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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사 하
인류의 탄생~1949 양장
천지인 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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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동양문화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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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5부 동아시아 다원적 체계의 중국 | 10세기~15세기
중국 문명은 동아시아 밖으로 한 걸음 더 내딛었습니다. 기타 문명의 도전에 직면할 때 가장 흔히 상연되는 프로그램은 충돌과 융합입니다. 수많은 외래 민족이 강역을 확장했는데 특히 몽골족의 서역 정벌로 확장된 광활한 공간은 동아시아의 중국과 서양이 서로 교류하고 융합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의 경제 네트워크는 확장되었고, 중국 스타일의 사상 체계도 더욱 견고하게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이 시기의 변화로 중국과 동아시아는 거의 분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 중고中古 후반기 중국과 열국체제
2. 정복왕조와 한족 세계
3. 동아시아 경제권의 형성
4. 경제와 다원적인 네트워크
5. 송나라 이후의 지식층
6. 사상의 다원화와 통합 조정
7. 근고시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
8. 근고시대 중국인의 일상생활
9. 근고시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변화

제6부 세계체계 속의 중국·상 | 15세기~17세기
중국은 세계 질서로 완전히 진입했습니다. 해양이 열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육상 교역로가 활기를 띠면서 중국은 세계경제 질서로 편입된 것입니다. 무역 흑자로 인해 중국 경제는 30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며 근대 이전까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도약했습니다! 외부의 자극으로 중국의 지식계도 중국 문화의 본질에 대해 새롭게 사색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역사상 유럽의 계몽주의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로운 사색은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1. 명나라 시기 중국 문화체계의 경직화
2. 인구와 생활자원
3. 해양의 격랑
4. 서양의 제1차 충격파
5. 명나라 공업
6. 명나라 시장경제
7. 남북 경제 및 사회의 차이
8. 명나라 사상의 변화
9. 명나라 중국과 합스부르크 왕조의 에스파냐
10. 대만의 역사 무대

제7부 세계체계 속의 중국·하 | 17세기~19세기 중반
세계체계로 진입한 중국은 쾌속 질주하던 서양에 비해 발전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중고시대 이후 형성된 자급자족형 문화체계는 정체되어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이 중국 문화를 점검하며 새롭게 사색한 적도 있지만 그런 작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는 중국의 전통 문화와 전통 정치제도가 작동한 최후의 세월이었습니다.

1. 만주족 청나라의 성격
2. 대만 개발
3. 청나라 초기의 민족과 문화 충돌
4. 청나라 학풍
5. 민간 사회조직
6. 중국과 서방 국가의 관계
7. 청나라 상업 활동
8. 중국과 서양의 문화 접촉
9. 통속 문화
10. 그 당시 유럽

제8부 백년의 휘청걸음 | 19세기 중반~20세기 중반
서양의 공업혁명과 자본주의 제국의 확장은 전 세계 운명을 주재했습니다. 그 압박에 중국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100여 년간 중국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자 내부적인 검토와 반성을 시작했고 외국을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급기야 중국 문명은 찢겨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중국은 스스로를 추스르고 다시금 새로운 세계로 발길을 옮겼는데, 그래도 20세기 전반부 근 50년의 고난을 겪은 다음에야 비로소 부흥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1. 내우외환
2. 중국 근대경제의 변화
3. 교육제도의 변화
4. 중국의 군사화 현상
5. 대도시 문화의 발흥
6. 시대사상과 문화 변천
7. 중국 근대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비교
8. 중국 유신운동과 일본 메이지유신의 비교
9. 대만 백년의 변화

맺는 말 | 만고강하萬古江河-바다로 흘러가는 양자강과 황하
옮긴이 후기 | 중국 문화사-문화권 상호간의 존중과 포용

후주

저자 소개 2

허탁운

 

許倬雲

허탁운의 원적은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으로, 1930년 중국 복건성福建省 하문廈門 고랑서鼓浪嶼에서 태어났다. 손발이 불편하여 어린 시절 정규 교육을 걸렀으나 중고등학교는 원적지로 돌아가 무석의 보인輔仁 학교를 다녔다. 이 시절, 동향 선배이자 대학자 전목錢穆의 명저 『국사대강國史大綱』을 탐독하며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1948년 가족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하여 1950년부터 1956년까지 대만대학 사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이어서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로 들어가 보조연구원이 되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62년 시카고 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그해 대만으로 돌아
허탁운의 원적은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으로, 1930년 중국 복건성福建省 하문廈門 고랑서鼓浪嶼에서 태어났다. 손발이 불편하여 어린 시절 정규 교육을 걸렀으나 중고등학교는 원적지로 돌아가 무석의 보인輔仁 학교를 다녔다. 이 시절, 동향 선배이자 대학자 전목錢穆의 명저 『국사대강國史大綱』을 탐독하며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1948년 가족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하여 1950년부터 1956년까지 대만대학 사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이어서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로 들어가 보조연구원이 되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62년 시카고 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그해 대만으로 돌아와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 부연구원(1962~1967), 연구원(1967~1970)으로 근무하며 동시에 대만대학 사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강의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와 첨예하게 대치하던 대만 국민당 정부는 정권 유지 차원에서 대만 내 민주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 여파로 학술계에서는 중국 대륙의 북경대학 및 청화대학의 잔여 세력이 몰려 있던 중앙연구원과 대만대학 교수 및 졸업생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대만 국민당 정권의 비민주적 처사에 불만을 품었던 허탁운은 1970년 마침 미국 대학의 초빙이 있자 도미하여 피츠버그 대학 역사학과 및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1983년 피츠버그 대학 석좌교수가 되었다.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1980년 중앙연구원 원사로도 선정되었다. 1989년부터 1995년 사이 홍콩 중문대학 사학과 석좌교수로 강의했으며, 그 이후로는 미국 하와이 대학 및 듀크 대학, 홍콩 과학기술대학 석좌교수로 강의했다.

허탁운은 중국 문화사 및 사회사 그리고 중국 상고사 분야에 조예가 깊은데, 특히 사회학 이론으로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 탁월하다. 그간 영문 학술서 3권, 중국어 학술서 30여 권을 저술했으며 중국어 및 영어로 발표한 학술논문은 100편이 넘는다. 그의 학문적 관심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 문화’이다. 『중국고대사회사론中國古代社會史論』과 『서주사西周史』를 통해 중국 문화의 형성과 변천을 연구하며 그 전개과정 및 특징을 탐구했고, 또한 『한대농업漢代農業』을 통해 중국 문화의 경제적 기반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중국 문화의 삼원색을 추출했는데, 그것은 ‘혈연단체’, ‘집약농업’, ‘문관제도’였다. 이 삼원색을 혈맥으로 삼고, 문화권의 확장 개념을 골격으로 삼아, 중국 문화의 전개와 변천을 거시적으로 조감하여 집필한 저서가 바로 『중국 문화사-인류의탄생~1949(萬古江河)』이다. 따라서 이 책은 허탁운의 평생 연구의 집대성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5년째 『사기』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중국학자이다. 한양대학교에서 중국학과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과 중국의 고전 관련 저서들을 다수 출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195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시절 은사인 이동향 선생의 추천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궁형을 당하고도 묵묵히 참으며 『사기』를 완성했던 사마천을 존경하여 사마천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고, 졸업 후 대만으로 건너가 국립대만대학에서 양영무 교수 지도하에 「사마천의 유도법 사상 연구(司馬遷之儒道法思想硏究)」로 석사 학위(1986년)를, 국립대만사범대학에서 이선 교수의
25년째 『사기』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중국학자이다. 한양대학교에서 중국학과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과 중국의 고전 관련 저서들을 다수 출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195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시절 은사인 이동향 선생의 추천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궁형을 당하고도 묵묵히 참으며 『사기』를 완성했던 사마천을 존경하여 사마천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고, 졸업 후 대만으로 건너가 국립대만대학에서 양영무 교수 지도하에 「사마천의 유도법 사상 연구(司馬遷之儒道法思想硏究)」로 석사 학위(1986년)를, 국립대만사범대학에서 이선 교수의 지도하에 「사기의 문학 가치와 문장 신탐(史記文學價値與文章新探)」으로 박사 학위(1991년)를 받았다.

그는 “나보다 잘 하면 누구라도 내 스승, 뜻이 맞으면 누구라도 내 선배, 후배, 친구!”라는 교육관을 가지고 배우며 가르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교육관을 바탕으로 1994년부터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서 중국언어문화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기』 관련 논문을 왕성하게 발표하고 있으며 다양한 저서들로 결실을 맺고 있다. 저서로는 『인터넷 플러스 중국』(중국학센터, 공저, 2000), 『나는 중국어도 인터넷으로 배운다』(중앙M&B, 2002), 『논어30구』, 『장자30구』(아이필드, 2003), 『사기 본기』(사회평론, 2004), 『e시대의 사기』(살림, 2005), 『사기 이야기』(천지인, 2007) 『中國, 이것이 중국이다』, 『사기-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 『사기 열전 上』『중국 문화사 상,하』 등의 저서와 논문 4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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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00쪽 | 816g | 150*220*30mm
ISBN13
9788993753257

책 속으로

송나라 사람들은 중국 본부에서 전통적인 정치문화와 세계적인 제국 당나라를 계승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었습니다. 당나라 제국은 한족과 이민족을 구분하려는 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송나라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대단히 진지했습니다. 그런데 민족주의는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장부를 끼우는 것처럼 세계적인 제국의 이념과는 도무지 맞지 않았습니다!
--- pp.22-23

송나라 도시는 거리를 조성할 때 선형으로 점포를 배치했습니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묘사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의 기록을 봐도 길을 따라 점포가 배치되어 있고 다양한 업종이 섞여 있으며 그 앞으로 행인들이 왁자지껄 왕래하는 모습입니다. 공상업 활동 이외에도 도시에는 다양한 오락 및 휴식 활동이 있었는데, 빈터에서 쇼를 한다거나 공연장에서 잡극이나 잡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목도했던 원나라 때 중국 도시의 번화한 모습은 중국 문헌의 기록과도 대략 일치합니다. 송나라 때 중국 본토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요나라, 금나라, 서하, 대리국의 대도시 모습도 비슷했습니다. …… 송나라?원나라 시절의 도시화는 사실상 중국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 pp.54-55

명나라 중반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다소 변했습니다. 강남 지역의 사대부들은 여력이 있을 때마다 상업활동에 투자했던 것입니다. 어느 사대부 가정에 형제가 여럿 있으면 관직으로 진출하는 아들도 있고 사업을 하는 아들도 있고 또한 농사를 짓는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의 재산 및 사회관계는 세 개 직업 사이에서 돌고 돌면서 융통이 되었고 또한 유가의 이념도 상업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여영시余英時가 일찍이 주장했지만, 상인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창업수통創業垂統(창업하여 기업基業을 후세에 전함)’의 사명감을 갖는데 이런 사명감은 사실상 유생들이 국가를 경영하고 민생을 책임지겠다는 관념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여영시는 상인들의 이런 관념을 일컬어 ‘사혼상재士魂商才(선비의 마음으로 상업에 종사함)’의 정신이라 명명했습니다. 막스 베버는 서양 자본주의 현상을 논할 때 기독교 신교 칼뱅파의 직업윤리가 실은 자본주의 활동의 원동력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원동력은 근검절약과 같은 덕목에 있는 게 아니라 이들이 자부하는 사명감에 있다고 했습니다. 명나라 때 상인들의 활동은 파란만장했으므로 여영시가 지적했던 바 상인들의 자각의식은 기독교 신교윤리와 함께 논할 수 있을 듯합니다.
--- p.180

강희, 옹정, 건륭, 가경 네 황제 집정 시절은 청나라 전성기였습니다. 경제가 번영했고 인구가 증가하여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 속에서 즐겁게 일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일락에 탐닉하여 천자의 나라에 살고 있다고 자만하며 외부 사정에 무심했습니다. 그 당시 중국인들은 세계 저편에 있는 서양 오랑캐들이 격변을 겪으며 쾌속 성장하여 어느 날 중국을 압도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중국인들은 명나라 중국인들이 축적한 외국 지식으로부터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 p.341

19세기와 20세기 중국의 교육 문제를 연구했던 학자들은 이 문제에 주목한 적이 있는데, 중국은 이미 내지와 연해, 농촌과 도시라고 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로 단절되었다는 것입니다. 내지 농촌의 중국은 근대 학교 교육을 받은 자제들을 이미 잃어버렸습니다. 20세기 전반기 중국 학교의 분포 상황은 대략 향진鄕鎭에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현성縣城에는 중학교가 있었고, 성도省都에는 고등학교?전문학교?사범학교 및 대학교까지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대도시에는 대학교가 있었습니다. 북경, 천진, 상해, 남경에는 가장 좋은 대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졸업생은 더 이상 고향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고, ……외국 유학생은 몇몇 대도시에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통적인 과거제도를 회고해보면, 관직에 진출했던 관리라 하더라도 퇴직한 후에는 본적지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대부분 고향집으로 귀향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인재라 하더라도 과거에는 여전히 고향에 귀속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 연해와 내지, 도시와 농촌이 단절된 상황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연해 및 도시에서 활동하는데, 이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내지 농촌의 인재가 유실되어 내지 농촌은 인재 부재에 허덕이게 되는 점입니다. 이것은 마치 비옥한 토양이 유실되어 척박한 황무지가 되는 것과 같으므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 pp.376-379

대만은 두 차례나 국가가 바뀌었지만 그 모두가 대만 백성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양안 관계가 소원해지고, 그와 동시에 대만 내부의 사회 문화 집단 간의 모순이 격화된 것도 실은 그 근원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양안의 백성들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의 50년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으며 또한 희망 사항도 피차간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228사건의 근본적인 배경입니다. 어떻게 오해를 풀고 상처를 아물게 할 것인지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역사는 화해의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아니면 충돌과 공멸의 방향으로 질주할까요? 관건은 각계각층 인사들의 지혜에 달렸습니다.

--- pp.445-446

출판사 리뷰

이 책은 구석기시대부터 1950년 전후까지 서술하였다. 구석기시대부터 자신감 넘치게 서술한 것은 그가 중국 상고사에 깊은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 장마다 중국 문화의 발전과정상 특징을 다른 문화권과 비교 분석한 것도 물론 기본적인 의도는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뜻이지만 서양의 문화와 역사에 해박하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작업이다. 또한 각 시대별 시장경제 시스템을 손바닥 눈금 보듯 해설했다거나 민간의 의식 변화 및 사회 구조의 변천을 쉽게 풀어내는 것은 그가 경제학 및 사회학에도 정통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집필을 마치고, 그로부터 약 3년 뒤 2009년 자선집自選集을 펴내며 저자는 이렇게 술회했다. “제가 전공으로 삼아 공부한 분야는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거시사회학이며, 수십 년 동안 제가 연구했던 분야는 거의 대부분 (중국) 문화와 사회의 변화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 문화사: 인류의 탄생~1949』는 필생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을 위해 집필한 중국 역사문화 변천사
“오늘날 역사책을 읽는 독자들은 옛사람들과는 처한 상황이 다릅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인 현대는 사람들이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또한 바쁘게 살다보니 경황이 없어서 그렇지 누구나 역사에 대해 다소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현재의 나는 어디서 왔으며 현재의 생활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했습니다.”

중국 중심주의 혹은 중화주의에 대한 비판
“중국 문화에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경향, 말하자면 중국 중심주의라든가 중화주의라 하여 주변 이민족을 깔보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근대 중국 역사학도 이런 조류로부터 물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이 서술하는 중국 역사는 다양한 외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이룩한 복잡다단한 중국 문화로서 기존의 중국 중심주의적 논술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문화권 상호간의 교류를 중점적으로 서술
“이 책은 자아 중심주의가 야기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문화권 상호간의 교류에 역점을 두고 서술했습니다. 따라서 중국 문화가 다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서술했을 뿐 아니라 중국 문화의 발전과정에서 다른 문화로부터 받은 영향도 서술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중국과 외국의 문화 교류에 대하여 각 장마다 특별히 지면을 할애하여 비교적 자세히 서술했던 것입니다.”

대만에 관한 서술도 중요하게 할애
“대만은 두 차례나 국가가 바뀌었지만 그 모두가 대만 백성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양안 관계가 소원해지고, 그와 동시에 대만 내부의 사회 문화 집단간의 모순이 격화된 것도 실은 그 근원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양안의 백성들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의 50년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으며 또한 희망사항도 피차간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228사건의 근본적인 배경입니다.”

허탁운 교수의 “나는 왜 이 책을 집필했는가?”
-사회 및 경제 연구로부터 문화사 연구로

제가 일생 동안 연구했던 것을 회고하면 사회 및 경제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문화사 연구로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저를 만나기만 하면 이런저런 문제는 어떤 책에 나오느냐 물어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제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주인장께서 물어보시더군요. “중국 요리를 할 때 이런저런 요리법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합니다. “아, 중국사 책에 그런 내용이 정말 안 나옵니까?”

-일반 사람들은 일반적인 문제가 궁금하다
이와 같은 사소한 문제는 우리의 일상생활, 말하자면 의식주나 습관 혹은 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인데 역사책은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사소한 문제를 언급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필기 형식으로 이 책에 조금 저 책에 조금 적혀 있어서 일반인은 발견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들의 하소연인즉 좋아 보이는 역사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너무 거창한 문제들만 다루고 있고 또한 원전을 마구 인용하여 일반 사람들은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일반 사람들이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알고 싶어 한다면, 역사를 연구하는 우리들은 뭔가 대답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중국 중심주의, 중원 중심주의
그런데 ‘중국 중심주의’보다 더욱 흔한 생각은 ‘중원 중심주의’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주변으로 사방에 ‘만이융적蠻夷戎狄’이라 하여 오랑캐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명칭을 붙인 것은 주변 민족을 무시하는 발상입니다. 위 넉 자는 본디 그들의 생활 형태를 묘사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인들만 특별히 잘났고 그 주변 민족들은 모두 미개한 오랑캐라고 간주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만이나 자아 중심주의적인 생각은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중화 제국’의 관념이나 ‘중국 지상주의’의 관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기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사회인데 그런 생각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제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도 우리 동포들에게 중국이 이토록 넓은 영토를 가지게 된 것은 오랜 옛날부터 점차 넓어진 것이며, 그 당시의 오랑캐가 살던 곳은 오늘날 중국의 중심부가 되었고, 그 당시의 적은 오늘날 중국의 이웃이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오늘의 적도 장래에는 좋은 이웃이 되리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11월 9일 ‘동남대학교 화영문화 시리즈 강좌’에서 행한 허탁운 교수의 강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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