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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여] 이순신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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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미다스북스 200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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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Ⅰ 이순신의 자서전과 평역

1. 이순신의 자서전 제1기 - 탄생에서 임진왜란 전해까지
2. 이순신의 자서전 제2기 - 이순신이 옥에서 풀려나는 날까지
3. 선조의 이순신 살해공작
1) 이순신의 투옥: 선조의 살해공작, 이순신의 투옥
2) 선조가 조작한 정여립의 역옥사건
3) 선조가 조작한 김덕령의 역모사건
4) 선조와 이율곡의 내통 - 동서당쟁의 발생
4. 이순신의 자서전 제3기 - 명량대첩까지
5. 명량해전의 놀라운 승리 - 전쟁이 끝나다
1) 이순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2) 명량대첩의 평가가 미흡한 이유
3) 우리 해군 명량대첩연구의 현주소
6. 이순신 자서전 제4기 - 이순신이 죽을 때까지
7. 이순신이 전사하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기사들
1) 전사현장의 기록
2) 80일 후의 장례와 16년 후의 산소 이장
3) 이순신의 가짜 묘와 진짜 묘는 모두 두사충이 정해 준 자리이다


Ⅱ 판옥선과 거북선의 구조와 성능


1. 현대 선박과 다른 조선시대 선박의 구조
1) 장난감에 알맞은 복원 거북선
2) 조선시대 선박에 대한 우리의 지식
3) 『이충무공 전서』의 거북선 설명
2. 조선시대 선박의 기본구조
1) 한국식 노
2) 도해사신선의 평면도
3) 조선시대 선박의 특징: 횡단면상의 특징, 종단면상의 특징
3. 거북선의 구조
1) 조선시대 대형선박의 구조
2) 조선시대 대형선박의 종류: 도해사신선의 구조, 판옥선의 구조, 거북선의 구조
소선과 대선의 규격
2) 거북선과 도해사신선의 비교: 거북선 상장의 전장, 도해사신선 상장의 전장, 두 배의 전장의 비교, 도해사신선의 선폭, 거북선의 선폭, 두 배의 선폭 비교
3) 『이충무공 전서』의 그림
4. 거북선의 성능
1) 군선으로서의 장점
2) 거북선의 속도
5. 거북선의 배수량
1) 배의 안정성
2) 거북선의 배수량
3) 거북선의 장폭심 비례
6.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다
7. 협선과 포작선

Ⅲ 거북선 연구의 대가님들과 우리 해군이 거북선과 이순신을 모독하고 있다

1. 거북선의 창시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다
2. 해군사관학교의 못난이 거북선
3. 못난이 거북선이 대량 복제되고 있다
4. 해군참모총장과 해군장병들에게 공개적으로 건의한다.

저자 소개 1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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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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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한 시대의 영웅 이순신. 그는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왜적들을 방어하고 격퇴하면서 매번 해전에서 승리해 한민족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순신과 관련된 책만 해도 150여 권이 넘게 출판되었고 심지어는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어 인기몰이를 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민족이 낳은 세계적 위인 이순신에 대한 후세들의 관심과 탐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한 영웅이 남긴 생애와 업적은 후세들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주고 삶의 본보기가 되어 그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평역 이순신 자서전』은 지금까지 출간된 이순신 관련 서적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저술된 책이다. ‘이순신 자서전’이라는 생경한 제목에서 어쩌면 독자들은 약간 당황스럽고 의아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150여 권이 넘는 이순신 관련 서적 중에서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이 책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순신 자서전’으로 소개된 이 글의 원문은 『이충무공 전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기사들이다. 그 기사는 지금까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分)이 쓴 이순신의 ‘전기’로 세상에 알려져 왔다. 그 글이 ‘이순신 자서전’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저자는 이 책이 ‘이순신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그 첫째가 이순신은 당시 전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전기가 사실은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라는 것이고, 마지막 셋째는 거북선의 창시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것이다.

우선,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 라는 것과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전기가 사실은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 이라는 두 가지의 사실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순신이 쓴 글이 확실함에도 그것이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전기로 전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순신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러니까 이순신은 당시 전사하지 않고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여러 해 동안 더 살아 있었다는 명제와, 이분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이순신의 전기가 사실은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다, 라는 명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그 글이 누가 쓴 글인지 판별하는 일은 역사상으로 볼 때도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저자는 그 중요성에 기점을 맞추어 그 글이 이순신이 쓴 자서전이 확실하다는 것을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
첫째, 그 기록에는 21년 후에 출생한 조카가 좀처럼 알기 힘든 사소하고 은밀한 일화들이 적혀있다.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만큼 상황묘사나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정확하게 적혀있는 점으로 보아 이순신이 직접 쓴 글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둘째, 전기란 한 위인의 훌륭한 업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쓰는 글이다. 그런데 조카 이분이 쓴 글들에는 전기의 성격에 맞지 않는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이 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도 이분이 쓴 전기가 아니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셋째, 그 기록에는 고관들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고발하는 것 같은 내용의 기사들이 있다. 그런데 이는 그들을 중상하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는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순신의 속마음을 몰랐던 조카로서는 쓰기 어려운 글이라는 점이다.
넷째, 거기에는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이로 볼 때, 당시 이순신은 자신도 죽을 뻔 했으며 왕이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것을 기록에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쓴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이는 조카로서는, 숙부를 불경죄에 빠뜨리고 싶어서라면 몰라도, 그것이 아닌 이상 도저히 쓸 수가 없는 내용들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거북선의 발명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거북선의 발명자로 이순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찾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거북선에 대한 지나친 영웅시 때문인데, 저자는 나대용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나대용의 상소문’과 『이충무공 전서』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나대용이 거북선 제작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남천우는 평소 위인전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또한 이순신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순수한 물리학자이다. 다만 당시에 있던 거북선 모형이 잘못되어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자는 도해사신선의 설계도를 보게 되었는데 그 도면에는 한국식 노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것이 2층 구조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거북선과 판옥선도 일사천리로 복원할 수 있었다. 저자는 거북선이 기동력이 뛰어난, 기막히게 우수한 전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수한 전선 때문에 이순신이 매번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을 알게 된 저자는 이순신의 해전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순신의 전사에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의문을 시작으로 이순신의 전기가 혹시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게 되었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결국 그것이 이순신의 자서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마침내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분의 조카가 쓴 글이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임을 밝히고, 이순신이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살 수 밖에 없었던 험난했던 그의 일생을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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