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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 잘 날 없던 우리집
2. 부부여 '툭' 털어놓자 3. 바쁜 엄마 길들이기? 4. 인자한 아빠 옹졸한 남편 5. 이 남자와 이 여자가 사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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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예린과 함께 있으면 도대체 심심할 시간이 없다. 아이는 어느날 한 친구의 전화를 받고는 거의 자체 연락망을 작성했다. 영은이의 전화번호를 안 아이가 영은이에게 전화를 하고, 영은이는 한솔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한솔이에게 전화를 해서 민지의 전화번호를 알고, 민지는 또 태성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이런식을 이 아이 저 아이와 전화를 한 아이는 '엄마, 유치원 아이들 전화번호 열 개도 넘게 안다'면서 자랑이 대단하다. 물론 자신의 친구들에게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응, 내가 없으면 전화응답기에 메모 남겨놓는거 잊지 말고'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날부터 우리집 전화기는 불이 났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 보면 그렇지 않아도 전화응답기에 담겨 있는 온갖 사연들을 한참을 돌려야 했는데, 이제 하예린 친구들까지 가세해서 우리 전화기는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응답기에 '여기는 반쪽이네 집입니다. 녹음해주세요'라고 말하는 하예린 목소리에, 아이들은 즉각 반응했다. --- p.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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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부부가 아옹다옹하는 동안 하예린도 자랐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다섯 살이었던 아이가 초등학교 학생이 되어 우리를 학부형으로 만들어준 지 3년이 흘렀다. 그저 부모의 그늘에 안주했던 아이는 이제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졌지만 아이가 제 고집을 피울 때마다, 그리고 아이가 만나는 세상이 우리 어릴 때와는 또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학부모로서의 고충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하예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그 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거울임은 분명하다. 아이는 정말 명실공히 '하늘에서 내린 예쁜 딸'의 역할을 독특히 해내고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속내를 그때그때 드러내고자 애썼다. 하지만 독자 중에는 글이 솔직하지 못하다거나 화끈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 줄 안다. 핑계처럼 들릴 수 있으나 그건 전적으로 겸손의 미덕과 항상 남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신 내 부모의 가르침 탓이다. 나는 지금도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자 애쓰지만 그것은 끊임없는 설득의 과정을 거친 다음의 작은 성과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다섯 살 어린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귀여워해 주시던, 이제는 돌아가신 외조부의 '중용의 도'를 내가 부지불식간에 따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야흐로 내 피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강요받던 침묵과 굴종이 이제 그 언어를 찾아 부단히 날개짓을 하는 비상의 순간일 수도 있다. --- pp.311-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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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 아이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나는 온갖 전통음식을 맛보고 자라서 우리 음식의 수십 가지 아니 수백 가지 맛의 차이를 느끼며 자랐는데 우리 아리는 엄마가 편리함만 추구하기 때문에 규격화한 맛만을 느끼며 자라고 있다. 사실 먹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좋은 경험이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아이는 얼마나 불쌍한 세대인가? (p.157)
부부는 일심동체라느니 이심전심이라느니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은 서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한,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그리고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알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p.103) ---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