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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열린 길
사유·정동·리얼리즘
한기욱
창비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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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창작/이론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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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주체의 변화와 촛불혁명: 황정은?정미경?김금희의 소설들
사유·정동·리얼리즘: 촛불혁명기 한국소설의 분투
촛불민주주의 시대의 문학: 한강과 김려령의 소설들
문학의 열린 길: 어그러진 세계와 주체, 그리고 문학

제2부
한국 근대를 살아냈을 뿐: 신경숙 『아버지에게 갔었어』
야만적인 나라의 황정은씨: 그 현재성의 예술에 대하여
우리 시대의 「객지」들: 황석영과 김애란 소설의 현재성에 대하여
가족의 재구성: 가부장제와 근대주의를 넘어서
떠도는 존재의 기억과 빛: 조해진의 『빛의 호위』에 대하여
촛불혁명은 진행형인가: 『디디의 우산』을 읽고

제3부
기로에 선 장편소설: 최근 소설비평의 흐름에 대한 비판적 고찰
최근 소설과 비평의 지나친 탈근대적 성향이 불편한 이유
: 재반론―김형중 교수의 반론에 답하며
장편소설 해체론과 비평의 미래: 『문학과사회』 2013년 가을호 특집에 대하여
주변에서 중심의 형식을 성찰하다: 호베르뚜 슈바르스의 소설론

제4부
근대세계의 폭력성에 대하여: 멜빌의 『모비 딕』과 매카시의 『피의 자오선』
근대체제와 애매성: 「필경사 바틀비」 재론
로런스는 들뢰즈의 미국문학론에 동의할까?: 그들의 멜빌 비평에 대한 비교론적 연구
“숨을 쉴 수 없어”: 체제적 인종주의와 미국문학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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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HAN Ki Wook,韓基煜

문학평론가, 영문학자.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국외대 영어과와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허먼 멜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문학의 열린 길』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영미문학의 길잡이』(공저), 옮긴 책으로 『필경사 바틀비』 『우리 집에 불났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공역) 『미국 패권의 몰락』(공역) 등이 있다. 현재 『창작과비평』 편집고문, 인제대 영문과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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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618g | 153*224*20mm
ISBN13
9788936463571

책 속으로

촛불혁명 시대에 한국문학은 어떤 뜻깊은 변화가 있었는가? 이 물음에 응답하는 방편으로 주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시대의 혁명과 문학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혁명이 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혁명의 주체도 근본적인 자기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기존의 낡은 관계와 관행, 가치관에 맞춤하게 체질화된 자신은 바꾸지 않은 채 주어진 세상을 확 바꾸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학과 혁명의 관계를 논한 사례를 살펴보면, 혁명기에는 작가의 출신성분이나 사회적 공공성을 앞세우기 쉽고 이런 경향이 팽배해지면 공공성의 이름으로 창조성을 억누르는 사태가 벌어진다. 반대로 창조성을 빙자하여 공공성을 어지럽힐 가능성도 상존하기에 진상을 가려줄 비평의 역할이 요긴하다. 이 지점에서 문학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되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유영역이라는 ‘문학 커먼즈(commons)론’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커먼즈’라고 하면 으레 공유(共有)와 공공(公共)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만, ‘문학이라는 커먼즈’의 핵심은 그것이 작가와 독자를 포함한 당대 사람들의 ‘협동적 창조’라는 데 있다.
--- 「주체의 변화와 촛불혁명」 중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져가고 아직 미정인 다음 체제가 형성되는 전환기에 있다. 그와 연동된 한반도의 분단체제 역시 슬기로운 극복이냐 재앙적인 파국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들어서 있다. 작금의 세상은 향후 수십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한 사람의 작은 문학적·사회적 실천이 실로 중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문학은 자명하지 않고 미래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문학의 열린 길을 용감하게 갈 때만이 지금은 가려진 더 나은 세상을 열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그런 용감한 삶은 그 자체로 더 나은 삶이다.
--- 「문학의 열린 길」 중에서

가족서사는 근현대 한국문학에서 큰 비중을 점하면서 중심적인 흐름을 형성해왔다. 근대의 여러 사회집단 가운데 가족은 기초 단위이자 학교와 더불어 사회성원들이 그 사회의 주요한 가치를 전수하고 훈련받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교적 가부장의 권위와 혈연적 유대가 유별나게 강했던 한국사회에서는 서구에서라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수행할 법한 일의 상당부분을 가족이 떠맡기도 했다. 가령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화에 필요한 싼 값의 노동력 제공뿐 아니라 육아와 가사, 노령인구 돌보기의 책임까지 도맡은 것이 가족이었다. 국가가 별다른 보상이나 지원 없이 ‘근대화의 산업역군’을 요청했을 때 그에 부응한 쪽이 기업이나 시민사회가 아니라 가족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사에 유례없을 정도로 급격하고 복합적인 ‘압축적 근대성’을 달성한 주된 동력으로 강력한 가족주의의 전통이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가족의 재구성」 중에서

플로이드뿐 아니라 근년에 터무니없는 이유로 죽은 상당수 흑인들의 마지막 장면에는 그들이 아메리카 땅에서 겪은 온갖 형태의 차별과 냉대, 모멸과 예속이 응축된 듯하다. 가깝게는 1950~60년대 시민권운동 당시 인종격리와 차별에 저항하며 평등한 시민권을 요구한 흑인들로부터 멀리는 노예제 시대 백인 주인의 어떤 처벌에도 복종해야 했던 흑인 노예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20세기 초반 남부에서 북부 대도시로 이주하여 백인 주류 사회의 또다른 형태의 차별과 착취에 시달리던 흑인 노동자, 빈민의 모습도 떠오른다. 특이한 것은 최근 죽임을 당한 흑인들의 삶과 죽음이 짐 크로우( Jim Crow) 시대나 시민권운동 시기보다 오히려 남북전쟁 이전의 노예들의 모습에 더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사실 플로이드 살해사건이 의미심장한 것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 폭력의 야만성보다 그런 야만적 폭력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버젓이 행사하는 방식이다. 경찰은 만약 혐의자가 백인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과도한 폭력을 가난한 흑인들에게 행사했다. 백주의 거리에서 행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천연덕스럽게 자행된 공권력의 이런 폭력행위는 제도적인 지지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플로이드 죽음 이래 ‘체제적 인종주의’(systemic racism)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의들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숨을 쉴 수 없어”」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각 시기 가장 주목할 작가와 작품,
문학이라는 창조적인 행위의 현재성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평론집의 1부는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한국사회를 진단한다. 여기 묶인 글은 촛불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지나는 과정에서 쓰였는데, 저자는 촛불혁명이 일으킨 전환의 에너지를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현재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는 촛불반대 세력과의 대치라는 어두운 경색 국면에 주목한 「사유·정동·리얼리즘」에서 잘 드러나는데, 촛불혁명기 리얼리즘의 성과를 짚어내면서도 극단적 축적방식으로 전환한 자본주의적 현실이 “사유와 진리에 깨어 있는 일”(39면)을 어렵게 한다는 분석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는다. 최근의 비평적 경향이 대체로 서구의 최신 이론을 척도로 삼아 지금의 한국문학을 일방적으로 분석한다면 한기욱은 이론과 작품 간의 쌍방향적 관계에 집중하는데, 이는 문학이 사회과학이나 철학 이론에 후행(後行)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열어가는 창조적인 행위라는 저자의 믿음에서 기인한다.
2부는 본격적인 작품론/작가론이다. 각 시기 가장 주목할 만한 소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가부장제하의 여성차별 현실이나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비평적인 작업이 곡진하게 수행되었다. 2부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구는 ‘현재성의 예술’이다. 「야만적인 나라의 황정은씨」에는 ‘그 현재성의 예술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우리 시대의 ‘객지’들」에는 ‘황석영과 김애란 소설의 현재성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각각 붙어 있는 것은 저자가 소설을 통해 가장 먼저 규명하고자 한 것이 현재성임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저자가 리얼리즘의 핵심을 ‘지금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으로, 저자를 통해 황정은 김애란 조해진 김금희 신경숙의 작품에서 확인되는 현재의 힘이 종요롭다.

논쟁과 시대론이 가미된
읽는 재미 가득한 평론집


장편소설론을 중심으로 한 3부는 당대의 논쟁이 가미되어 있어 특히 흥미롭다. 한국 소설문학의 침체를 장편소설 활성화로 타개해보자는 『창작과비평』의 주장은 ‘장편소설 해체론’ 등 반박과 그에 대한 재반박 등 흥미로운 논의를 이끈 바 있다. 저자는 차분한 어조로 비판론자들에게 조목조목 대응하는데, 그들의 탈근대적 성향이나 서구중심주의를 적절하게 논파해낸다. 비판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려 하고, “중심의 논리를 속 깊이 이해한 다음에야 여러 모습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실효적인 대응이 가능”(7면)하다는 저자의 말에서는 연구자와 비평가가 지녀야 할 미덕의 일단이 엿보이기도 한다.
4부는 세계문학/미국문학 평론을 모은 것으로 포스트모던 논자들(네그리와 하트, 지젝, 아감벤, 들뢰즈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여기서 영문학자인 저자의 깊은 식견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뛰어난 필력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가 되풀이한 말에서 출발한 「“숨을 쉴 수 없어”」는 노예제라는 과거와 팬데믹이라는 현재를 넘나들며 미국의 체제적 인종주의를 분석하는데 그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 대중문화, 번역되지 않은 소설을 폭넓게 인용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으로 독자를 이끈다.

한기욱의 비평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나 난해하지 않고, 핵심을 짚어내면서도 주변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미덕이 있다. 작품의 내적인 형식을 세심하게 파악하면서도 시대 현실과 조응하는 ‘문학의 열린 길’을 탐구하는 폭넓은 시야는 당대의 비평가뿐 아니라 글 쓰는 모두가 참조해야 할 덕목이다. ‘문학주의자’라는 칭호를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저자의 문학 사랑은 평론집 곳곳에 스며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는 일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작가의 말

지난 10년 동안 발표한 문학비평들을 묶어서 두번째 평론집을 내게 되었다. 특정 주제의 저서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요구에 부응하는 글들이라서 한데 묶이니 꽤 다양한 모둠이 되었다. 그래도 각각의 글에서 감지되는 기본적인 발상과 정동, 현실인식이 서로 이어져 일관된 흐름을 이루기는 한다.
마감이 코앞에 다가와야 발동이 걸리는 글쓰기 습성 때문에 편집자를 애태우기 일쑤였지만, 나로서도 분투의 산물인 이 평문들은 집필 당시 문학과 세상에 대한 내 생각과 느낌을 증언하는 기록이다. 동시에 그 대다수는, 특히 한국문학 비평은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진의 협동적 산물이기도 하다. 계간 『창비』의 편집 부주간 혹은 주간직을 수행하면서 집필한 것인 데다 대부분이 『창비』의 ‘특집’이나 ‘문학평론’란에 발표되었고, 글의 구상에서 최종 원고에 이르기까지 창비 편집진의 집단지성적 역량에 크게 힘입었다.
이 글들을 쓰는 동안 한국 사회와 문학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킨 사건은 물론 2016년 말에 시작된 촛불혁명이다. 촛불혁명의 혁명성을 어디에 둘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로서는 그 핵심이 박근혜정부의 탄핵과 정권교체 자체라기보다 그를 포함한 여러 종류와 층위의 기득권 장벽을 돌파함으로써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체질을 바꿔놓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니 ‘촛불정부’를 자임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그리고 촛불 5주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촛불혁명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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