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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殷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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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전역
호남선 완행열차가 울고 열일곱 낯선 소녀가 울고 ‘시립청소년보호소’ 높은 입간판이 보이는 정월 대보름 전깃줄에 걸린, 방패연이 외로운 낮 열두 시. --- 「제1부」 중에서 소년은 누워 잔디밭 묏등 아래 소년은 누워 돌을 던진다 하늘은 언제나 저만큼 저만큼 푸르러 빛나는데 던져 무엇을 맞힐 수 있을까 맞힐 수 있을까 청개구리 한 마리 가슴께로 튀어 오르고 일락산 저쪽 산그늘에 잠긴 간이역 기적소리 가슴 태우는데 오늘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포르르 굴뚝새가 날아오르고 지천으로 흐드러지는 찔레꽃…… 돌아누운 자리로 찔레꽃잎이 떨어지고 눈물이 떨어지고 천천히 흔들리는 시냇물 온 우주를 적셔버린다 바람이 불고, 어디선가 산 구렁이 울음소리 들린다. --- 「제1부」 중에서 부활-전태일 타오르는 불더미 속으로 잘 익은 살 내음 속으로 그는 갔다 손을 흔들며 어금니를 깨물며 그는 갔다 밝고 환한 얼굴로 이제는 당신의 십자가 당신의 기름진 아랫배 편치 못하리라 어떤 모습으로든 그가 돌아온다 뜨거운 함성이 돌아온다 그의 잘 익은 근골 속으로 타는 눈물이 흐른다 기쁨이 흐른다 노동으로 단련된 구릿빛 내일이 사랑이 흐른다 일찍이 어디 이처럼 벅찬 그리움이 있었더냐 아픈 희망이 있었더냐 우리들 성긴 밥상 위로 보라 그의 구수한 광대뼈가 돌아온다 떡으로 밥으로 따수운 고깃국이 돌아온다 진수성찬이 돌아온다. --- 「제1부」 중에서 조촐한 가족 멀리서 풍장 치는 소리 들린다 팔월도 한가위 산마을 아득한 골짜기 저쪽 색동옷 곱게 차려입은 어린아이 둘…… 젊은 엄마를 따라 묏등 앞 오가며 상을 차린다 조촐한 가족, 두 번 절하고 음식 나누는 동안 산까치, 참나무 끝에 날아와 운다. --- 「제4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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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살아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이야기가 숨어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정서가 충만한 시를 쓰고 싶다. 이들 형상 속에 깨달음이 꿈틀대는 시를 쓰고 싶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여러 형상이 하나의 의미로 응축되고 수렴되는 시를…….
지구라는 행성에서 69년째 살고 있다. 그래서인가. 69편의 시를 여기 모은다. 69편의 시는 한 편의 시. 69는 하나, 69는 원, 원은 태극, 태극은 리비도……. 나는 69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선불교에서는 다즉일(多卽一), 일즉다(一卽多)이라고 하지 않는가. 서정(抒情)은 풀과 나무의 이름으로, 새와 짐승과 벌레 등의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삶의 언어로 하여, 생기있고 활기 있는 사물의 언어로 하여 되살아나는 것이 서정이다. 서정이 깨어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진실이 함축되어 있는 시를. 2021. 6. 청리당에서 이은봉 현대사의 수레바퀴를 뚜벅뚜벅 걸어온 이은봉의 시선집 『초록 잎새들』이 간행되었다. ‘의미 있는 서정’, ‘깨어 있는 서정’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이 시선집 속의 시들이다. 의미 있는 서정, 깨어 있는 서정은 이은봉 시인이 그때그때 나날의 삶에 처해 깨닫는 진실이나 진리와 무관하지 않다. 진실이나 진리라고 무관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은봉의 시에서 그것은 늘 변화하고 운동하는 현실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하고 있다. 이때의 자각은 거개가 사회적 내포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내포를 지닌다. 그것이 구체적이면서도 생생한 형상과 함께하면서도 십분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시의 형상이 일단은 이은봉 개인의 성찰적 지혜, 곧 반성적 깨달음을 기초로 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뜻에서 이은봉이 시를 통해 추구하는 서정의 의미, 서정적 깨침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시(是)와 궤를 같이 한다. 변화하는 현실과 함께하는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고 할 때의 옳은 것 말이다. 이때의 시가 역사적인 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번의 시선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은봉의 시들은 예의 ‘의미 있는 서정’, ‘깨어 있는 서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충분히 형상화시켜 시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가 자신의 시적 진실이나 진리를 넉넉하게 육화시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육화시킨다는 것은 물질화시킨다는 것인데, 물질화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는 이번 시선집에서도 이미지, 이야기,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 이미지, 이야기, 정서를 강화시킨다는 것은 그것들 안에 의미나 깨달음을 잘 감추고 숨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음의 시들이 그것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