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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나라
밝은세상 2021.09.23.
원서
銀色の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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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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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이쓰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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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Itsuki,いつき ゆう,逸木 裕

1980년 도쿄 출생. 가쿠슈인대학교 법학부 법학과 졸업. 프리랜서 웹엔지니어 일을 하는 한편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2016년 『무지개를 기다리는 그녀』로 제36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2019년에는 「이미테이션 걸스」로 제7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 본선에 올랐다. 주요 작품으로 『소녀는 밤을 깁지 않는다』, 『밤하늘의 16진수』, 『전기장치 고래는 노래 부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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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 일하며 다수의 일본 소설과 만화를 번역하고 편집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AX』, 미야베 미유키의 『브레이브 스토리』, 『퍼펙트 블루』,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 『방해자 1~3』, 『나오미와 가나코』, 이시다 이라의 『도쿄 돌』, 『슬로 굿바이』, 마미야 유리코의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히구치 타쿠지의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다니 미즈에의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1~4』,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도라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 일하며 다수의 일본 소설과 만화를 번역하고 편집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AX』, 미야베 미유키의 『브레이브 스토리』, 『퍼펙트 블루』,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 『방해자 1~3』, 『나오미와 가나코』, 이시다 이라의 『도쿄 돌』, 『슬로 굿바이』, 마미야 유리코의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히구치 타쿠지의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다니 미즈에의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1~4』,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도라에몽 : 진구의 달 탐사기』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도라에몽 : 진구의 달 탐사기』, 『신공룡 도감 : 만약에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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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384g | 128*188*22mm
ISBN13
9788984374331

책 속으로

5년 전, 집을 나와 도쿄로 간 건 시오리의 인생에서 가장 파격적인 ‘도망’이었다.
시오리는 기후현 다지미시의 그저 그런 가문의 장녀로 태어났다. 집은 좁은 상자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랐지만 부모가 남동생을 낳을 수 없다는 게 기정사실이 되면서 감당하기 힘든 의무를 떠안게 되었다. 고바야시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덤으로 데릴사위를 들여 토지와 집안을 지키면서 대를 이을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책임이 부과되었다.
부모는 시오리에게 가문의 후계자는 피아노, 다도, 서예, 영어 회화를 두루 배워야 한다면서 가정교사를 붙여 주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노는 건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고바야시 가문을 대표하려면 훌륭한 인품과 교양을 겸비해야 하기에.
시오리는 가문의 후계자가 되는 건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달랑 대를 이어 지켜온 집이 한 채 있을 뿐 그다지 명문가도 아니었고, 내세울 만한 족적이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주부였다.
어느 누가 이 보잘것없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집 안에 틀어박힐 수 있겠는가?
--- pp.12~13

이치카와 히로유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스케가 『레테』를 설립한 계기가 되었던 말이었다.
‘고스케 씨는 선한 의지가 강한 분입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데 가장 이상적인 분이지요.’
고스케는 어린 시절부터 착한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친구가 장난감을 빌려달라고 하면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빌려주었고, 두 살 위 누나가 그의 손 안에 있는 젤리를 달라고 할 때도 지체 없이 건네주었다. 친구에게 빌려준 장난감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젤리를 먹지 못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훨씬 더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고스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너무 착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6명이 해야 하는 화장실 청소를 혼자서 하다가 학생주임에게 발각되었다. 아이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었고, 모두들 화장실 청소를 싫어해 그냥 혼자 했던 것뿐이었다. 고스케는 한사코 좋아서 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가 부당한 처사라며 따지고 들었다. 그 결과 다른 아이들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사과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고스케는 그때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일이라도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pp.40~41

구루미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발등을 커터로 그었다. 발등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찍어 트위터에 올린 적도 있었다. 물론 10초 만에 실수라는 걸 깨닫고 사진을 내렸다. 만약 그대로 놓아두었더라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구루미는 트위터를 나와 인스타에 접속했다. 케이크바이킹의 쇼트케이크, 선샤인수족관의 펭귄, 호텔 미라코스터에서 미키의 귀를 붙이고 얼굴을 애플리케이션으로 장식한 여자아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사진들이 저마다 반짝이는 빛을 발하며 ‘좋아요’를 눌러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구루미는 ‘좋아요’를 누르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사진을 찍어 올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구루미는 재수생이라 대학생 친구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 홀로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울적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수학 참고서를 펼쳤다. 수학 과목은 수학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 있어서 좋았다. 허수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숫자인데 수학에서는 있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는 게 흥미로웠다.
--- pp.89~90

“VR 영상이나 사운드를 만들어내려면 고도의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해. 현재 일본에서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은 지극히 한정적이야.”
“이 세 사람이 유력 후보들인가?”
A4 용지에 가메자키 요시카즈, 이데이 미키오, 데라사와 가호라는 이름과 각자의 이력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혼자서 VR 게임을 만든 적이 있는 프리랜서들이야.”
“혼자서 VR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 사람밖에 없어?”
“VR 게임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야. 게임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가 없을 테니까 탈락시켰어. 이 세 사람은 VR 게임을 만든 전례가 있고,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프리랜서들이야. 지난 2년 동안 이들이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아무도 몰라. 이 세 사람 가운데 하나가 VR 게임을 만들었을 공산이 커.”
옆에서 듣고 있던 니시노가 추의 말을 제지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
“어떤 의문이 남는다는 거야?”
“우선 VR 게임을 만든 동기가 뭔지 모르겠어.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게임이 왜 필요했을까? 그런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 pp.113~114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자 실제로 나타났다. 고글을 사용해 생겨난 이 공간은 마치 허수가 도입된 숫자 같았다.
‘굉장해.’
오른쪽 왼쪽, 위아래 사방으로 어두운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어두운 공간을 향해 빛의 화살이 날아갔고, 가까운 것은 빠르게, 먼 것은 느리게 물리 법칙을 따라 중층적으로 움직였다. 구루미는 흘러넘치는 색깔을 가르며 앞으로 날아갔다.
컬러풀한 빛이 반딧불처럼 주변에 떠있었고, 눈앞에 은색으로 칠한 직사각형 문이 나타났다.
“문을 열어보세요.”
구루미는 집게손가락으로 트리거를 당겼다. 그 순간 문에서 은색의 빛이 흘러넘쳤다. 눈이 부시도록 흘러넘치는 은빛이 시야 전체를 가득 채워갔다.
은빛이 서서히 사라졌고, 구루미는 어느새 거리에 다다라있었다. 돌로 바닥을 깐 도로 양옆으로 목조 주택들과 침엽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집은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방금 전 공간을 수놓았던 빛이 집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었다. 은색의 눈도 살짝 쌓여 있었다. 은색이 다양한 색깔들을 조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구루미는 화려한 색들과 자제력을 가미한 은색의 조화가 전하는 아름다움에 자기도 모르게 매료되었다.
--- pp.122~123

추는 쇼핑몰 출구로 걸어갔다.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중대한 결단을 내린 자신을 축복해주는 듯했다. 추는 계속 출구로 걸어가다가 장난감 매장 근처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 주에 롤플레잉 게임 신작이 발매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죽으면 더는 게임을 할 수 없겠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죽으면 다 끝장인데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걸 한탄하다니?’
추는 새삼 자신이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그 당시는 메가 드라이브나 슈퍼 패미컴이 출시되어 한껏 관심을 집중시키던 때였다. 추는 본격적으로 게임에 빠져들었고, 왕따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게임이 없었다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중학교 시절에는 교칙이 엄격한 학교를 다녔기에 친구는 없었지만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추는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꿈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는 내가 만든 게임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거야.’
추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게임이 나를 구해 주었어. 게임을 살인에 이용하는 자가 있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마 아리모리도 나와 같은 심정일 거야. 넌 집단 자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조사에 나섰겠지만 나는 게임을 살인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자를 찾아내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어.”
“부디 자살 게임이 존재하지 않길 바랄 수밖에.”
“나도 차라리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으면 좋겠어.”
어린 시절부터 게임에 미쳤던 추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러길 바라.”
--- pp.140~141

고글을 쓰자 빛의 공간으로 빨려 들었다. 구루미는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진 빛의 공간을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은빛 나라』를 알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기분 좋은 음악과 다양한 색깔의 빛에 감싸여 지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몸이 녹아내릴 듯 쾌감을 느꼈다. 오늘은 『은빛 나라』에 폭설이 내렸다. 두터운 먹구름이 하얀 눈을 하염없이 흩뿌렸다. 『은빛 나라』에 들어올 때마다 매번 날씨가 달랐다.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 탓에 뿌옇게 흐려진 시선 속에 다운점퍼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비둘기’라는 이름이 머리 위에 표시되어 있었다. 『은빛 나라』에서 구루미의 이름은 ‘넛츠’였다.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이모티콘을 날리자 ‘비둘기’가 즉시 화답해 주었다.
『은빛 나라』에서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잡초를 뽑거나 눈을 쓸거나 길을 청소하면 보수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다양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었다.
--- pp.145~146

지난 사흘 동안 시오리는 고글을 뒤집어쓰고 지냈다. 시오리는 난생처음 VR을 대하고 깜짝 놀랐다. 분명 VR이었지만 실제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고글을 머리에 쓰는 순간 눈 덮인 거리가 나타났다.
오노가 말했다.
“너의 눈앞에 펼쳐진 곳이 바로 『은빛 나라』야. 나는 홋카이도의 구시로 출생이야. 홋카이도 눈은 도쿄의 눈과 확연히 달라. 화이트아웃이 일어나면 주변 풍경과 사물들이 온통 하얗게 변하면서 눈부신 빛을 반사하지. 마치 누군가 눈가루를 뿌리는 것 같아. 내 고향 홋카이도의 눈 내리는 날을 참고로 해서 만든 거리야.”
홋카이도가 고향이라고? 전에는 규슈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오노의 말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규칙이었다.
“이 VR을 당신이 만들었어요?”
“당연하지.”
“대단하시네요.”
절대로 아부의 말이 아니었다. VR이 이렇게 대단한 줄 미처 몰랐다. 눈을 호사시키는 경치, 다양한 나무와 각종 식물들, 넓게 펼쳐진 바다, 하얀 눈꽃을 뿌리는 하늘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 pp.214~215

줄거리

기후현 다지미시 출신인 고바야시 시오리는 줄곧 도망치는 생을 선택해왔다. 고교 시절에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하루 종일 별로 하는 일 없이 손님이 보다가 팽개쳐둔 만화책을 책장에 정리하는 일이 지겨워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을 만큼 무슨 일을 하든지 진득하게 버텨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부모는 시오리를 고바야시 가문의 대를 이을 후계자로 정하고 각종 교육을 시키지만 그녀는 호시탐탐 도망칠 틈을 노리다가 마침내 가출해 도쿄로 떠난다. 고등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시오리는 주로 카페나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번다. 그래도 고향인 다지미시에서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대도시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지만 힘겹게 모은 돈을 사기로 날린 이후로는 보다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는다.
시오리는 구직사이트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발견하고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오노 히로시라는 인물을 만난다. 오노는 면접을 보는 내내 줄곧 호감을 표하는 한편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시오리는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오노가 권하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 크게 취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노의 차에 오른 것까지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하실에 갇힌 시오리는 발목에 족쇄를 차고 있다.
구루미는 대학 입시에 낙방한 재수생이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지주막하출혈로 별세한 이후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그리 풍족하지는 않아도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아빠와 둘만 남게 된 이후 대화가 단절되고, 식사도 따로 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대학에는 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공부는 하기 싫고, 고교 시절에 사귀다가 헤어진 쇼타를 생각하면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쇼타는 현재 구루미의 고교 시절 친구인 아스카와 사귀는 중이다. 구루미는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습관처럼 리스트 컷(Wrist cut)을 한다. 커터 칼로 발등을 그을 때 짜릿한 자극을 받지만 일시적인 쾌감일 뿐이다. 구루미의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해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지만 구루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가끔 들르는 트위터 계정을 방문해 글을 남기고 누군가 ‘좋아요’를 날려주길 기대하지만 별로 호응이 없다. 어느 날 트위터에서 만나 메시지를 주고받던 ‘붕장어연어’로부터 새로운 게임을 소개받는다. VR을 체험할 수 있는 『은빛 나라』이다. 구루미는 현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은빛 나라』 게임에서 집도 받고, 애완동물인 고양이도 받는다. 가이드인 안나는 고민을 토로하면 친절하게 받아주고, 다른 이용자들과 게임을 즐기면서 나름 즐거운 날들을 보낸다. 구루미는 『은빛 나라』에 빠져들어 현실을 아예 잊다시피 한다. VR과 현실이 완벽하게 뒤바뀐 형국이다.
전직 은행원 출신인 고스케는 자살 방지 상담센터를 열고 활동하고 있다. 자살자를 하나라도 더 구제하기 위해 애쓰는 그의 옆에는 성실한 조력자인 미야코가 있고, 15명의 상담원들이 있다. 고스케는 매일 잠이 부족할 만큼 일에 열중하지만 매년 자살자는 더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럴 때마다 ‘막지 못할 자살은 아무리 애써도 막을 수 없다.’는 미야코의 말이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고스케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일 년 전 상담해준 히로유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고스케가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히로유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호텔방에서 VR 게임용 고글이 발견된다. 고글에서 원격 조작으로 지운 자살 게임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출판사 리뷰

1. 완전한 죽음을 부르는 『은빛 나라』의 미션이 시작된다.
-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수장 작가 이쓰키 유 신작 소설

2016년 《무지개를 기다리는 그녀》로 제36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쓰키 유(逸木裕)의 《은빛 나라》가 출간되었다. 이쓰키 유는 데뷔 이후 매년 한 권 이상의 소설을 꾸준히 출간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은빛 나라》는 2020년 작으로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을 소재로 다룬 소설이다. 자살 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일본보다 높고, OECD 국가들 중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6.8명, OECD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2명이다. 우리나라는 26.9명으로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현재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2,100명인 점을 감안할 때 매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1만3천 명에 달한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일본 정부는 자살 예방을 위해 매년 3천억 원의 예산을 지출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2백억 원이다.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를 안일하게 다루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쓰키 유의 《은빛 나라》는 사회학 서적이 아니라 스릴러 소설이다. 이웃 나라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무대를 우리나라로 바꾼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화자가 셋이다. 자살 게임을 추적하는 다미야 고스케, 자살 게임을 이끌어가는 고바야시 시오리, 자살 게임의 이용자인 도마루 구루미이다.
고스케는 도쿄 신주쿠에서 자살 방지 상담센터 『레테(Rete)』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서 대출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세계 금융 위기 당시 은행이 고객인 자영업자들을 냉정하게 몰아세우는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고액 연봉을 받던 은행을 그만둔다. 평소 자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고스케는 은행을 그만두는 즉시 본격적으로 자살 예방을 위한 상담 업무에 뛰어든다. 고스케는 자살자를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역부족을 느낀다. 상근 직원인 미야코가 그를 열심히 돕고 있고, 15명의 비상근 상담원들이 그와 함께 상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강행군을 해야 할 만큼 힘겨운 날들이지만 고스케는 주어진 일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수행한다. 고스케가 한때 상담해준 이치카와 히로유키가 호텔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고스케 씨는 선한 의지가 강한 분입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데 가장 이상적인 분이지요.’
히로유키가 고스케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그가 목숨을 끊은 호텔방에서 VR(가상 현실) 게임을 할 수 있는 고글이 발견된다. 고스케는 게임 개발자로 유명한 친구 시로마 추에게 고글에 대한 분석을 맡긴다. 시로마 추는 고글에서 히로유키가 몰두했던 VR 게임이 원격 조작으로 지워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VR 게임이 히로유키를 죽게 만든 자살 동기가 되었다고 확신한 고스케는 시로마 추의 도움을 받아 게임 개발자를 추적하기 위해 나선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화자인 고바야시 시오리는 기후현 다지미시 출신으로 무작정 도쿄로 상경해 힘겨운 날들을 이어가고 있는 여성이다. 부모는 시오리를 고바야시 가문의 후계자로 만들어 고향 집을 지키게 할 작정이었지만 그녀는 평생을 좁은 상자 안에 갇혀 답답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가출해 도쿄로 향한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는 시오리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불안정한 생활의 연속이다. 힘겹게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을 사기로 날린 이후 시오리는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구직사이트를 뒤진다. 나름 적합한 일자리를 발견하고 이력서를 낸 시오리는 면접을 받으러 나간 자리에서 오노 히로시라는 남자에게 납치되어 감금되는 처지가 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화자인 도마루 구루미는 재수생이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지주막하출혈로 숨진 이후 구루미에게는 우울한 일들만 연속적으로 벌어진다. 엄마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나름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집에서 부녀간 대화가 단절되었다. 영업 사원이었던 아빠가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히게 된 이후로는 경제 사정도 좋지 않은 편이다. 구루미는 고교 시절 즐거운 추억을 함께한 남자 친구 쇼타에게 차이고, 대입 시험에도 낙방하게 되면서 매일 커터 칼로 발등을 긋는 자해 행위를 벌일 만큼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교 시절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해 구루미와 멀어진다. 트위터에서 글을 쓰고 ‘좋아요’를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던 구루미에게 ‘붕장어연어’라는 인물이 접근해 『은빛 나라』라는 게임을 소개해주면서 가입을 권한다. 구루미는 붕장어연어의 말을 듣고 가입한 『은빛 나라』 게임에서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를 발견한다. VR(Virtual Reality 가상 현실) 세계이지만 현실과 진배없는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은빛 나라』에서 비슷한 처지인 여러 이용자들을 만난다. 『은빛 나라』에서 모든 이용자들에게 주어지는 집을 가꾸고, 아바타를 예쁘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애완동물인 고양이 헤이즐을 키우며 살아가다 보니 현실과는 점점 더 담을 쌓고 지내게 된다. 『은빛 나라』에 로그인해있는 동안에는 외로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우울해지는 대학 입시, 친구들과 멀어지고 있다는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루미는 날이 갈수록 현실보다 더 큰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은빛 나라』에 집착하게 된다.
『은빛 나라』의 가이드 안나가 이용자들에게 매일이다시피 미션을 전달한다. 미션을 수행할 경우 이용자들에게 아바타를 예쁘게 치장할 수 있는 장식품, 애완동물이 아플 때 낫게 해주는 만능약을 대가로 받을 수 있기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2. 이 세상에서 더는 도망칠 곳이 없을 때 『은빛 나라』가 손을 내밀었다!

이쓰키 유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자살 방지 대책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다수 만나 보았다고 한다. 자살자의 92퍼센트가 사전에 신호를 보내지만 주변인이 인지하는 경우는 21.4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고스케는 자살 방지 상담센터에서 상담 활동을 하면서 매년 자살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에 절망감을 느낀다. 아무리 열심히 상담을 해도 자살률은 해마다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실정이다. 범사회적인 관심과 뒷받침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지만 제도적 장치 마련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일본에서 ‘은빛’은 귀신을 쫓아버리는 색이다. 이 소설에서 ‘은빛 공간’은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의 총체이기도 하다. 눈(雪)으로 상징되기도 하는 은빛 공간은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는 세계이다. 눈이 내리는 날에 온 세상이 하나의 은빛 공간으로 통일되듯이. 자살자들은 흔히 자살을 결행하기에 앞서 리스트 컷(Wrist cut)을 한다. 칼로 손목이나 발등을 긋는 행위는 애정과 관심을 보여 달라는 절규이자 호소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구루미는 매일 커터 칼로 발등을 긋는다. 남자 친구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버렸고, 유일한 가족인 아빠와는 대화가 단절되어있다시피 하고, 고교 시절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해 재수생인 그녀와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구루미는 대입 시험 준비에 매달려야 할 형편이지만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트위터를 방문해 의미 없는 글을 남기고 ‘좋아요’를 달아주는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거나 고교 시절 친구들이 주로 드나드는 인스타 계정을 방문해 친구들이 업로드한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 친구들의 뇌리에서 아예 사라진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러다가 방문하게 된 『은빛 나라』 게임은 구루미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은빛 나라를 방문하는 이용자들은 모두 비슷한 처지이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구루미에게 『은빛 나라』는 현실에서는 찾아내지 못한 즐거움, 평화, 행복, 기쁨을 전해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은빛 나라』를 방문하는 이용자들 대부분이 구루미처럼 현실 세계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인물들이다. 비록 VR 세계일 뿐이지만 『은빛 나라』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간절히 소망해온 행복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은빛 나라』는 자살을 바라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가? 『은빛 나라』에서 제공해주는 서비스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에게 현실 세계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간일 뿐이다. 『은빛 나라』를 만든 범인의 목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미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이다. 『은빛 나라』에서 제공하는 모든 행복의 요소들은 미끼에 불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고스케와 『은빛 나라』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가려는 범인이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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