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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를 펴내며
수록 논문 및 자료 출처 제1부. 총론 新羅의 衰退에 대하여 - 이기동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나말여초 사회변동과 후삼국 - 이인재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역사문화학과 교수) 후삼국시대사론 - 이재범 (전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후삼국사의 몇 가지 문제 - 조인성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제2부. 신라의 쇠퇴 신라 하대 왕위계승전과 사병의 확대 -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신라 하대의 경제적 양극화와 재해 179 - 이기봉 (충남대학교 강사) 헌강왕의 유학 진흥책과 사상적 혼돈 209 - 배재훈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신라하대 말법(末法) 인식의 형성과 확산 - 박광연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국사학전공 조교수) 제3부. 후삼국의 성립 신라 효공왕대 전후 신라 정부와 성주·장군의 동향에 대한 고찰 - 전덕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후백제 주도 세력의 변화와 그 영향 - 진정환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弓裔의 出身에 대한 再論 361 - 송은일 (전남대학교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연구실장) 후삼국의 개막과 사상계의 동향 - 장일규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부록 태봉학회 소식 - 김영규 (태봉학회 사무국장, 철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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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를 펴내며
신라 말 고려 초는 일대 변동의 시기였다. 신라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인 고려가 섰다. 왕경인 그중에서도 진골 귀족 중심의 골품제 사회가 무너졌고, 지방 호족 출신들이 중심이 된 문벌귀족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동은 당의 쇠망과 5대 10국의 출현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신라에서는 중대 말부터 진골 귀족들의 권력다툼이 자주 발생하였다. 이는 하대에 들어서 더욱 격화되었다. 822년(헌덕왕 14) 김헌창은 새로운 국가의 수립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 여파는 전국에 미쳤다. 836년 흥덕왕이 죽은 후 2년 남짓한 동안에 한 명의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자와 두 명의 왕이 희생되었다. 진골 귀족들의 권력다툼으로 말미암아 중앙 정부의 지방통제력은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장보고와 같은 지방 군벌이 대두하여 왕위쟁탈전에서 깊이 관여하기도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의 정치 무대로 진출하려던 그의 도전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변방 군진의 지휘관, 낙향한 귀족, 촌주 출신의 호족들이 곳곳에서 대두하였다. 농민들의 몰락은 가속화되었다. 흉년이라도 들면 가난한 농민들 중에서 유망하는 자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이들 중에는 당이나 일본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또 무리를 지어 재물을 탈취하면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도 있었다. 정부에서 군대를 내어 이들을 토벌하여야 했던 예도 종종 있었다. 사상의 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당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선사들이 지방에 터전을 잡았다. 왕실에서는 선종 산문을 후원하였지만, 선사들은 점차 지방의 호족들과 결합하였다. 풍수지리설이 유행하면서 왕경이 아닌 지방의 새로운 명당이 부각되었다. 계속되는 사회 혼란으로 인해 당시를 말법시대로 여기는 말세의식도 널리 퍼졌다. 이런 가운데 889년(진성여왕 3) 조정의 조세 독촉에 항거하여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봉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다. 호족들은 무장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영역을 지켰다. 이들 가운데에는 신라에 대해 독립적인 태세를 취하는 예도 적지 않았다. 신라 말의 혼란을 배경으로 900년 견훤은 백제 의자왕의 원한을 갚겠다고 선언하고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이듬해인 901년 궁예는 고구려의 복수 내세우면서 후고구려를 세웠다. 이로써 신라와 후백제, 후고구려가 정립하게 되었다. 마치 삼국시대의 삼국을 연상시키는 형세가 되었거니와, 이들 세 나라를 후삼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태봉학회에서는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성립의 배경을 재정리해보려고 기획하였다. 그리하여 신라사학회와 공동으로 「신라의 쇠망-태봉 성립의 전야」(2019년 11월 8일), 「후삼국시대의 개막」(2020년 11월 20일)이라는 주제로 두 차례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들과 관련 논문들을 몇 편 더 모아 태봉학회 총서 제3권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