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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은커녕 미혹이다
아름다움에 혹하는 게 미혹? 엄마의 반지 케이크 사는 날 초콜릿 한 박스 선인장 반지 미혹의 선구자, 발자크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나비 귀걸이 처음 가본 바(BAR) 바이올린 연습 예쁜 그릇 능소화 그림 하양이에게 빠졌어 누가 쓸모없다 그래? 패시네이터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금세 시든 꽃 부싯돌 장난감 덕질은 사랑 망할 책임감 미치도록 좋다면 내 맘대로 살면 좀 어때? 맛보기 이상은 주어지지 않아 설마 불혹? 휘청대는 마음 짓누른 감정 궁극의 욕망 미혹되더라도 비굴해지지는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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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에 설탕 범벅인 케이크는 몸(특히 군살 없는 몸매)에 나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뭘 모르는 소리다. 케이크는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것이다.
--- p.24 한결같다는, 앞으로도 쭉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뒤집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기회다. 단순히 귀걸이를 사는 게 아니다. 과감하게 새로운 걸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게 중요한 거다. 원은 비장함을 풍기며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 p.58 ‘이 나이에 바이올린을 배워서 뭘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무시했다. 멋을 내면 뭐 하나? 책을 읽어서 뭐 하나? 수다 떨면 뭐 하나? ‘이걸 해서 뭐 하나?’란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바이올린 시작할 이유는 충분하다. --- p.75 난 쓸모없는 것을 사는 데 엄청난 돈과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패시네이터가 쓸모없다는 이유로 사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사들인 쓸모없지만 혹하게 만든 것을 부정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나란 인간이 이 세상에 얼마나 쓸모없는가를 생각하면 쓸모없다고 외면할 수 없다. --- p.100 가지고 싶다. 아니, 반드시 가져야겠다. 구매욕이 불타올라 결국 장난감을 샀다. 부싯돌 장난감은 어른이 된 원을 위한 것이 아니다. 불꽃을 일으킬 때마다 질리지도 않고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원을 위한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어린 원의 마음을 다시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다. --- p.118 미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부질없음에도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덧없는 인생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물이 일렁이며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그래서 원은 미혹의 순간을 두 팔 벌려 안는다. 현기증이 날지라도. --- p.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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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나밖에 안 남았다는 말에는 마법이 들어 있다. 그 말을 들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고 싶다. 반지는 끼지 않는다며 시큰둥하던 태도는 집어 던졌다. 반지를 너무너무 끼고 싶다. 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흘러내리는 안경도 올리고, 뻣뻣한 머리카락도 쓸어 넘기고, 턱도 괴고, 찻잔도 잡고, 감자도 깎고 싶다. (35쪽) 이 책의 저자 원은 평범하게 살아왔다. 회사 다닐 때는 시키는 일만 하며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성실한 남자를 만나 성실하게 연애를 하다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두 아이를 낳아 착실하게 키우고 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자신을 돌이켜 보니 착실하고 성실한 게 나의 모습 같지가 않다. 보는 것마다 좋아 보이고 듣는 것마다 팔랑거린다. 작은 미혹에도 쉽게 흔들리는 약해빠진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까짓 유혹들 참지 말고 다 건드려 보자. 원은 손이 너무 못생겨서 반지를 끼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선인장 반지를 보고 마음이 쿵쾅거린다. 반지를 껴보니 더욱 사고 싶다. 눈알이 튀어나올 만한 반지의 가격에 반지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가게를 나온 순간부터 반지 생각이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반지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207번째 이유를 찾아냈을 때 깨닫는다.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억지로 찾아내는 건 너무너무 사고 싶기 때문이다. 반지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는 100개도 넘게 있고 반지를 사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사고 싶다. (38쪽) 이제 원은 미혹되는 것을 굳이 참지 않기로 했다. 나비 귀걸이를 하고 생전 처음 바도 가보고, 느닷없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아이들이나 갖고 놀 법한 장난감을 사고, 덕질도 해보고, 미술관에서 파는 그림도 산다. 사고 싶거나 하고 싶은 욕망을 참지 않고 실행하니 삶에 활력이 생기고 인생마저 아름답다. 한 남자의 고백, 휘청대는 마음 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던 것, 피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한 번도 흔들렸던 적이 없었던 것은 나의 믿음직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믿음직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게 아니라 지금껏 유혹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161쪽)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남자에게 고백을 받고서 원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고백을 받는 순간엔 바로 거절하고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자꾸 그 순간이 생각나고 마음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별안간 유혹에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미혹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구구절절 실감했으면서도 엄청난 규모의 미혹 앞에서는 한순간 마음의 자물쇠를 다 잠가버린다. 미혹되는 것도 허망하지만 미혹된 마음을 억지로 못 박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더 허망하다. 도대체 내 마음이 왜 이런 걸까? 원은 기댈 곳을 찾다 급기야 철학 책에 손을 뻗치기까지 한다. 거기서 번쩍 깨달음을 얻는다. 내 마음이 휘청댄 것은 그 남자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가 나에게 끌린다는 말을 한 순간에 미혹된 것이구나. 그 순간 갑자기 특별해진 기분이 들어 내 마음에 큰 울림이 전달되었던 거구나. 원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런 내가 너무 좋다. 정말 나약하고, 쉽게 흔들리고, 숨막힐 정도로 소심한 인간이다. 그래서 금세 미혹된다. 나약해서 쉽게 흔들리면서도, 소심해서 정작 인생 최고의 미혹이 찾아왔을 때에는 달려들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스스로에게 미혹시키고 싶어 하는 얼토당토않은 욕망은 있다. 정말 엉터리다.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 나 자신에게 미혹될 정도로. (16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