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 붉은 고양이
파문 삶은 달걀이라고 딱딱한 슬픔 붉은 고양이 생활 대나무들 나주호 한 바퀴 마음은 금방 또 시간의 모가지를 비틀어대는 밤 돼지국밥집에서 오늘 도마뱀 정치 김밥 두 줄 초여름 밤 절벽 제2부 : 달걀이 운다 달걀이 운다 떡 든 손 저녁 산책길 사람들 지금 어지럽다 그리운 금강산 움직이는 집 지도에 없는 섬 궁시렁 할머니 날개 돋친 뱀 조촐한 가족 기차를 타고 갈 거야 굴참나무와 소나무 불빛아 좌골신경통 절망에게 걸어 다니는 절벽 제3부 : 겨울의 갈피 트럭―서울 웃는 얼굴 뒷골목―서울 달항아리 겨울의 갈피 이 지랄을 뭐라고 하나 공동의 적 쇼핑센터―서울 질주―이상에게 고인돌 수락폭포를 읽는 법 가로등 불빛 칼 을지로 지하아케이드―서울 공든 탑―국가 코 고는 여자 제4부 : 저녁의 기도 어둠의 혀 초겨울 저녁의 기도 역사에 대하여 신문지―서울 회전문―서울 딱지 반성 병풍 길―큰스님의 말씀 깜박깜박 어떤 아침 결별 TV를 켜놓고 해설 황정산 시인의 말 |
李殷鳳
이은봉의 다른 상품
|
이은봉의 시는 항상 삶의 현장을 토대로 구축되어 왔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그런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드러내는데, 그는 ‘시인의 말’에서 이번 시집이 추구하는 바를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이은봉 시인은 “시를 구체적인 생활에서 획득하는 깨달음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히며, 이는 곧 “시를 구체적인 생활에서 획득하는 ‘발견의 형식’”이자 “‘지혜의 형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시인은 시인지 산문인지 알 수 없고, 도통 난해하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외계어와 같은 언어들로 점철된 요즈음의 시들을 접하면서 심한 멀미를 느낀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본인의 시를 ‘생활’에 밀착시켜, 생활 속에 깃든 작은 아름다움, 지혜, 힘, 열망 들을 발견해내는 데 정성을 들였으리라. 거실 귀퉁이에 놓인 무말랭이와 땅콩알과 은행알에 시선이 머문 시인은 대저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생명을 향한 경외와 겸손을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길어 올린다. 우리 집 거실 귀퉁이에는 무말랭이가 마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말랭이가 마르던 곳이다 땅콩알이 마르던 곳이다 은행알이 마르던 곳이다 구린내를 풍기며 인삼주도 더덕주도 호박덩이도 함께 마르고 있는 우리 집 거실 귀퉁이 고향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농촌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대도시 아파트에 살면서도 나와 아내는 여태껏 농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좁아터진 거실 이곳저곳을 오가며 오늘도 아내와 나는 습관처럼 자연에서 준비해온 먹거리들을 다듬고 있다 이것들 다 나날의 목구멍이 시킨 것이지만, 나날의 생활이 시킨 것이지만&& 목구멍보다, 생활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으랴. -「생활」 전문 쫓기듯 바쁘게 살던 날에도 시인의 오감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순간들을 또렷이 기억해낸다. 조금 서글프고 궁색한 상황에서조차 그 상황을 전복시키는 힘이 그의 성정 속엔 깃들여 있다. 이를 테면 ‘김밥천국’에서 산 김밥이라는 “설움 두 줄”조차도 그에게는 자신을 “서울로 밀고 가”는 “눈 물 두 줄의 힘”이 되는 것이다.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슬픔 두 줄 왼손에 들고 역을 향해 뛴다 오른손에는 오래된 검정 가죽가방 덜레덜레 들려 있다 막 출발하는 KTX 역방향에 철푸덱이 주저앉는다 검정 비닐봉지를 펼쳐 설움 두 줄 먹어치운다 자동판매기에서 뽑혀 나온 생수병이 주둥이를 향해 거꾸로 쑤셔 박힌다 졸음 쏟아져 내리는데 이 고마움 누구에게 표해야 하나 오늘도 눈물 두 줄의 힘이 나를 서울로 밀고 간다 -「김밥 두 줄」 부분 한편 「날개 돋친 뱀」, 「걸어 다니는 절벽」, 「칼」 , 「어둠의 혀」과 같은 시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는 시인으로서의 기개도 여전하다. ‘생활’ 곳곳으로 향한 시인의 눈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날카로운 사유와 발견, 통찰을 가져 오고, 그러한 눈뜸이야말로 “날름대는 변덕으로 가득 차 있는 어둠”에 저항하는 시인의 방식일 것이다. 그래야만 “역사는 줄넘기 장난을 하면서도, 달의 행로를 밟으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낮은 곳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믿는다 꽃피운다.”(「역사에 대하여」)고 시인은 믿는 것이다. * 저자의 말 시들이 자꾸 어려워지고 있다. 요즈음은 추상적 관념과 함께하는 막연한 진술로 시를 만들기까지 한다. 이들 시에서는 나날의 생활이 만드는 구체적인 물질을 찾기 힘들다. 일상의 이미지가 부드럽게 녹아 있기보다는 조작된 관념이 단단하게 뭉쳐 있는 것이 요즈음의 시이다. 아무런 내포도 유추할 수 없는 관념적 진술의 시를 즐길 만큼 내 마음은 열려 있지 못하다. 그러니 나로서는 관념적 진술을 조작하고 있는 시들로부터 비켜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이번 시집의 이름을 ‘생활’이라고 붙인다. 이름을 이렇게 붙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시집에 「생활」이라는 시가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일련의 시들, 곧 ‘생활’의 시들에서 내가 나날의 삶에서 깨닫는 진리나 진실을 담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의 시집 『생활』은 이전의 시집 『첫눈 아침』에 실려 있는 정신과 방법을 이어받고 있다고 해야 옳다. 이는 곧 이 시집과 함께하고 있는 시들이 일상의 삶에서 깨닫는 진실 혹은 진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를 구체적인 생활에서 획득하는 깨달음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시를 구체적인 생활에서 획득하는 ‘발견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시를 구체적인 생활에서 획득하는 ‘지혜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번의 시집에서는 시를 일상의 삶에서 회득하는 ‘깨달음의 형식’, ‘발견의 형식’, ‘지혜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로서는 이번 시집의 시들이 갖고 있는 생활의 깨달음이나 발견, 지혜 등이 나날의 역사가 이행하며 만드는 자유, 평등, 사랑, 평화의 정신과 함께하기를 빈다. 이것이 이번 시집이 갖고 있는 그 나름의 변별성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또 한 권의 시집을 발간하는 일에 감히 용기를 낸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퇴직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물론 이번의 시집은 퇴직 후에 간행하는 첫 번째 결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번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 모두가 퇴직 후에 쓴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시집의 시들 역시 퇴직 전 광주에서 쓴 것들을 모으고 있다. 언제쯤 퇴직 후 세종에서 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낼까. 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질정을 빈다. 2019년 초가을 세종특별자치시 종촌동에서 이은봉 모심 |
|
오랜만에 시다운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을 읽는다. 아리송한 번역시풍의 흐름 속에서 단연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의 보통 말을 자연스럽게 쓰면서도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경쾌한 호흡, 번쩍이는 재치, 조금씩 숨겨 놓은 의미를 보물찾기처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이 시집의 전반부가 그러하다.
이 시집 『생활』은 거대 담론에서 일상 현실로의 시각 이동을 은밀하게 보여 준다. 현명한 길이다. 원래 얼음을 깨트리는 것은 망치가 아니라 바늘이다. 사소한 것 같은 둘레의 길들 속에 진실이 들어 있는 법이다. 이른바 ‘삶’의 총체성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은봉 시인의 삶을 보는 변치 않는 시각은 낙천성에 있다. 아무리 어둡고 막혀 있어도 즐겁게 출구를 찾아낸다. 시편의 거개가 따뜻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생활’은 지금 여기에 있는 평범한 삶의 현장이다. 삶의 현장을 평범하지만 깨어 있는 정신으로 드러내는 것, 그것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예리하게 통찰하는 것, 이 시인은 이를 오랜 시작 과정을 통해 깊이 있게 체득하고 있다. 기쁘게 생각한다. 향수 감별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향수병을 열 때 코에서 좀 떨어져 가만히 열고, 손바닥을 부채삼아 부쳐 가며 내음을 맡으라, 그때 톡 쏘는 진한 향의 것은 십중팔구 진짜가 아니다. 이 시집 속의 시들을 적어도 두어 번 소리를 내며 읽기를 권한다. 재미와 의미의 깊은 내음이 꽃의 그것처럼 은은한 울림으로 스미게 될 것이다. - 조재훈 (시인, 공주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