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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 Shibata,しばた しょう,柴田 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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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 마음에 음화처럼 새겨진 너무도 어두운 부사장의 표정을 반추하고 있자니, 인간의 행복이란 대체 무얼까하는 의심이 점점 마음 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토록 어두운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면 인간이 살아서 누리고 있는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심 말입니다.
--- '사노의 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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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부재였다-그것을 나는 사실로써 말한다. 거기에는 다소의 선망은 있다 해도 실망은 없다. 우리 세대는 기대하고는 인연이 없는 세대이다. 혹은 우리 세대라기보다는 나는, 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내일 일어날 일을 예언자에게 배우는 그런 의미체계를 갖는 세계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내 앞에 있던 것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실들 뿐이었다. 나는 사실을 보고 세계란 무엇인가를 배웠다. 나는 실망하고는 인연이 없었다. (p. 101)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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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당신은 오로지 집요하게 자기 과거의 자기 전개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것에새로운 타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단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신이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던 건 무엇일까요? 우리 두 사람의 내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언지 몰라도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무언가 불모의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내가-어렸을 적 나무 쌓기 놀이 때와 마찬가지로-당신이 나를 보아주길 얼마나 기다리는지, 조금도 알아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밤,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을 갖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나서 곧 당신 논문 때문에 만날 수 없는 날이 계속됐습니다.
--- p.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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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격렬함은 허무를 버텨내지 못했다. 그 격렬함은 허무와 아무 상관없이 공존하다 이윽고 소멸했다. 그 격렬함이란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이내 알아차렸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그 격렬한 감정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나를 전적으로 채워주지는 않음을 처음부터 알아버렸다.
--- p.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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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대학에 들어간 지 이 년쨰 되는 초여름 일이었다. 강의도 거의 끝나고 사실상 여름방학에 들어간 지도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 여섯 시도 안 됐는데 나는 친구 전화를 받고 일어났다.
「그래, 오하시인가?」 그렇게 말한 친구 목소리에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한순간에 숨을 멎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가지이가 자살했다, 어젯밤에…….」 가지이 유우코는 전날 밤늦게 고마바 교정에 있는 도쿄대 교양학부 본관 2층 교실에서 약을 먹었다. 새벽녘에 수위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유우코가 있던 시로카네의 도쿄대 여학생 기숙사 룸메이트가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간 그 친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곧장 병원으로 가려고 하숙집을 나섰다. 하숙집 현관에 서 있을 때, 아침식사 준비를 하던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러고는 속달 한 통을 건넸다. 유우코가 내게 보낸 편지였다. 「어제 저녁에 도착했는데 집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그랬다. 전날밤 내가 돌아온 건 한 시가 넘어서였다. 그 즈음 알게 된 여자와 만났던 것이다. 나는 그 편지를 주머니에 찔러넣고 급히 역으로 향했다. 탁 트이게 맑은 초여름 아침이었다. 그날 하루도 생명에 넘친 더위를 약속하듯 아침해가 따가운 햇살을 내리꽂고 있었다. 그 햇빛 사이로 집집마다 늘어선 이슬 젖은 지붕이 반짝거렸다. --- p. 113~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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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봄을 기다리는 마음 곁에 가까이 다가서고자 오랜 시간을 달려온 책 한 권이 있다. 시바타 쇼의 <청춘>(靑春)이 그것이다. 제목에서 오는 느낌 그 자체만으로도 새천년을 더욱 새롭고 힘차게 나아가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봄만큼이나 반갑게 다가서리라 믿는다. 시바타 쇼는 <청춘>을 통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는 독일 문학 전공자로서 꾸준히 학문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면서 그 특유의 지적이고 낭만적인 향기를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청춘>은 그가 학생시절에 쓴 작품이다. 1964년 4월호 <문학계>에 발표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해 7월 21일에는 제51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그후 단행본과 문고판을 합쳐 150쇄 이상의 발행 질주를 이어오면서 200만 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다. 지금도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다시 판매부수가 늘어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후 세대에게 '청춘의 책'이라 불리는 데 한치의 주저함이 없고,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가 완연히 달라진 오늘날까지도 쉼없이 읽히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젊은시절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는 각자의 방황에 지침서가 될 만한 성서와 같은 소중한 책 한 권쯤 간직하기 마련이다. 숱한 독일 젊은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살을 유행시키기도 했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정치 이데올로기의 혼돈 속에서 방향을 잡아줄 지표를 갈구하던 젊은 지성인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길로 번져갔던 최인훈의 <광장> 같은. <청춘>은 바로 이러한 고전들과 나란히 서 있는 소설이다. <청춘>은 1955년 공산당 방침의 전환에 따른 혼란의 시대를 산 얼룩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책망하며 수면제를 먹은 사노와 임신을 한 채 자살을 하는 유우코, 그리고 정치에도 연애에도 열정을 내맡기지 못한 주인공 오하시 후미오. 후미오는 석사 논문을 쓰고 있는 도중 지방 대학에 취직이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공허함 그 자체'라고 느낄 뿐이고, 이들 속에서 후미오의 약혼녀인 세츠코만이 희망을 찾아 새로운 길을 걷고자 스스로 떠나간다. 정치적인 목소리가 드높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 속에 방치된 젊은이들에게, 정열을 쏟을 만한 선택의 기회가 폭넓게 주어질 수 없었다. 진실로 원하는지 아닌지를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하나의 길이라도 엿보이게 되는 순간부터는, 어디로든 정신 없이 좇아갈 따름이다. 마치 이것만이 정답이라는 것처럼.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느끼게 되는 불안과 허무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이상은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동안 싱싱한 푸르름이 한창이고픈, 봄 같은 청춘의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왕성한 의욕과 희망을 크게 만끽하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으리라. 그러나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의욕만 앞세우고 무작정 달려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그 다음은 털고 일어나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설령 넘어지지 않고 잘 달려왔다 할지라도 무엇을 위해 그토록 진땀을 흘렸을까. 질주를 마친 후 정말 통쾌하고 시원하게 가쁜 숨을 즐기면서 당당하게 고개를 높이 쳐들 수 있는지. 그저 '시간보내기'만 한 것은 아닐는지. 시바타 쇼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던 당시의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호흡을 고르고자 했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소설을 통해 내 부모 세대가 살았던 시대를 읽게 하고, 진정으로 제가 원하는 삶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청춘>은 아버지 어머니가 들려주는 잔잔한 목소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흑백영화 같다. 한 장면 장면이 빠짐없이 그대로 밑거름이 되고 넉넉한 햇빛이 되어 내일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힘줄기가 된다. 비단 젊은이들뿐만 아니다. 부모 세대에게도 곱씹을 수 있는 향수로 읽혀, 남아 있는 삶을 보다 활기차고 새롭게 다지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고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고 싶은, 촉촉이 가슴에 내리는 봄비 같은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