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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문학과지성사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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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0
원경 /재의 골짜기 /로스트 볼 /새벽과 색깔들의 꿈 /밤식빵의 저녁 /빛멍 /시간의 세 가지 형태 /웨이터 /물칸 /자귀나무 그늘에 찔려 /시나몬에 대해서라면 /도형의 중심 /사라진 입술과 두 개의 이야기

1
삭흔 /슈가 포인트 /홀로그래피 /숲의 검은 뼈 /롬곡 /멀어지는 포도 /붉은 그네 /여행하는 열매 /매직아이 /사라지는 동화 /드림캐처 /살구 /머무는 물과 나무의 겨울 /회전 숲

00
종이를 만지는 사람 /당분간 달콤 /물에 비친 나무는 깨지기 쉽습니다 /인그로운 /목련 그믐 /하이람 /검은 사과 /약속을 내일로 미루어도 되겠습니까 /순간의 모서리 /디자이너 /로아 /겨울의 목차 /깊어지는 문 /눈빛이 액체라면

01
귀가 열리는 나무 /리플레이 /우리는 아마도 이런 산책을 /물의 비밀들 /생몰 /닫힌 문 너머에서 /난파선 위를 걷는 /겨울 가지처럼 /정글짐 /감염 /다족의 밤 /블랙 베이비 /타오르는 바퀴 /01

해설 생장기生長記-소유정

저자 소개 1

李慧美

1988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 에세이집(이하 공저) 『시인, 목소리』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 『당신의 사물들』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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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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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50.10MB ?
ISBN13
9788932039619

출판사 리뷰

발화되지 못한 말들이 내 안에 숲을 이루고
내면으로 파고드는 여행을 시도하는 화자

나는 당신이 내버렸던 과실, 창백하게 타들어가던 달의 씨앗, 단단한 씨앗에 갇혀 맴돌던

[……]

가지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 아마도 먼 나라에서 훔쳐 온 것 말라가는 뿌리를 휘저어 당신에게서 멀어질 거야 희고 외로운 열매를 맺겠지 오래전 함께 스쳐 지나갔던 풀숲에서

나는 거꾸로 자라는 식물, 더러운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낯선 구석이 될 거야 우주의 품에서 조금씩 삭아가는 이 작고 얼룩진 행성처럼

--- 「로스트 볼」 중에서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발화하지 못하고 “그저 말을 삼”킴으로써 내부에 쌓인 말들을 ‘씨앗’이라고 말하며, 이혜미의 직전 시집 『뜻밖의 바닐라』에는 그 씨앗들이 잠재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창백하게 타들어가던” 씨앗이었던 나는 이번 시집에서 “위독한 가지”(「겨울 가지처럼」)로 자라난다. “마음이 내쳐진 곳마다” 돋아나는 “날카로운 파편”처럼, “잎사귀의 무늬로 떠오르던 상처”(「시간의 세 가지 형태」)처럼 가지를 뻗고, “희고 외로운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시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내면에서 커가는 식물을 “거꾸로 자라는 식물” “거꾸로 서 있는 나무”(「머무는 물과 나무의 겨울」)라 칭한다. 이 뒤집힌 식물의 이미지는 수면 위에 비친 나무, 거울처럼 반사된 나무를 바라보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서 다시 한번 이혜미의 시에서 그간 서로에게 스며드는 액체, 혹은 화자의 세계를 대변하는 사물로서의 액체가 얼마나 중요한 소재였는지 떠올리게 된다. “안으로 흘러들어/기어이”(「겨울 가지처럼」) 고인 물이 내 안에 온몸 가득한 멍으로 남아 있다. 나무가 뿌리 내린 “더러운 물속”, 그 물에 비친 나무는 화자의 아픔, 이는 내면의 병증이 반사된 모습이자 시적 화자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나의 우주를 뒤집었을 때
말들이 쏟아지고 비로소 시작된 ‘나’의 이야기

심장을 보려 눈을 감았어. 부레의 안쪽이 피투성이 시선들로 차오를 때까지. 어항을 쓰고 눈물을 흘리면 롬곡, 뒤집힌 우주가 안으로 쏟아져 내렸어.

행성의 눈시울 아래로 투명하게 부푸는 물방울처럼, 빛을 질식하게 만드는 마음의 물주머니처럼. 흐르는 것이 흘리는 자를 헤매게 한다면 어떤 액체들은 숨은 길이 되어 낯선 지도를 그리겠지.

[……]

우주를 딛고 일어서는 힘으로
발끝이 둥, 떠올랐어

--- 「롬곡」 중에서

내면에 비친 나무를 계속해서 응시하던 화자는 이제 “자신 안의 망령을 찾아 떠나는 여행 속의 여행”(「홀로그래피」)을 끝내기로 한다. 내 안에 갇힌 채 울창한 숲을 이뤘지만 나의 밖으로 발화되지 못한 나뭇가지들을 밖으로 끌어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수면에 비친 나무를 깨뜨리는 방법은 꽤 간단하다. 작은 물결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물 위에 반사된 것들은 흩어지기 때문이다. 이혜미 시가 그간 중요하게 다뤄왔던 안팎을 뒤집는 행위가 바로 이 지점에서 수행된다. 화자는 과감하게 자신의 세계를 뒤집고 “뒤집힌 우주가” 흘러나오도록 한다. 이혜미의 시에서 이러한 전복이 그간 “타자와의 교감과 결합을 추구하는 시도”(오형엽)로 사용되었다면, 이번에는 ‘너’ 없이 ‘나’ 홀로 나의 세계를 뒤집어보는 행위로 나아간다.
그가 자리하고 있는 세계의 위아래를 바꾸고 안에만 머무르고 있던 말들, “고인 진창”이 나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고여 있던 물을 흐르게 하면 나는 눈물을 흘릴 만큼 아플 수도 있겠지만, 액체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낯선 지도를” 그릴 것이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내 안의 것들이 새어 나온다. 마지막으로, “몸의 가장 어두운 뒷면” 나의 “닫힌 눈꺼풀”(「닫힌 문 너머에서」)을 뜬다. 빛의 자격을 얻은 화자의 시선은 “아직 흘러나오지 못한 말들을 비출 것이다. 눈이 부실 만큼 반짝이는 말들을 시인은 더 이상 삼키지 않고, 감추지 않고 내보일 것이다”(소유정). 관계 속에서가 아닌 홀로의 모습으로 우주를 딛고 둥, 떠오를 시간이다.

시인의 말

0과 1 사이
혹은
영영과 영원 사이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은
다 그곳에 살고 있었다.

2021년 8월
옥탑에서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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