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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럽
당신들이 아는 유럽은 없다
김진경
메디치미디어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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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1부 코로나19, 상식을 뒤엎다

1장 코로나19로 불붙은 아시아인 차별
2장 뿌리 깊은 흑백 차별의 역사
3장 코로나 방역 조치에 반기를 들다
4장 백신 논쟁

2부 유럽의 민낯

5장 스위스 국민투표
6장 유럽의 교육 시스템
7장 스위스 조력 자살 제도-좋은 죽음인가, 좋은 삶인가
8장 값비싼 보편적 보장, 스위스 의료 시스템

3부 논쟁으로 보는 유럽 사회

9장 유럽의 불평등 1-연대는 가능한가
10장 유럽의 불평등 2-구걸할 권리
11장 기본 소득, 결론이 아니라 실험이 필요하다
12장 표현의자유와 한계
13장 ‘정치적 올바름’은 정치적이다-블랙페이스 논쟁
14장 ‘공정한 언어’-언어는 진화할까
15장 프라이버시, 어디까지 지켜야 하나
16장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4부 코로나 시대와 다문화

17장 솅겐 조약과 유럽연합의 미래
18장 오리엔탈리즘
19장 축구와 다문화 사회
20장 이방인, 잠재적 범죄자
21장 유럽의 무슬림

에필로그
감사의 말

저자 소개 1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중문학을 전공하고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페인 남자를 만나 스위스 취리히로 거주지를 옮긴 뒤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중앙일보], [시사인], [피렌체의 식탁] 등 여러 매체에 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일하는 여성, 다문화 가족 등을 주제로 한 시리즈 인터뷰 기사를 스위스 현지 매체에 연재했다. 현재 취리히대학교에서 인터넷 플랫폼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공부 중이다. 팩트의 재조합과 앵글을 달리한 관점으로 의미 있는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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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446g | 140*210*30mm
ISBN13
9791157062454

책 속으로

분명 자유민주주의의 기수는 서구 세계다. 경제적 번영부터 소수자 인권까지, 그들이 먼저 이루었고 우리가 따른 것이 맞다. 문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거의 따라잡거나 이미 판세가 바뀐 영역이 있는데도, 그들에겐 관련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위기다. 새로운 대응 방식이 요구되는데도 유럽은 여전히 과거 자유민주주의의 선구자 역할을 할 때의 모습에 기대고 있다. 유럽에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이후 소셜 미디어에는 ‘연대(solidarity)’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주로 발코니에서 정해진 시간에 의료진에게 박수를 보내거나, 촛불을 켜거나, 작은 콘서트를 여는 사진과 함께 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대를 말하면서 정부 조치를 위반하고 모임을 열었다. 그동안 내가 연대라는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프롤로그」중에서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제아무리 외쳐봤자 소용이 없다. 차별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애써 무시하고 차별할 이유는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내는 게 차별하는 자들의 사고방식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초기에 유럽에서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아시안들이 있었다. 이것은 ‘중국인이라면 차별해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였다. 동시에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차별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중의 실책이다.
---「코로나19로 불붙은 아시아인 차별」중에서

스위스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거의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권한은 각종 법으로 까다롭게 제한돼 있다. 국민투표는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고, 이 때문에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바이러스 억제 조치를 여론에 맡겨도 되는 걸까. 다수의 의견은 늘 옳은가.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도 개인의 권리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일까. 그렇다면 대체 연대란 무엇일까. 철저히 다수결의원리로 작동하는 국민투표와 포퓰리즘의 차이는 뭘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협상, 경제적 지원, 시민 의식 등 모든 방면의 협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익이나 정치적 입장에 충실한 개인들의 투표 결과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절대적인 것인 양 신성시돼선 안 된다.
---「코로나 방역 조치에 반기를 들다」중에서

직접민주주의는 이상적인 단어지만, 그에 속한 구성원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 ‘국민이 직접 결정한다’는 것과 포퓰리즘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다. 국민투표라는 제도는 ‘다수결’과 ‘소수 의견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두 원칙 중 어느 것에 더 무게가 실려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국민투표와 선거가 언제나 인간의 느낌에 관한 것이지 이성적 판단에 관한 것이 아니라며, 국민투표를 ‘감정의 인형극’에 비유했다.
---「스위스 국민투표」중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사는 한국인들이 그 나라 교육에 대해 쓴 걸 보면, 대개 한국이 주입식·암기식 교육인 데 비해 선진국은 구구단 하나도 몇 년 동안 가르치면서 원리를 완벽히 이해시킨다는 설명이 흔히 등장한다. 그런데 구구단 원리를 이해하는 데 정말 몇 년씩 걸리는 게 사실이라면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가. 만 9살짜리가 더하기와 곱하기의 관계를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막상 내 아이가 3학년에 올라가면서 곱하기를 배우는 걸 보니, 선진국식의 대단한 ‘원리’ 교육이란 건 없었다. ‘무식한 반복’으로 구구단을 암기하는 건 스위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엔 구구단 노래가 있고 여긴 없다는 것뿐이다.
---「유럽의 교육 시스템」중에서

표현의자유는 뫼비우스의띠 위에 놓여 있다.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숭고한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걷다 보면 어느새 혐오 표현이라는 반대쪽 면에 도착하게 된다. 표현의자유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에, 이 양면성을 잊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하다. 성역 없는 표현의자유는 민주주의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혐오 표현이 그 기둥을 갉아먹게 두면 안 된다. 법에 모든 걸 맡기려 하지 말고, 표현의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 스스로 혐오 표현이 자라는 걸 막아야 한다.
---「표현의자유와 한계」중에서

다른 제도와 달리 언어(구어, 문어)는 소통을 위해 모두가 매일같이 쓰는 도구다. 사람들은 필수적인 도구를 안정적으로 쓰고 싶어 한다. 다른 사안에서 진보적인 입장의 사람들도 언어 사용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많은 건 그 때문이다. 공정한 언어 사용의 도덕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변화의 최종적 목적이 무엇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 방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차별 없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 맞춰 진화하는 언어다.
---「‘공정한 언어’-언어는 진화할까」중에서

IT 기술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필요악이다. 팬데믹이 전 지구를 휩쓰는 상황에서 개인의 감염 이력이나 동선을 일부 공개하는 건 피치 못할 결정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개인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 ‘숨길 게 없다면 공개해도 된다’는 주장과 ‘사생활 침해에도 불구하고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르다. 사안별로 이점과 희생의 크기를 비교해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존엄성과 맞닿아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당장 피 흘리고 쓰러지는 사람이 없다고 그 무게를 폄하해선 안 된다.
---「프라이버시, 어디까지 지켜야 하나」중에서

코로나 보조금을 둘러싼 유럽연합 내 국가들의 갈등이 나타나는 양상은 흥미롭다. 갈등의 규모는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계급이나 성별을 둘러싼 한국의 ‘공정’ 이슈와도 닮은 점이 있다. 어려운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보다는 지원이 과하다며, 지원받을 자격이 없다며, ‘금수저’의 특혜라며, ‘노오력’을 하지 않았다며, 역차별이라며 진영을 갈라 싸운다. 분명 유럽연합이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누구도 현재의 유럽연합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연합은 본래의 역할과 목적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은 유럽연합이 왜 존재하느냐고 묻는다. 답을 하려면 애초에 유럽연합이 왜 태어났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솅겐 조약과 유럽연합의 미래」중에서

국가를 부를 것이냐 말 것이냐는 유럽에서 의외로 심각한 이슈다. 이민자들이 자신이 정착한 새 국가의 시민권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국가를 부르며 원주민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는 어렵다. 국가는 국기와 더불어 민족국가의 강력한 상징이 아닌가. 원주민들은 이방인이 국가를 부르는지 아닌지에 따라 우리 편인지 아닌지 판별하기도 한다. 한국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으로 귀화한 필리핀 출신이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진짜 한국 사람’이라고 환영할 것이고, 애국가 가사를 모르거나 알아도 부르기를 거부한다면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길 경계하고 의심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대체 국가가 뭐길래 그렇게 큰 무게를 싣는 걸까. 가슴 벅차게 국가를 부르면 애국심이 증명되나. 국가는 국민 모두의 것인가.
---「축구와 다문화 사회」중에서

유럽의 외국인 이민자 범죄 관련 정책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가까운 한국의 미래다. 2018년 이른바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떠올려보자. 무비자로 제주에 들어온 예멘 난민 500여 명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와 비방이 넘쳤다. 당시 소셜 미디어에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돈 벌러 온 가짜 난민’, ‘테러리스트’, ‘우리의 딸들을 강간할 이슬람교도’ 같은 원색적 선동이 난무했다. 난민 신청 허가를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왔고, 한 달 만에 71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무비자 입국으로 인한 범죄와 치안 문제를 지적했고, 난민 문제에 책임이 있는 유럽과 달리 대한민국은 난민을 수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방인, 잠재적 범죄자」중에서

한국에서는 백신 접종을 먼저 시작한 미국과 유럽이 ‘위드 코로나(즉 지금까지의 제한 조치를 일부 완화하고 위중증 환자 관리에 집중하는 새로운 방역 체계)’로 전환했다고, 그래서 일상을 회복했다고 부러워들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유럽에선 오히려 한국이 팬데믹 기간에도 일상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 방역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국경 통제와 통행금지부터 코비드 증명서 검사까지, 한국에는 없고 유럽에는 있(었)던 정책이다. 프 라이버시와 개인의 자유를 생명처럼 여기는 유럽인들에게 이번 팬데믹은 스스로 굳건히 쌓아 올렸다고 생각한 가치가 무너지는 체험의 연속이었다.

---「에필로그」중에서

출판사 리뷰

더는 표준이 아닌 사회
유럽을 다시 읽다


2019년 말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일상의 대면 접촉이 중단됐고, 세계 곳곳에서 유례없는 록다운이 실시됐다. 주목할 점은 팬데믹으로 인한 서구의 대처 방식과 효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은 선진국으로서 그동안 여러 방면에서 ‘롤 모델’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그들의 방식에 허점이 드러났다. 방역 당국의 비일관적 조치, 협조하지 않는 시민, 인종차별, 횡행하는 가짜뉴스 등 사회 전반의 혼란이 지속됐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의 ‘K방역’ 등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처 방식은 전 세계에 본보기로 회자됐다.

『오래된 유럽』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불확실성에 빠진 유럽 사회의 혼란과 대응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기존 인식을 재고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선도 국가의 위치에 선 지금, ‘어떻게 유럽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는 이제 유효기간을 상실한 질문이다. ‘코로나 시대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코로나 시대의 시민 연대와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등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할 때다. 이 책은 제대로 된 답을 찾는 출발점으로써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고, 그 과정에 함께 하고자 한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유럽 세계의 민낯
“좋은 유럽인은 죽었다”


1부 〈코로나19, 상식을 뒤엎다〉에서 저자는 인권, 자유, 연대 등 유럽을 상징하는 가치들이 의미를 잃고 표류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20세기 이후 유럽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연대가 실현되는 이상적인 땅으로 평가됐다. 코로나19 사태는 그게 잠시 지속된 환상일 뿐, 나쁜 것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깨우쳐 줬다. 바이러스는 유럽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인종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유럽 시민들의 아시안에 대한 인종 혐오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초기 중국 여성이 박쥐 요리를 먹는 유튜브 영상이 돌자, 박쥐는 야만의 상징이 됐고 그걸 먹는다고 오해되는 사실상 모든 아시아인이 혐오 대상이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한국인들이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강변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인이면 차별해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이고, 차별 속 피해자와 가해자는 고정불변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럽 초콜릿 과자 ‘모렌코프’, ‘콩기토스’ 백인 산타의 흑인 시종 ‘츠바르테 피트’와 ‘슈무츨리’ 등 유럽 문화 속에 담긴 인종차별적 함의를 살펴본다.

이 밖에 저자는 오락가락하는 유럽 방역 당국의 조치, 바이러스 억제 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비협조 등을 다룬다. 특히 유럽의 마스크 착용 논란과 백신 논쟁을 세세히 조명한다. 유럽 정부의 코로나19 초기 대응과 마스크 수급 현황, 오랜 자유주의적 배경에 따른 마스크 착용 강제성 여부를 비롯해 백신을 거부하는 문화, 안티 백신의 역사, 백신 무용론, 그리고 백신으로 연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본다.

유럽이라는 환상을 덜어내다
나의 평범한 이웃, 유럽


저자는 2부 〈유럽의 민낯〉에서 유럽의 정치, 교육, 의료 등 한국 사회가 롤 모델이라 말했던 시스템의 명과 암을 설명한다. 우선 저자는 스위스 국민투표 제도의 의미와 허점을 논하면서 ‘다수결’과 ‘소수 의견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두 원칙 중 어느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스위스가 자랑하는 국민투표 제도는 개인의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유의미한 제도적 장치이다. 국민투표는 소수 정치인이나 특권층의 결정으로부터 국민 다수 의견이 소외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국민투표는 소수 의견은 보호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스위스에서는 국민 다수의 고정관념이 법을 과거에 붙들어 놓는 일이 간혹 있다. 일례로 저자는 스위스 여성이 투표권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꼽는다.

아울러 저자는 많은 한국인이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유럽식 교육’의 허상을 들춰낸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유럽식 교육’은 구체적 실체 없이 그저 문제 있는 한국 교육의 반대편 개념일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개 한국의 교육은 주입식이고 암기식이지만, 유럽은 경쟁도 없고 원리를 파헤치는 방식이라고 간주된다. 하지만 유럽의 교육 역시 경쟁과 차별이 있고, 동네 소득수준에 따라 김나지움 진학률이 다르다. 따라서 저자는 ‘유럽식 교육’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식이 아니라 교육 문제에 있어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외에 유럽의 안락사와 조력 자살 제도를 살펴본다. 특히 스위스의 제도 이면에 담긴 의료 시스템의 부분적 결함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좋은 죽음’인가, 아니면 ‘좋은 삶에의 실패’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2부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좋은 삶’의 문제에서 스위스의 값비싼 보편적 의료 시스템의 명과 암을 짚으면서 논의를 마무리한다.

유럽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살피다


3부 〈논쟁으로 보는 유럽 사회〉에서는 유럽 사회의 불평등, 표현의자유 등 각종 이슈와 논쟁 등을 살펴본다. 코로나19가 가시화한 빈부격차 문제에서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가진 사람들은 더 쉽게 벌고, 못 가진 사람들은 더 구석으로 몰리는 현 상황에서 어떤 방식의 연대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일지 유럽에서 논의되는 팬데믹연대세 등을 소개한다. 특히 최근 약 10년 동안 스위스에서 실시된 빈부격차 해소 관련 국민투표 내용을 집중 조명하면서, 스위스 직접민주주의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자유라는 가치가 혐오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양면성을 살펴본다. 저자는 그 예로 ‘블랙페이싱’ 논쟁을 들며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다룰 때 이슈를 둘러싼 맥락과 의도, 반응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더해 언어의 문제, 즉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주요 소통 수단인 언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다.

그 외에 저자는 3부에서 팬데믹 과정에서 불거진 프라이버시 문제 등을 다룬다. ‘숨길 게 없다면 공개해도 된다’는 주장과 ‘사생활 침해에도 불구하고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의 차이점을 짚는다. 이를 통해 전 지구적 감염병이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를 제공할 때,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존엄성과 맞닿아 있고,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이 문제의 무게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유럽 사회의 다문화,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


4부 〈코로나 시대와 다문화〉에서 저자는 우선 코로나 보조금 지급을 둘러싼 유럽연합 내 국가들의 갈등 양상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유럽연합의 본래 역할과 목적, 그리고 그 존재 이유를 묻는다. ‘포트 뒤 솔레이’ 스키장이 보여준 갈등을 예로 들며, 불안한 ‘솅겐 협약’의 미래를 진단한다. 이러한 갈등을 살펴보며 ‘하나된 유럽’이 팬데믹이 종식된 뒤에도 가능할지, 저자는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아울러 4부에서 저자는 팬데믹으로 인해 서구 사회에서 되살아난 오리엔탈리즘을 살펴본다. 아시안 혐오에 근거한 ‘옐로우 페럴’과 차별적 이민정책, ‘모범적 소수자’가 가진 부정적 함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선호인 ‘옐로우 피버’ 등을 파헤친다. 이러한 편견에 따른 차별적 일반화는 펜데믹과 만나면서 각종 혐오 범죄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를 막으려면 연대뿐이라고 강조한다. 침묵은 차별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따라서 서양에서의 아시안 차별을 반면교사 삼아 한국 내 인종차별의 사슬을 끊을 것을 강조한다. 외국에서 한국인이 받는 차별은 한국에서 다른 외국인이 받는 차별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저자는 다문화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유럽 사회를 조명한다. 특히 “이기면 독일인, 지면 이민자” 취급을 받았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 출신 메수트 외질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10년 가까이 독일의 ‘모범적 이민자’로서 성공적인 다문화 정책의 상징이었던 외질에게 비난이 쏟아지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이를 시작으로 다문화 속 ‘평행 사회’ 개념과 축구 경기에서의 라마단 난제, 국가 제창 논쟁, 이민자 범죄, 무슬림 문제 등 다문화 사회로서 유럽이 겪은 진통 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앞서 유럽이 거친 시행착오를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이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팬데믹, 현실을 낯설게 만들다

저자가 『오래된 유럽』에 담아내고자 한 것은 ‘시선’에 대한 고민이다. 우리가 그들을 보는 시선, 그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은 왜 이토록 천편일률적이고 편견에 가득 차 있는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유럽이 더 낫다거나 한국이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어디가 더 우월한지 비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편견 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팬데믹으로 드러난 현실에서 비판의 시선은 타자가 아닌 스스로를 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팬데믹 이후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추천평

좋은 저널리스트는 우리가 떠올리지 못하던 질문을 던질 줄 안다. 진지한 이방인은 그가 도착한 사회를 낯설게 볼 줄 안다. 좋은 저널리스트가 진지한 이방인이 되면? 그게 김진경이다. 한국에서 기자로 일하다 외국인과 결혼했고, 낯선 스위스에 정착했다. 『오래된 유럽』은 이방인 저널리스트가 본 유럽의 이야기인 동시에, 유럽이라는 거울에 한국을 비춰본 이야기다.

유럽은 우리의 선진국 콤플렉스가 향하던 곳이다. 프랑스가, 독일이, 또 스웨덴이 번갈아 유행을 탔다. 『오래된 유럽』은 확실한 별종이다. 김진경은 섣부른 찬사로 달려가지 않는다. 그저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고, 취재하고, 가설을 검증하고, 유럽에 비춰 우리를 돌아본다. 우리가 한때 경외로 바라보고 질투로 깎아내리던 그 유럽이, 이 책에서는 평범한 이웃이다. 적당히 훌륭하고 또 적당히 후진 이웃. 드디어 우리는 경외도 질투도 없이 지구 반대편의 동료 시민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 천관율 (얼룩소 수석 에디터, 전 [시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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