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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 5
Ⅰ. 칸트철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예비적인 물음들 / 13 2. 철학 공부의 두 가지 스타일 / 16 3. 칸트철학의 성격 / 19 4. 칸트철학 성립의 철학사적 배경 / 22 5. 칸트철학 연구에서 문헌학적 지식이 가지는 중요성 / 36 Ⅱ. 칸트철학의 전개 과정과 『순수이성비판』의 성립 1. 시기 구분의 문제 / 47 2. 여섯 단계 구분 / 50 Ⅲ. 『순수이성비판』의 이해 1. 『순수이성비판』은 어떤 성격의 철학서인가? / 84 2. 목차를 통한 접근 / 89 3. 초판 머리말 / 101 4. 재판의 서론 / 113 5. 선험적 감성론(공간론·시간론) / 143 6. 선험적 분석론 / 177 Ⅳ. 『도덕형이상학 정초』의 이해 1. 저서에 대하여 / 204 2. 머리말 / 212 3. 제1절: 도덕에 관한 평범한 이성 인식에서 철학적 이성 인식으로 이해 / 225 4. 제2절: 통속적 도덕철학에서 도덕형이상학으로 이행 / 246 5. 제3절: 도덕형이상학에서 순수실천이성비판으로 이행 / 276 Ⅴ. 『실천이성비판』의 이해 1. 저서에 대하여-『실천이성비판』의 성립 / 282 2. 머리말 / 286 3. 서론 / 309 4. 순수실천이성의 요소론(분석론) / 312 5. “순수실천이성의 원칙들의 연역” / 335 참고문헌 / 352 찾아보기 / 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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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선의지를 조금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이 없다면 그런 사람도 단순한 도구나 사물로 취급받지 말아야 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 칸트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논리적으로 잘못 사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을 비난하고 그에게서 모든 지성의 존재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자신의 주관적 판단 근거를 객관적인 것으로 오인한 부분을 지적하되,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진리적 요소가 그 안에 내포되어 있을 가능성을 찾으려 하고 또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그 자신에게 이해시킬 가능성도 사라지게 된다. … 이와 유비적인 관점이 누군가가 악한 행동을 했을 경우에도 적용된다. … 제아무리 악한이라도 무엇인가 선한 부분이 남아 있어서 자신이 악행을 범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고, 자신을 개선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성에 관한 총체적 오류도 불가능하지만 선의지에 관한 한 그 총체적 상실도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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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의 “DEF”가 암시하듯 철학에 문외한인 독자들을 위한 “ABC” 수준의 안내서라기보다는 대학 학부 과정에서 철학을 전공하거나 적어도 부전공 또는 복수전공으로 공부하는 독자들, 나아가 인문학적 소양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독자들이 직접 칸트의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칸트철학은 우리나라 일반 독자의 언어와 사고 세계가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서양철학 가운데에서도 자못 어려운 철학으로 손꼽힌다. 심지어 칸트 자신도 자신의 학문적 연구의 결과물이 “무미건조하고 난해하다”라는 점을 인정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칸트의 주요 저서들은 모든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대중적인 글이 아니다. 그는 이 같은 사정이 “문제 자체의 성질, 즉 순수한 사변이성의 본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추상적인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자신의 지적 재능을 다른 대상에 사용”할 것을 권했다. 지적·문화적 전통과 배경을 공유했던 동시대 지식인들을 겨냥한 이 같은 칸트 자신의 발언이 무색할 만큼 오늘날 ‘유튜브’를 위시한 다수의 국내외 인터넷 웹사이트에는 10분 아니 심지어 5분여만 투자하면 『순수이성비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마법’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사흘’을 ‘4일’로 이해할 정도로 빈약하다는 현대 독자의 문해력 또는 이해력 수준을 생각하면 선뜻 믿음이 안 간다. 그럼에도 오로지 소수만이 새로운 사상 세계의 “개요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신의 명민함”을 갖추고 있고 또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그 같은 시도에 “흥미”를 느낀다는 칸트 자신의 주장을 떠올려보면, 유튜브류의 시도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라 여겨지기도 한다. 흥미를 유발할 가능성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은 왕초보를 위한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가령 XYZ 수준의, 칸트철학을 전공한 극소수 독자들에게나 해독이 가능할 정도로 극강의 고난도 연구서는 아니다. 꼭 독일어로 된 칸트 원전이 아니더라도 비교적 충실한 우리말 번역서와 함께 번갈아 가며 읽을 정도의 성의를 지닌 독자라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 대부분 내용을 학부 강의와 세미나를 위해 준비하고 사용했던 수업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다. 학부는 물론이고 대학원 철학 수업에서도 제2외국어 교재가 사라진 지 오래여서 저자 역시 주로 영어 번역서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수업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철학적 내용에 관한 논의는 접어두고라도 독일어, 영어, 한국어 사이의 어휘나 문장 구조상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만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기 일쑤였다. 이처럼 고난에 가까운 칸트철학 이해의 길을 걸어갈 의지가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살가운 안내자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길벗의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 책은 칸트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주저이자 이른바 “제1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 그리고 그의 도덕철학의 대표 저작이자 서양 윤리학사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도덕형이상학 정초』, 마지막으로 “제2비판서”인 『실천이성비판』 등 칸트철학의 세 주요 저서들에 대한 주석 작업을 수행한다. 기존의 많은 칸트철학 관련 2차 문헌과 소개서들이 쉬운 칸트철학 입문서를 자처하지만, 독자의 기대만큼 친절한 설명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것들은 오히려 과감한 생략과 비약으로 칸트철학 전공자인 나 같은 독자마저 자주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다. 이 책은 이 같은 문제점을 최대한 해소하고자 주석의 범위를 칸트철학의 철학사적인 성립 배경, 첫 저서 『순수이성비판』의 문제의식의 형성 과정, 그리고 그 저서의 핵심 주제인 “범주의 선험적 연역” 부분에 한정하여 가급적 상세한 설명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저자가 고려한 사항은, 둘째 저서인 『도덕형이상학 정초』에 대한 설명서들이 거의 한결같이 이 저서의 1부와 2부의 설명에만 치중하고 있고 3부의 내용 분석과 해석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 저자는 칸트철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해석 견해가 분분한 3부의 내용을 칸트 자신이 사용한 용어나 표현들을 살펴 가며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셋째 저서인 『실천이성비판』의 경우는 둘째 저서, 즉 『도덕형이상학 정초』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어째서 칸트가 최초의 도덕철학 관련 저서인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던 “실천이성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게 되었는가를 해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였다. 마지막으로 저서별 칸트의 문제 의식을 중심으로 서술하느라 세 저서 전체 내용을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충하고자 세 저서에서 내용적으로 서로 연관되는 부분들을 그때그때 소환하여 그 연결 논리를 설명하였다. 예컨대 “III. 『순수이성비판』의 이해”에서 다루지 못한 『순수이성비판』의 “변증론”의 경우, 도덕철학과 관련되는 중요 내용에 대한 설명을 “IV. 『도덕형이상학 정초』의 이해”와 “V. 『실천이성비판』의 이해”의 해당 부분에서 보충했다. 적어도 이 책을 세 권의 칸트 저서들과 함께 공부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독자라면 칸트철학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칸트의 사유 과정을 따라가 보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분명한 점은 그 같은 번거로움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실존적 문제―예를 들어 다음 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와 같은―해결에는 거의 아무런 도움도 제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심각하게 곤두박질친 우리 시대의 문해력이나 사고력을 이대로 내버려 뒀을 때 과연 서너 세대 뒤의 우리 증손들이나 고손들이 가령 웹툰용 단문 이외의 문장을 접할 기회나 가질 수 있을지 불안하다. 평생 칸트나 헤겔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루소나 니체의 짤막한 문장조차 그 뜻을 도통 간취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 주변엔 남이 만들어 놓은 알고리듬에 아무 생각 없이 조종당하고 있는 플랫폼 이용자들이 얼마나 널려있는가 말이다. 칸트의 이른바 “선험철학”은 인간의 추상적 사고가 어느 수준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서양철학의 금자탑이다. 칸트 이후에는 “심지어 정육점 사환 아이라도 세상을 그 이전과는 다르게 보게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지식이론이나 도덕철학, 또는 사회철학이나 법철학의 사고 방식은 18세기 이후 서양은 물론 다른 문화권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글이 수능 고사는 말할 것도 없고 LEET나 PSAT 같은 각종 고급 인력 선발 시험의 단골 출제 지문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칸트의 철학적 메시지에 찬동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논리와 대결해 보는 수고를 지급하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사고 근육을 장히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안 쓰던 몸 근육을 갑자기 사용하면 오히려 건강에 독이 될 수도 있듯, 어느 날 느닷없이 『순수이성비판』에 도전하는 일반 독자는 나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좌절하게 될 확률이 높다. 두통은 덤이리라. 그러니 먼저 빌헬름 바이셰델의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자유. 칸트와 함께 인간을 읽는다』, 노르베르트 힌스케의 『현대에 도전하는 칸트』 같은, “ABC”쯤의 칸트철학 입문서를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그마저도 머리에 쥐가 날 뿐이라면? 굳이 이 책을 읽는 도로(徒勞)를 절약하는 게 낫다고 본다. 원래 이 저서는 2018년 연구년의 주제로 착수했으나 이런저런 저간의 사정으로 진행이 더디고 미진하던 터에 국내 연구문화의 무분별한(!) 압박 강도가 날로 드세어져 그 핑계로 서둘러 마무리하였다. 기회가 되면 후속 작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고 다른 칸트 저작들에 대한 주석도 시도해 보고 싶다. 저자가 서양철학과 칸트철학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40년 이상 외길로 공부하고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여러 은사님이 베풀어주신 지도와 격려 덕분이다.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던 여러 선생님, 특히 필자의 지도교수셨던 이영호 선생님 그리고 독일 트리어 대학의 노르베르트 힌스케(Norbert Hinske) 선생님께 가슴 깊이 감사한다. 필자의 글들을 비판하고 흔쾌히 학문적으로 소통해주신 한국칸트학회 여러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