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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 방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중국 문화사
저자 서문 | 현대 일반인을 위한 중국 역사 문화 발전사 제1부 고대 이전: 중국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 ‘중국’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훨씬 전에 인류는 중국 땅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구석기시대부터 날짐승 들짐승을 잡아 털도 뽑지 않고 피도 씻지 않고 그대로 먹었으며, 그 뒤 점차 곡식을 심거나 목축을 하며 양식을 생산했습니다. 양식을 생산하게 되자 촌락을 이루며 살게 되었고, 그때부터 곳곳에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촌락은 서로 분가하거나 통합되면서 차츰 몇 개의 중요한 문화권을 이루었고, 이 문화권이 마침내 훗날 중국 문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1. 중국 문화를 잉태한 자연지리 2. 구석기시대의 인류 활동 3. 농업과 취락 4. 신석기 문화의 지역별 유형 및 융합과정 5. 고대 전설과 민족 집단의 이합집산 6. 복잡사회의 출현 7. 중국 고대 문화와 메소포타미아 고대 문화의 비교 제2부 중국 문화의 여명 | 기원전 16세기~기원전 3세기 중국 문화가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상商 왕조로부터 시작하여 주周 왕조에 이르자 중국의 문명체계는 점차 그 모습을 뚜렷이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중국 문명의 사상체계, 즉 북방의 유가儒家와 양자강 유역의 도가道家, 이 두 사상은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아 중국식 사상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의의 및 궁극적인 관심사와 관련된 허다한 관념이 이로써 명확하게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1. 청동기시대 진입 2. 고대 문화의 핵심이 된 상商 문화 3. 화하華夏 문명체계: 서주西周 봉건 및 ‘삼대三代’ 관념 4. 중국적 질서의 발전과 재편: 지방 문화 및 융합 5. 중국 사상체계의 핵심 형성: 공자 학설과 제자백가의 변증법적 발전 6. 남방의 급부상: 양자강 유역의 발전 및 중원과의 융합 7. 편호제민: 국가 조직과 평민 생활 8. 생활자원과 생활방식 9. 중국 고대 문화의 특색 제3부 중국의 중국 | 기원전 3세기~서기 2세기 중국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원中原 지역의 중국에서 사방으로 계속 확장하여 중국의 중국이 되었습니다. 진한秦漢 제국은 ‘천하국가天下國家’체제를 건립했고, 집약 농업과 시장 네트워크 그리고 문관제도文官制度도 중국 문명의 특색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제국의 안정성으로 말미암아 중국은 북방 유목민족과 계속 충돌하고 대항하면서도 붕괴되지 않고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 시기에 새로 들어온 불교는 유가 및 도가 사상에 도전했으나 결국 중국 문명으로 융합되었습니다. 1. 세계국가의 체제 2. 집약농업과 시장 네트워크 3. 중국 문화체계의 재통합 4. 민간신앙 5. 북방 유목 문화와 중국 문화의 접촉 6. 남방 개척 7. 불교의 전래와 도교의 성립 8. 진한시대 중국인의 일상생활 9. 진한 제국과 로마 제국의 비교 제4부 동아시아의 중국 | 서기 2세기~10세기 황하와 양자강이 쉬지 않고 도도히 흐르듯 중국도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 동아시아의 중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사방에 포진해 있던 이웃 민족들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또한 외국 문화가 영향을 끼치면서 고대 중국의 모습도 변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중국 문화의 내용은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워졌습니다. 일련의 변동으로 말미암아 중국인의 의식주행에도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는데, 이런 모습은 후세 중국인의 생활양식에 기초가 되었습니다. 1. 진한 제국의 붕괴 2. 중국과 이웃 민족 3. 불교의 영향 4. 문학과 예술 5. 천문·수학·의약 6. 중고시대의 의식주행 7. 경제형태의 변화 8. 민족 관계 9. 중국의 대외 관계 10. 당나라 제국과 이슬람 제국의 비교 후주 |
許倬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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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전설 중에 비교적 중요한 내용으로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한 반고盤古, 인간을 만들고 구멍 난 하늘을 메운 여와女?, 가옥을 만든 유소씨有巢氏, 각종 제도를 만든 황제黃帝, 전설적인 태평성대를 일군 오제五帝 그리고 경이로운 선양禪讓을 행한 요堯왕 순舜왕 우禹왕 등등입니다. 이러한 전설은 그 출처를 추적하면 기원이 서로 다른 각 문화권의 이야기가 점차 통합되면서 공통의 전설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이런 점은 집단기억을 구축할 때 어느 민족에게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 p.78 주 민족은 마침내 “천명은 유동적이니, 오로지 덕정의 편”이라는 이론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주 민족은 상 왕조의 멸망 원인이 덕정을 펼치지 않은 데 있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그 죄목은 폭음, 음란, 가혹한 노동력 착취, 범죄자 은닉 등등으로 요약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목이 사실이었을까요? 그 당시 최강대국이 이런 죄목으로 인하여 자멸했을까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주 민족이 제시했던 이른바 ‘천명天命’ 관념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주 민족의 ‘천명’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통치자는 일정한 도덕적 기준에 부합되어야 함. 둘째, 초월적인 힘, 즉 하늘은 인간 세상을 감독하고 재판할 권력이 있음. 이것은 중국 역사상 초유의 관념입니다. 정권의 합법성은 도덕적인 가치판단에 근거하는데 그 재판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조상신이나 민족신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보편적인 의미를 갖춘 초월적인 힘을 인정한 것입니다! --- pp.126-127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위와 같은 초월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자가 나타날 때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이를 문명의 대돌파로 규정하고 그 시점을 일컬어 기축시대라고 명명했습니다. …… 야스퍼스의 견해에 따른다면 중국 지역의 문화적 대돌파는 상주商周 교체 시기에 나타난 천명과 도덕관념, 그리고 『주역』에 드러난 동적인 이원론 관념이 기초가 되어 공자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토론했던 허다한 철학적 명제로 인해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문자 시스템 내에서 중국의 현인들이 서로 공박을 거듭하며 사고했던 것이 문화적 대돌파를 야기한 것입니다. --- p.186-187 진한 제국이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의 전국시대부터 중국은 이미 통일을 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양혜왕이 던졌던 질문 “천하는 어떻게 결정되겠소?”에 대하여 맹자가 “통일로 결정된다”고 단언했던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진나라가 동방 여섯 제후국을 멸한 것은 그러한 과정의 종점일 따름입니다. 한나라가 그 뒤를 이었지만 이것도 역시 그러한 과정을 완성하면서 더욱 충실히 했을 따름입니다. 한편 로마가 지중해를 통일한 것도 각지에 가득하게 퍼진 그리스 문화를 계승한 것으로, 로마 역시 이미 발동이 걸린 역사의 발전과정을 밟았을 따름입니다. 문화적 통일이 정치적 통일보다 앞섰다는 점도 두 제국의 공통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동서 양대 제국이 통일의 대업을 이룬 과정도 비슷한데, 즉 변방에 있던 집단이 우세한 무력으로 정벌을 통해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도 역시 공통점입니다. --- p.268 당 제국은 남북조에 이어 중국 문화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북방 이민족과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문화도 충분히 흡수했고 아울러 그중에서 정수를 골라 취했습니다. 당 제국의 문화적 성과도 찬란합니다. 당 제국의 사회는 개방적이어서 외국의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할 공간이 많았습니다. 장군 고선지는 고려인이었고, 재상 강공보姜公輔는 월남인이었으며, 조정에서 근무했던 조형晁衡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아바스 왕조가 각 민족의 인재를 등용했던 것과 극히 유사한데, 방법이나 과정은 다를지언정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양대 제국은 모두 강력한 에너지, 활발한 창의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방적인 마음으로 외국 문화의 정수를 흡수했으므로 광활한 영토의 이질적인 성분들을 통합하고 다양한 지역의 민족 문화를 통섭하여 마침내 중고시대의 세계적인 질서를 건설했던 것입니다. --- pp.395-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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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석기시대부터 1950년 전후까지 서술하였다. 구석기시대부터 자신감 넘치게 서술한 것은 그가 중국 상고사에 깊은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 장마다 중국 문화의 발전과정상 특징을 다른 문화권과 비교 분석한 것도 물론 기본적인 의도는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뜻이지만 서양의 문화와 역사에 해박하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작업이다. 또한 각 시대별 시장경제 시스템을 손바닥 눈금 보듯 해설했다거나 민간의 의식 변화 및 사회 구조의 변천을 쉽게 풀어내는 것은 그가 경제학 및 사회학에도 정통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집필을 마치고, 그로부터 약 3년 뒤 2009년 자선집自選集을 펴내며 저자는 이렇게 술회했다. “제가 전공으로 삼아 공부한 분야는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거시사회학이며, 수십 년 동안 제가 연구했던 분야는 거의 대부분 (중국) 문화와 사회의 변화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 문화사: 인류의 탄생~1949』는 필생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을 위해 집필한 중국 역사문화 변천사 “오늘날 역사책을 읽는 독자들은 옛사람들과는 처한 상황이 다릅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인 현대는 사람들이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또한 바쁘게 살다보니 경황이 없어서 그렇지 누구나 역사에 대해 다소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현재의 나는 어디서 왔으며 현재의 생활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했습니다.” 중국 중심주의 혹은 중화주의에 대한 비판 “중국 문화에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경향, 말하자면 중국 중심주의라든가 중화주의라 하여 주변 이민족을 깔보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근대 중국 역사학도 이런 조류로부터 물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이 서술하는 중국 역사는 다양한 외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이룩한 복잡다단한 중국 문화로서 기존의 중국 중심주의적 논술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문화권 상호간의 교류를 중점적으로 서술 “이 책은 자아 중심주의가 야기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문화권 상호간의 교류에 역점을 두고 서술했습니다. 따라서 중국 문화가 다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서술했을 뿐 아니라 중국 문화의 발전과정에서 다른 문화로부터 받은 영향도 서술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중국과 외국의 문화 교류에 대하여 각 장마다 특별히 지면을 할애하여 비교적 자세히 서술했던 것입니다.” 대만에 관한 서술도 중요하게 할애 “대만은 두 차례나 국가가 바뀌었지만 그 모두가 대만 백성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양안 관계가 소원해지고, 그와 동시에 대만 내부의 사회 문화 집단간의 모순이 격화된 것도 실은 그 근원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양안의 백성들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의 50년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으며 또한 희망사항도 피차간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228사건의 근본적인 배경입니다.” 허탁운 교수의 “나는 왜 이 책을 집필했는가?” -사회 및 경제 연구로부터 문화사 연구로 제가 일생 동안 연구했던 것을 회고하면 사회 및 경제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문화사 연구로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저를 만나기만 하면 이런저런 문제는 어떤 책에 나오느냐 물어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제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주인장께서 물어보시더군요. “중국 요리를 할 때 이런저런 요리법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합니다. “아, 중국사 책에 그런 내용이 정말 안 나옵니까?” -일반 사람들은 일반적인 문제가 궁금하다 이와 같은 사소한 문제는 우리의 일상생활, 말하자면 의식주나 습관 혹은 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인데 역사책은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사소한 문제를 언급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필기 형식으로 이 책에 조금 저 책에 조금 적혀 있어서 일반인은 발견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들의 하소연인즉 좋아 보이는 역사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너무 거창한 문제들만 다루고 있고 또한 원전을 마구 인용하여 일반 사람들은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일반 사람들이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알고 싶어 한다면, 역사를 연구하는 우리들은 뭔가 대답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중국 중심주의, 중원 중심주의 그런데 ‘중국 중심주의’보다 더욱 흔한 생각은 ‘중원 중심주의’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주변으로 사방에 ‘만이융적蠻夷戎狄’이라 하여 오랑캐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명칭을 붙인 것은 주변 민족을 무시하는 발상입니다. 위 넉 자는 본디 그들의 생활 형태를 묘사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인들만 특별히 잘났고 그 주변 민족들은 모두 미개한 오랑캐라고 간주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만이나 자아 중심주의적인 생각은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중화 제국’의 관념이나 ‘중국 지상주의’의 관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기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사회인데 그런 생각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제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도 우리 동포들에게 중국이 이토록 넓은 영토를 가지게 된 것은 오랜 옛날부터 점차 넓어진 것이며, 그 당시의 오랑캐가 살던 곳은 오늘날 중국의 중심부가 되었고, 그 당시의 적은 오늘날 중국의 이웃이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오늘의 적도 장래에는 좋은 이웃이 되리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11월 9일 ‘동남대학교 화영문화 시리즈 강좌’에서 행한 허탁운 교수의 강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