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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나의 가치는 어디까지일까요 홈스쿨링의 세계 소설가 지망생 잼을 끓이다가 알바 구하시나요? 결혼, 가족계획, 자아실현 여성인력개발센터 그 많던 직장대디는 어디 갔을까 2. 완성되지 못한 이력서 선택적 경력단절 완성되지 못한 이력서 브리저튼 보시나요? 가만히 선언한다 여섯 번째 육아 아빠됨의 시간 나는 워킹맘이다 3. 엄마와 노동자 사이 N과 S 경력 아닌 경력들 돌봄노동자 유튜브 편집자입니다 이론 740시간, 실습 780시간의 자격 이론과 실전의 간극 이 단절의 장막을 뚫을 수 있을지 나는 자진 퇴사자입니다 4. 커리어우먼은 없다 성대한 잔치는 끝났다 코로나와 난임치료 응원이 필요한 시간 9 to 12 딩펫족입니다 아프리카 다방으로 오세요 아프다고 말하기를 누가 금기하는가 노준석 작가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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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담담하게 자조했다. 만삭의 몸으로 퇴사한 그 길로 나의 가치는 어디까지 떨어진 걸까. 그 가치라는 게 남아 있기는 할 걸까. 목표를 설정하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이내 달성하는 수순에 익숙했다. A는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로 멈춘 그의 시계는 여전히 제자리다. A는 일을 통해 삶의 밸런스를 찾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경력이 단절되고 근무 가능한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상황이 자신을 그저 만만한 착취의 대상으로 만든 걸까. A는 넘을 수도 부술 수도 없는 높고 견고한 벽을 경험했다. 그 아래의 깊은 구덩이로 고꾸라지는 느낌이 든다. 무기력이라는 구덩이.
--- p.18 그렇다면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해야 할까? 그것 역시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낳는다 해도 걱정, 낳지 않는다 해도 걱정이었다. 아이를 낳는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출산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혼이든 출산이든 상관없이 일을 놓지 않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A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것이 대학원 동기들이 걱정하던 바로 그 지점이구나.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고 평생 함께하자는 약속했을 뿐인데, 미래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 p.50 상사는 계약직 파트타임으로 들어와 출산휴가를 1년이나 받는 사람은 전무후무하다고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그보다 덜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주변의 무관심이었다. 그러나 잦은 부서이동과 권고사직으로 모두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H는 건강하게 출산했고, 일 년간의 휴직이 끝나고 회사에 복귀했다. 예상대로 재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년 계약 중 1년을 근무하고 1년을 육아휴직으로 보낸 이후, H는 다시 완전한 전업주부가 되었다. --- p.76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를 얻었고, 영국 지방도시의 여유를 누려봤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문득문득 한국에 두고 온 대기업 사원증, 시작도 못한 공부와 완성되지 못한 제 이력서를 생각합니다. 계획이라는 녀석은 너무 자주 경로를 이탈했어요. 그것을 수습하면서 10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 나이 마흔을 바라봅니다. 아직 공부와 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세상과 연이 끊어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완성되지 못한 이력서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 p.83 남편의 여건이 나아졌다고 해도 부부가 동등하게 일하고 동등하게 육아에 참여하는 건 불가능했다. S가 여전히 구직에 나설 수 없었다는 말과 같다. 경제적인 사정도 무시할 수 없다. 가족은 넷으로 불어났는데 수입은 반으로 줄게 되었다. 아이들이 클수록 돈은 더 필요하다는데 S의 구직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드는 게 아닌가. 경제적인 어려움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가져다준다. 8년 동안 경력이 단절된 S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 p.122 A가 몇 차례 구직실패를 겪는 동안 둘째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갓 입학한 둘째 아이를 챙겨야 해서 당분간 구직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보냈던 이론 740시간, 실습 780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간을 다 하기 위해 독감으로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아이가 꼭 참석하길 당부했던 생애 첫 학예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엄마와 함께 지내기를 원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주말에도 공부와 실습에 매진했던 그의 치열했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한 끼의 식사 외에 노동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중노동 780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의 공부와 노동의 대가로 빈집에 남겨졌던 아이들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 p.150 급박했던 며칠 동안 방전되어있던 휴대전화 전원을 켰다. 회사와 팀원 누구에게도 안부 연락은 없었다. 그동안 자신을 향한 팀과 인사과의 대우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쯤 되니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회사에 부당함을 끼치는 건 아닌지. 혼자 버티는 싸움이 의미가 있을지. 무엇보다 이 싸움을 지속하는 게 배 속의 태아에게 내가 부당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나의 결혼과 나의 임신, 나의 허약함, 나의 모든 것이 이 조직에 부당한 것이구나. --- p.171 많은 사람의 기대와 축복 속에 시작했지만 그것이 그래프의 정점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혼을 채근하고 출산을 격려했던 그 많은 말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무렇게나 내뱉어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공중으로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책임은 오로지 그들이 채근하던 선남선녀 커플에게 있었고, 부부 중 O에게 기울었으며, 부부 사이의 어린아이도 함께 짊어지게 되었다. 성대한 잔치는 끝났다. --- p.181 “난임시술을 결정한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죠. 때마침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게 되어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 p.183 “발목을 잡는 것은 아이가 아니에요. 육아도 아니에요. 힘들다고 표현하고 이해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상태가 발목을 잡습니다. 발목을 잡는 것은 사회입니다. 우리 모두에요. ‘너무 미안하고’, ‘너무 나쁘고’, ‘너무 죄송스럽지만’. 고통 앞에 붙이는 전제들을 상기하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아프다고 말하기를 누가 금기하는가.” --- p.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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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고 느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글을 쓰는 저도 그런 걱정을 했습니다. 인터뷰이들도 자신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범한 이야기’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평범함 속에 묻혀야 했던 이야기, 다들 그렇다고 해서 등한시되었던 이야기, 각자의 다른 아픔, 다른 상황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 저자 인터뷰 중에서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의 모습을 현실에서 섬세하고 내밀하게 그려나가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을 시작으로 여성의 절절한 목소리가 하나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출간 2년 만에 100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였고 영화화, 해외수출 등 여전히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다. 『단절을 딛고 걸어갑니다』의 저자 역시 83년생이다. 자신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주위 이야기를 하나씩 모으는 작업은, 가상의 인물이었던 ‘82년생 김지영’의 모습을 현실에서 조금씩 그려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혼생활 11년을 돌이켜보니 임신과 출산 이후 돌봄에 대한 책무로 온통 분주했다. 이 가정에서의 돌봄은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사회적인 나로부터 등을 돌려 돌봄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그동안 글을 쓰고 책을 내기도 했지만 나의 주된 역할은 여전히 전업주부이자 돌봄 노동자였다. 그런 나날 중에 출판사로부터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인터뷰집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경단녀’들이었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고, 머리를 맞대며 취업을 고민하고, 서로의 결혼을 축하하고, 출산과 육아를 지켜 봐왔던 최측근들. 말하자면 그의 모든 서사를 꿰뚫고 있다고 자신하는 친구들이 첫 번째 대상자였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저자는 자신의 예상이 시작부터 산산이 흩어져버렸다고 고백한다. 작정하고 귀 기울이니 모든 이야기가 새롭게 들렸고, 저자는 그 생경함에 아파한다. 그 시절 함께 고민하고 아파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역사를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업을 진행하며 그런 자부와 오만이 보기 좋게 걷어차인다. 촘촘하게 타래 지어진 문제들은 온전히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걸까, 좀처럼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의문 속에서 저자는 평범함에 묻힌 수많은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임신과 출산 돌봄으로 인한 여성의 사회 참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지 않았는데 전업주부가 된 사례로 시작해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이 된 사연, 인사이동, 권고사직 이야기 등으로 이어진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한 비혼주의자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딩크족의 사례로 확장된다. 또 자식을 일터로 보내고 손자를 돌보는 황혼 육아, 직장맘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구직에 나선 여성들, 또는 취약계층 여성이나 이주여성들의 일자리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나의 이야기이자 엄마, 아내, 딸, 친구의 이야기 경력단절 여성의 아픔을 담은 서른여 개의 조각을 모으다 경력단절 여성 문제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대하는 우리의 민낯, 엄마의 역할과 모성에 대한 환상, 돌봄의 책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저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을 지원한다고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 책에는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집단에 속하지만 각자 다른 아픔으로 점철된 서른여 개의 삶이 담겨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나의 친구, 나의 엄마, 나의 이모와 고모 이야기, 더 나아가 내 딸, 내 아내의 이야기일 것이다. “경력단절은 돌봄과 긴밀하게 연결돼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성인이 되어 돌봄을 행합니다. 그리고 다시 노년이 되어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돌봄은 우리 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이 이야기들을 함께 읽고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저자 인터뷰 중에서 편집후기 20대 후반, 편집자 직함을 달고 처음 기획한 책은 육아 에세이였다. 그때 처음으로 출산과 육아, 돌봄, 경력단절 문제 등에 관심 가지기 시작했다. 약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 처음 호흡을 맞췄던 작가님에게 제안했다. 첫 단행본은 작가님의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수집해보자고. 그렇게 2020년 8월에 처음 논의를 시작했고, 1년간의 작업을 거쳐 서른여 개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아픔을 호소한다고 삶이 기적처럼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그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다. 경력단절 여성 문제 역시,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에 집단에 가려진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우선일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번 작업이 아니었으면 원래 그런 거라고, 당연한 거라고, 남들도 다 겪는 거라며 간단히 치부되며 흩어지고 말았을 여러 목소리와 마주했다. 사회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도 없고 한 사람의 힘듦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아픔에 공감하며 들어줄 수는 있다. 내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고통은 이야기되어야 하며, 우리는 이야기된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거창한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경청(傾聽)에 있다.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그거면,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