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저자가 ‘발로 쓴’ 까닭이다. 기독교의 역사에 관해서 쓴 한국어 서적 중에서 유럽에서 태동하고 흘러온 프랑스계 개혁교회의 흐름을 이처럼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책을 보지 못했다. 12세기에 시작된 발도파 신앙 운동에서 시작하여 칼뱅 시대의 종교개혁과 위그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900년의 역사가 강물처럼 흐른다. 발도파와 위그노의 박해와 순교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처참한 서사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한국 교회가 받은 박해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처절한 고난을 겪어온 유럽의 신앙 역사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저자 조재석은 기자다. 오랜 기자 생활에서 몸과 정신에 배인 기자 정신이 이 책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기자는 현장에서 비로소 기자다. 발로 뛰는 기자의 눈과 판단이 내용의 서술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간 역사의 공부도 깊었는데 거기에 기자의 기질이 여전히 청청하니 이런 책이 나온다. -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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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로 이룩한 종교개혁
이 책 “발로 쓴 프랑스, 칼뱅, 개혁주의 종교개혁”은 같은 저자의 『발로 쓴 루터의 종교개혁』의 제2부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제1부 『발로 쓴 루터의 종교개혁』이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 고난의 현장을 직접 방문, 확인하여 종교개혁이라는 변환점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지를 신앙으로 읽어내려는 몸부림을 보여 주었다면, 제2부 『발로 쓴 프랑스, 칼뱅, 개혁주의 종교개혁』은 칼뱅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승리와 실패(?)를 온몸을 던져 직접 확인하며 하나님의 의지를 묻는 그 목소리가, 단발마의 비명처럼, 독자의 가슴을 찢어 놓을 것이라고 감히 예진하고자 한다.이 책은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교회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순교로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는 이들의 결의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힘에 의해서 표출되어지는가를 밝히려는 신앙탐구서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마음이 정화되는 신앙고백을 외면해온 사람들에게, 프로테스탄트의 뿌리가 궁금한 개신교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 조만 (한국성결신문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