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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눈 7
먼 데서 오는 여자 57 열하일기 만보 127 화전가 241 1945 373 작품 해설 514 추천의 글 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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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이 사람아, 왜 여기 이러구 있어……. 집은 오래 비워 두면 안 되는 거야. 비워 줄 땐 비워 주더래두 돌아가야지, 그만 돌아와야지. 아이구, 이 착한 사람아, 자네 넋은 어디 두고 몸만 남았는가. 나는 집을 잃었구 자네는 집만 남았는가. 그래, 거기서라두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거들랑 자다 일어난 듯 돌아오게. 꿈에서 깬 듯이 돌아가게.
--- 「3월의 눈」중에서 남자 돌아왔구나! 여자 가긴 내가 어딜 갔었다구 그래. 남자 갔었지. 멀리 갔었지. 돌아와 줘서 고마워. 여자 멀리 간 건 당신이지. 난 늘 여기서 당신을 기다렸고. --- 「먼 데서 오는 여자」중에서 교충 꼭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 아시다시피 제가 잘하는 건 기억하는 일밖에 없잖아요? 전 이 마을의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데, 여길 떠나면 그게 죄다 아무 소용없게 되잖아요. 전 언젠간 그 기억들을 바탕으로 저만의 이념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래서……. --- 「열하일기 만보」중에서 독골할매 봄에, 삼짇날 지내고 딱 요만 때시더. 음석도 장만하고 술도 장만하고, 그륵도 싸들고 해가, 경개 존 데로 나가니더. 집안 어른들, 액씨들, 동기간에 시집간 액씨들꺼정 다 모이가 이삐게 단장허고. 꽃매이 채리입고 나가니더. 나가가 바람도 시컨 쎄고 꽃도 보고 꽃지지미도 부치가 농가 먹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꼬, 그래 일 년에 딱 하루 놀다 오는 게래요……. --- 「화전가」중에서 명숙, 립스틱을 꺼내 미즈코의 입술에 발라 준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에도 바른다. 명숙 어때? 미즈코 기레이요.(예뻐.) 명숙 너도 예뻐. --- 「1945」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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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기억의 형상
첫 번째 수록작인 「3월의 눈」의 배경은 재개발로 허물어지고 있는 고택이다. 노부부의 소소한 대화 속에 과거에 대한 회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곧 사라져 버릴 집 위로 눈이 내린다. 한 계절의 끝에 내리는 ‘3월의 눈’은 잊히고 사라지는 것을 다루는 이 작품집 전체에 대한 은유다. 「먼 데서 오는 여자」에서 여자는 점차 흐려지는 기억 속 여전히 떠오르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여자의 기억에는 동시대인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회적 참사가 생생하다. 집단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아픈 역사를 잊을 수 없는 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기억하기를 요구한다. 개인이 마주해야만 했던 역사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화전가」는 꽃이 가장 아름답게 핀 봄날 꽃놀이를 갔던 경북 지방 여성들의 전통을 다룬다. 화전놀이를 준비하는 가족들의 대화는 다정하고 유쾌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침묵은 한국전쟁을 목전에 둔 불안한 시기의 아득함을 상기시킨다. 「1945」는 종전 소식이 들려 온 1945년의 만주를 배경으로 조선을 향해 가는 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했던 명숙과 미즈코의 시선으로 1945년이 재현될 때,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의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에 새로운 형상이 새겨진다. ■ 대화의 예술 본래 공연을 위해 쓰인 희곡은 대사와 지시문으로 구성된다. 대사가 대화를 이루고, 간결한 지시문이 동작과 표정, 그리고 침묵을 표현한다. 배삼식의 희곡은 이 소박한 형식으로 가능한 가장 커다란 감동을 이끌어낸다. 어떤 말은 침묵 속에 오롯이 떠 있고 어떤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다성적인 목소리가 된다. 「열하일기 만보」는 이러한 대화의 예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 중 하나다. 정체불명의 짐승 ‘연암’이 한 마을에 가져온 혼란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관념적인 대화를 통해 그려진다. 인물들의 고유한 어투는 그들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화전가」의 생생한 안동 사투리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음악성을 띤다. 이처럼 작품 속 대사들은 고유한 리듬감으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단 한 문장의 울림이 되어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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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식의 작품은 분명 무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독서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경지에 매번 이른다. 희곡이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저 방언들과 입말들이 귓가를 여지없이 때리는데, 어떻게 그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겠는가. 뒷짐 지고 바라볼 수 있겠는가. - 박민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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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눈」을 좌표 삼아 다시 읽는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집단을 구분하기 위해 작동하는 이념이 아니라 집단으로부터 개인을 회복하기 위해 발견되는 이념을 읽는다. 한 사람을 위한 이념 위에서 완성된 과거가 해체되고 해체된 시간들이 다시 조립되는 과정을 거쳐 어디에도 없는 기억의 집, 나의 집이 완성된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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