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작하며
첫 마음을 담아 반가운 조우,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서 그럼에도 ‘경계’가 필요한 미술관에 전시된 시, 문학일까? 미술일까? 결합의 조건과 차이 국립현대미술 전시를 보고 예술 속 미술과 문학 문학이 미술에 머물던 시대 미술이라는 ‘언어’ 그럼에도 마지막 편지 |
강정화의 다른 상품
신이연의 다른 상품
|
선생님도 겪었다시피 문학과 미술을 함께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고,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도 많은데 말입니다. 물론 비교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과 타 장르에 관한 연구를 하는 선생님을 많이 만났어요. 모르긴 몰라도 우리 전공처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없을 거예요.
--- p.13 누군가는 궁금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미술과 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게 뭐가 그렇게 고민거리라는 거지? 하면서요. 네, 맞아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술과 문학은 꽤 친연성을 가진 예술 장르입니다. 두 장르를 나란히 놓는 것 자체가 크게 이질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공부하기에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두 장르가 가깝다는 생각은 의외로 인상에 그칠 때가 많아요. --- p.23 특히 문학 작품을 전시관에 둔다면 그것은 문학일까, 미술일까 하는 질문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머리가 징 하고 울렸습니다. 전시장 안에 문학 작품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 p.42 문학과 미술의 비교라는 비교문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선생님께서 쓰셨던 ‘시서화일체론’을 읽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냐면 저는 여태껏 글과 그림이 하나였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 p.52 선생님께서 마지막에 주신 질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문학과 미술을 함께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요. 제가 두 장르를 함께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내면의 이유라면, 외면의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 p.63 한 차례 말씀드린 적 있지만, 저는 학부에서 미술을, 그리고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중에도 “왜 하필 (미술에서) 문학이야?”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습니다. 여기에 대한 제 대답은 대체로 비슷했어요. “둘은 매체만 다를 뿐 비슷한 장르인 것 같아”였죠. 미술은 시각 언어를, 문학은 문자 언어를 도구로 활용할 뿐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독자에게 전한다는 점에서 두 장르는 상당히 유사한 작동 원리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 p.103 처음 ‘연구’라는 걸 시작했을 때는 두 영역이 겹치는 듯 겹치지 않았습니다. 석사 논문으로 시인 백석과 화가 김환기를 다뤘던 것만으로도 알 수 있죠. 1930년대 우리 문예사를 살펴보는 방향에서 시인과 화가를 다뤘을 뿐이지 두 사람이 어떤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서로의 글에 서로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1916년생인 백석, 그리고 1917년생인 김환기는 각자 시인과 화가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활발하게 창작을 이어간 작가들이었습니다. --- p.119 그러나 ‘문화 연구’ 대해서라면 부끄럽지만, 박사 과정에 진학하기 전까지 문자 그대로 금시초문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제게 ‘문화’라는 것은 개인과 사회가 상호 관계 하는, 어떤 무한의 영역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잘은 몰라도 미술과 문학을 나란히 두고 관찰한다고 상상했을 때, ‘문화’는 그 둘을 동시에 내려놓을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의 캔버스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문제는 그 캔버스가 커도 너무 커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늠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는 것이지만요. --- p.143 |
|
“우리의 이야기가 결론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바라는 바가 있다면 결론 앞으로 최대한 다가가는 것입니다.”
문학과 미술 또는 미술과 문학을 함께 연구하는 저자 강정화와 신이연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몇 번의 편지를 통해 이 두 사람은 각자가 생각하는 비교문학을 정리하고, 끊임없이 상대에게 문학과 미술 또는 미술과 문학의 경계를 묻고 들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물론 두 사람의 편지에는 결론이 없습니다. 다만 각자 방식대로 문학과 미술을 사랑하고, 문학과 미술의 친연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저자 강정화는 근대 문학과 미술의 연구자로, 저자 신이연은 미술 작가이면서 큐레이터로 살아가면서 문학과 미술 두 세계를 나란히 두고 보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며 결론 없는 우리의 이야기가 글자와 말을 오가며 끝없이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