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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
2. 소년 3. 어둠, 그 앞에서 4. 부자연스러움 5. 가을색 6. 특별한 끈 7. 시나리오 8. 마징가제트와 메칸더브이 9. 도둑 10. 그저 웃음일 뿐 11. 그리고 햇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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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누군가 짓밟은 양 여수진 환자의 얼굴이 뭉개져 보였다. 그녀는 울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떤 물건의 깨져버린 한 조각 같았다. 한 때는 분명 완성품의 일부였을 그 조각은 영원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할지 몰랐다. 어쩌면 완전히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 p.13
‘죽음에 대한 나의 충동은 삶에 대한 불만이나 좌절, 슬픔 이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욕구에 가까웠다. 내게 그건 식욕이나 성욕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엔 옳고 그름 같은 것이 없고 어떻게든 채워지길 기다리는 욕망만이 있었다. 그리고 내 곁엔 약이 있었다.’ --- p.41 ‘아내를 보면 나는 약한 것과 순수한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순수하기 때문에 무방비했고, 때문에 약해져버렸다. 아내는 아직도 자신을 망가뜨린 과거로부터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매우 더딘 회복이었다.’ --- p.68 ‘삶이 부서지기 쉬운 장난감 같은 것임을 이해하고 완고한 불행의 모습을 잘 아는 섬세한 눈을 가진 상대, 그런 상대가 우리에겐 꼭 필요했다.’ --- p.102 ‘땀으로 미끈거리는 손가락 안에서 만년필이 자꾸 헛돌았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어디선가 끊임없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는 한껏 발톱을 세우고 먹이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뭔가 잘못된 걸 뒤늦게 깨달은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 p.133 ‘이 상황이 황당한 내가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상균 환자는 사실 의사이고, 그의 의사인 나는 그의 환자란 사실에 오류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의 의사는 김상균 환자이고, 그의 환자인 나는 그를 돌보는 의사인 것이다.’ --- p.158 ‘번거로운 욕심을 모르는 이들에게 주어진 게으름은 일종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얄팍한 편의나 사치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고 그보단 그 자체로 지혜, 배려였다. 그런 삶에선 게을러도 충분히 괜찮았다.’ --- p.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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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다시 보면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
때때로 죽음의 충동을 느끼는 정신과 의사 형기와 뛰어난 교감 능력을 지녔지만 환자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전문의 과정을 포기한 준희. 작품 속 작가는 그들이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솔직히 그려내고 있다. 한밤중에 들려온 굉음에 형기는 그것이 자신의 환자가 투신한 소리일거란 생각에 사로잡히고, 곧 그가 김상균 환자일 거라 확신한다. 이때부터 그의 일상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가지만 그사이 준희는 아름다운 그리스 청년 마르코와의 친분에 더 치중한다. 질투와 불안이 차오르면서 형기는 약물에 의존하는 등 점점 더 망가져만 가는데……. 정신과 의사라는 특수한 직업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주인공이 겪는 마음의 고충은 어느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친숙하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가장 문제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문제를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사실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