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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 겨울
라라네 목련정전(目連正傳) 근린(近隣) 나리 이야기 겨울 고원 백 일 동안 어느 작은 한밤 해설 미리 결정된 지옥에서_ 김형중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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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 비극의 돌부리에 걸려드는 마법
듣고 싶어요. 정말? 들려주세요.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 준비되었니?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강 건너 마을에 나리라는 여자아이가 살았단다. (「나리 이야기」, pp. 163~64) 최은미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여름밤에 호롱불 앞에 모여 옛날이야기를 듣듯,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서늘한 결말에 닿게 된다는 점이 최은미 소설의 매력이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 책의 해설에서 “최은미가 그려내는 세계는 전도된 마법의 세계이다. 이 작가는 동화나 설화의 형식을 즐겨 차용하되, 마법과 주술로 현실의 갈등과 모순을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대신 그것들을 원재료 삼아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알레고리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특히 표제작 「목련정전(目連正傳)」과 「나리 이야기」에서는 직접 「목련경」과 「정토삼부경」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동국대학교 수학 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불학연구소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이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경전 속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극락으로 모시는 데 성공하는 데 반해 소설 속 소녀 목련은 엄마의 눈앞에서 목을 매고, 귀자모신 설화의 하리티는 속죄하여 해탈하지만 소설 속 유괴된 소년은 하리티의 속죄 전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운명이다. 또한 동화 「라푼젤」을 연상시키는 「라라네」에서는 이가 들끓는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라라가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집을 나가고, 「한밤」은 2만 6천 년 만에 태양계가 은하계 중심에 정렬하는 동짓날 등장인물들이 유년기를 보낸 북문이 무너져 내리는 등 모두 동화적이고 신화적인 서사 안에 철저한 재난의 풍경이 담겼다. 지옥을 벗어나려다 강박 지옥에 빠진 인간들 장례 기간에 아버지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동안 썼던 베개와 요, 아버지가 누워 있던 방의 책상과 의자까지 다 태웠다. 그래도 근지러웠다. 어머니는 한 달 넘게 그 방을 락스로 닦았다. 벽도 닦고 천장도 닦았다. 집 안 곳곳에서 유한락스 통이 소주병처럼 뒹굴었다. 바람이 불면 화학액에 삭은 고무장갑이 빨랫줄에 매달려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자처럼 락스를 사들였고 그때부터는 사과에서도 상추에서도 속옷에서도 락스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창 너머 겨울」, p. 41) 최은미 소설은 온갖 강박증자들이 모인 세계다. 「창 너머 겨울」의 ‘나’와 어머니는 ‘곰팡이’로 기억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락스와 항진균제에 빠져 있고, 「라라네」의 라라는 외로움을 피해 긴 머리카락과 자위에 집착하며, 「백일 동안」의 강상기는 잃어버린 모성의 재건을 위해 제이봉에 세울 자미재에 매달린다. 부령을 찾아 평생을 떠도는 봉산리 사내(「겨울 고원」)와 최고의 유전 능력을 가진 씨수소의 정자에 미쳐 있는 류(「어느 작은」)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견디기 힘든 삶의 굴곡과 결핍을 피해 피난처와 대체품을 찾으려 매진한 이들이지만 결국 이러한 강박이 인물들을 옥죄어 더욱 불행한 삶을 살도록 한다. “불완전한 모습으로 인한 고통에 천착”하여 “사람의 삶을 제약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조건”,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의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일전의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섣부른 가치판단 없이 인간의 정념과 집착이 낳은 지옥 같은 삶의 모습을 섬뜩할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은 이해할 수 없는 재난으로 채워지고, 개인들의 비극이 모여 세계는 아비지옥을 이룬다. 이러한 인식이 최은미 소설의 출발점이다. 세상 어디에서는 또 무너지고, 가라앉고, 터지고, 죽고 죽이는 일들이 반복된다. 최은미의 소설은 이러한 비극들을 잊어버리고 거짓 희망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보다는, 목격하고 증언하며 이유를 치열하게 묻는 것이 생을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를 묻고 있다. ■ 작품 해설 최은미가 그려내는 세계는 전도된 마법의 세계이다. 이 작가는 동화와 설화의 형식을 즐겨 차용하되, 마법과 주술로 현실의 갈등과 모순을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대신 그것들을 원재료 삼아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알레고리로 만든다. [……] 작가는 매 소설이 시작될 때마다 온순하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준비되었나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그러나 그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도 이 지옥을 겪는 일은 충격적이다._문학평론가 김형중 ■ 작가의 말 소설 하나를 끝내고 다음 소설로 넘어가는 시간이 계절이 바뀌는 것과 맞물릴 때가 많았다. 한 소설의 마지막 퇴고를 끝내고 나면 나무의 색깔과 소리가 달라져 있었고, 어느새 다음 소설이 와 있었다. 가는 계절과 오는 계절 사이, 가는 소설과 오는 소설 사이에서 자잘한 소름을 느끼는 그런 순간들이 오래 찾아와주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