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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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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에 있던 술은 쌀로 빚은 독이 되어버렸지. 마을에 있던 선임들은 잔치와 술로 인해 총질도 못 해보고 다 죽은 거야. 아버지는 뒤돌아서 총을 갈기다가 숨기를 반복하였고, 어느새 주위가 조용해져서 다시 몸을 웅크려 숨었대. 숨죽이고 조용하게 웅크려 있는 순간 주변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 방언이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했지.
--- p.34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단지 죽음만 놓고 보았을 때 매일 정말 많은 사람이 죽어요. 그걸 또 시간 단위로 쪼개보고 초 단위까지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이유로 죽어요.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더라고요. 우리 삶이 참 위태로워 보이지 않나요? --- p.63 수술대에서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강아지의 몸에 진통제를 최대한 주입했어요. 이런 상태에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집어넣었어요. 평범한 강아지라면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그다음에 심장을 멈추게 했어요. 갈라져 있는 배의 위쪽을 더 찢어서 심장에 간신히 연결된 호스 같은 혈관을 제거했어요.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로 메스가 닿자마자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왔어요. 그러나 이내 잦아들었죠. 피의 흐름과 강아지의 생이. --- p.88 인간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삶을 시작해서, 배고플 때쯤 쇠죽을 끓여오는 주인 덕에 필요할 때마다 배부르고, 꼬리를 흔들며 바람을 쐬다가 배 깔고 앉아서 눈을 감고 평생 공포 없는 편안한 밤을 보내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 p.95 너는 나중에 죽으면 50L 쓰레기봉투 몇 장에 얼마나 담을 수 있을 거 같냐.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남은 결과물이 쓰레기봉투에 들어가는 내 물건들뿐이라면 좀 억울할 것 같아. 게다가 그게 양이 적다면 더 그렇겠지. 사람은 결국 죽는다고 하는데, 뭔가 깨닫게 하는 죽음은 처음이야. 이제 술을 줄이면서 삶을 대하는 마음을 좀 다져 잡아 보려고. --- p.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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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 기일이야."
"우리 딸아이의 아빠는 오래전에 죽었어요." "수의사였는데, 일부러 동물을 죽였어요. 살려야 하는 동물을 죽였어요. 내 의지로." "그 사람 죽어서 지금 청소하고 집에 가는 길이야." 혼자 맥주를 마시러 들어간 바. 사각 테이블이 아닌, 종업원과 마주 앉는 바 테이블에서는 낯선 사람과 대화가 자연스럽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을 말해버리는 순간 서로의 위치가 정해져 버리기 때문에 금기 사항처럼 여겨진다. 별다른 이유 없이 오늘도 주인공은 가볍게 맥주 한잔하러 바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부터 처음 보는 낯선 사람까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건넨다. 그런데 오늘 따라 대화 주제가 죽음과 관련있다. '술을 싫어하셨던 아버지의 기일', '죽은 남편의 역할까지 모두 해내며 키운 딸의 결혼식', '살려야 하는 동물을 죽인 수의사', '죽은 사람의 빈 집을 청소하게 된 건물주'까지. 각기 다른 사(死)연을 주인공은 공감하며 들어준다. 말하는 사람이 단 한번의 머뭇거림 없이 이야기를 토해낼 수 있도록 집중한다. 사연의 주인공들은 본인의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털어 놓는다. 관계의 깊이는 크게 상관 없다. 오히려 낯선 관계일수록 더 길게, 더 깊게 이야기를 털어낸다. 과연 이 사람들은 왜 어두운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고, 주인공은 잠자코 들어주는 것일까. 어느 작은 바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이야기. 과연 무슨 배경이 숨어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