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가격
18,000
10 16,200
YES포인트?
18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책소개

목차

Ⅰ 이순신의 자서전과 평역

1. 이순신의 자서전 제1기 - 탄생에서 임진왜란 전해까지
2. 이순신의 자서전 제2기 - 이순신이 옥에서 풀려나는 날까지
3. 선조의 이순신 살해공작
1) 이순신의 투옥: 선조의 살해공작, 이순신의 투옥
2) 선조가 조작한 정여립의 역옥사건
3) 선조가 조작한 김덕령의 역모사건
4) 선조와 이율곡의 내통 - 동서당쟁의 발생
4. 이순신의 자서전 제3기 - 명량대첩까지
5. 명량해전의 놀라운 승리 - 전쟁이 끝나다
1) 이순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2) 명량대첩의 평가가 미흡한 이유
3) 우리 해군 명량대첩연구의 현주소
6. 이순신 자서전 제4기 - 이순신이 죽을 때까지
7. 이순신이 전사하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기사들
1) 전사현장의 기록
2) 80일 후의 장례와 16년 후의 산소 이장
3) 이순신의 가짜 묘와 진짜 묘는 모두 두사충이 정해 준 자리이다


Ⅱ 판옥선과 거북선의 구조와 성능


1. 현대 선박과 다른 조선시대 선박의 구조
1) 장난감에 알맞은 복원 거북선
2) 조선시대 선박에 대한 우리의 지식
3) 『이충무공 전서』의 거북선 설명
2. 조선시대 선박의 기본구조
1) 한국식 노
2) 도해사신선의 평면도
3) 조선시대 선박의 특징: 횡단면상의 특징, 종단면상의 특징
3. 거북선의 구조
1) 조선시대 대형선박의 구조
2) 조선시대 대형선박의 종류: 도해사신선의 구조, 판옥선의 구조, 거북선의 구조
소선과 대선의 규격
2) 거북선과 도해사신선의 비교: 거북선 상장의 전장, 도해사신선 상장의 전장, 두 배의 전장의 비교, 도해사신선의 선폭, 거북선의 선폭, 두 배의 선폭 비교
3) 『이충무공 전서』의 그림
4. 거북선의 성능
1) 군선으로서의 장점
2) 거북선의 속도
5. 거북선의 배수량
1) 배의 안정성
2) 거북선의 배수량
3) 거북선의 장폭심 비례
6.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다
7. 협선과 포작선

Ⅲ 거북선 연구의 대가님들과 우리 해군이 거북선과 이순신을 모독하고 있다

1. 거북선의 창시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다
2. 해군사관학교의 못난이 거북선
3. 못난이 거북선이 대량 복제되고 있다
4. 해군참모총장과 해군장병들에게 공개적으로 건의한다.

저자 소개1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이순신의 다른 상품

저자 : 남천우
이 글의 저자 남천우 선생님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원자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서로는『석불사石佛寺』(일조각, 1991),『유물의 재발견』(학고재, 1997),『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미다스북스, 2004 등이 있고「거북선 구조에 대한 재검토」,「석굴암」, 「신라종」, 「첨성대」, 「경주의 월성月城」등의 논문을 『역사학보』에 발표한 바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8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548591

책 속으로

내가 처음 수사로 임명되던 때 내 친구가 꿈을 꾸었다. 큰 나무가 있어 높이는 하늘을 찌를 만하고 가지는 그 사이에 가득 퍼졌으며 그 위에 올라가 몸을 기대고 있는 사람은 천 명인지 만 명인지 모를 정도로 많았다. 그때 그 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지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몸으로 떠받들어 세우길래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뒷날 사람들이 송나라 문천상이 하늘 떠받들던 일에 비유하였다.

10월 14일 나는 우수영에 있다가 아들 면이 죽었다는 기별을 들었다. 면은 나의 막내아들로서 용기와 지혜가 있고 말타기와 활쏘기에도 능해 나는 늘 나를 닮았다 생각하고 사랑했었다. 면은 그해 9월에 어머님을 모시고 아산 본가에 가 있었다. 그때 왜적들이 여염집을 분탕질한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싸우다가 복병의 칼에 찔려 길에서 죽었다. 나는 그 기별을 듣고 너무 애통해했다. 그로부터 정신이 날마다 쇠약해 갔다. 그 뒤 고금도(전남 완도군 고금면)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다. 어느 날 낮잠이 어슴푸레 들었는데 면이 내 앞에 와서 슬피 울며 하는 말이,

“저를 죽인 왜적을 아버지께서 죽여 주십시오.”한다. 나는 대답하되,
“네가 살아 있을 때 장사였건만, 죽었다고 해서 적을 죽일 수 없겠느냐.”하고 물었다.
“제가 적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겁이 나서 감히 죽이지를 못하옵니다.”이 말을 듣고 나는 문득 깨어 일어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내 꿈이 이러이러하니 웬 일인고”하며 스스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 채 그대로 팔을 베고 눈을 감았더니 몽롱한 가운데 면이 또 와서 울며 아뢰는 말이,
“아버지로서 자식의 원수를 갚는데 저승과 이승에 무슨 간격이 있겠습니까. 제 말을 예사로 듣고 원수를 같은 진 속에 두고 죽이지를 않다니요.”하면서 통곡하고 가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나 물었더니, 과연 새로 잡혀 온 왜적 하나가 배 속에 갇혀있다 했다. 나는 명령으로 그놈의 소행 내력을 물었더니 바로 면을 죽인 그놈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를 동강 내 죽이라 명령하였다.

--- 본문중에서

이 책은 이순신이 쓴 자서전에 내가 쓴 평전을 곁들인 내용이다. 이순신 자서전의 원본은 그의 종손들이 보관해 오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약 200년이 지난 1975년에 출판된 『이충무공 전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것이다.

이순신은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16년 동안을 더 살다가 죽었다. 당시 이순신의 사정이 이러하였으므로 그는 비록 자신이 자서전을 쓰기는 했지만 그것을 자신이 쓴 것이라 말할 수 없었으므로 그 글을 조카인 이분李芬이 쓴 전기라는 이름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는 그 글이 다름 아닌 이순신의 자서전임을 밝히는 동시에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살펴봄으로써 험난했던 그의 일생을 재조명하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만약에 이순신이 16년 동안을 더 살아 있었다면 굳이 조카가 그의 전기를 써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이순신에게 자서전을 쓰도록 권유하기만 하면 될 일인데도, 번거롭고 주제넘게 숙부의 전기를 조카가 대신해서 쓴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만약에 이순신이 쓴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서전이 이분이 쓴 전기로 전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순신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결국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으며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여러 해 동안 더 살아 있었다”는 명제와 “이분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이순신의 전기가 사실은 이순신이 쓴 자서전이다”라는 명제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을 누가 쓴 것인지 판별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처음에 나의 한문 실력으로는 그 글의 저자를 판별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판별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문장들이 이순신 특유의 문장임을 입증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판별을 시도해 보니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12척의 거북선으로 330척의 적을 격파한 명량해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또 임진왜란 당시의 전선이었던 판옥선과 거북선의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하겠다. 그리고 거북선의 창시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사실도 밝히겠다.

이순신은 누구를 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는 적을 속인 것뿐이다. 역사를 속이려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떳떳하다. 그는 400년 후에라도 자신이 전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은어로 자서전에 “나는 전사하지 않았다”, “나는 그 후 16년을 더 살았다”라고 적은 것이다. 그의 풍부한 해학이 재미있지 않은가? 그는 진정 큰 영웅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비겁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조바심이나 내는 소인배가 아니었다.어디엔가 그의 영혼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존 사실이 밝혀진 데 대하여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 본문중에서

줄거리

제1부 이순신의 자서전과 평역 -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고 16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여기서는 이순신의 자서전을 4기로 나누어 싣고 있다. 이순신 자서전 원문에 보면 이순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공(公)’이라는 3인칭을 사용했는데 저자는 이것을 1인칭인 ‘나’로 바꾸어 자서전의 형식에 맞게 옮겼다. 그리고 그 글이 왜 이순신의 자서전인지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제1부에서는 이순신이 무과시험을 보다가 말이 꼬꾸라져 낙방해 왼쪽 다리뼈가 부러진 이야기, 무과시험에서 시험관과 주고받은 질문과 답의 내용, 병조판서 김귀영이 소실의 딸을 첩으로 주려고 했을 때 중매장이를 돌려보낸 이야기, 적의 화살에 다리를 맞고도 부하들이 놀랄 것 같아 몰래 화살을 뽑아낸 이야기, 처음 수사로 임명되던 때 친구가 꾼 꿈 이야기 등 본인이 아니고서는 기록할 수 없는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이순신의 자서전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순신이 당시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16년 을 더 살다가 죽었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것에 대해서도 제1부에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순신은 무엇 때문에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16년 동안을 더 살다가 죽었을까. 거기에 대한 의문과 해답들이 이 책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독자들도 함께 책 속으로 들어가 과연 이 글이 이순신이 쓴 자서전인지 아니면 조카 이분이 남긴 전기인지를 직접 판별해가면서 읽어 나가면 책 읽는 재미가 한층 더 할 것이다.

제2부 판옥선과 거북선의 구조와 성능 - 조선시대 선박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현재 거북선 모형은 언더우드 모형이다. 이는 1934년 미국 사람이 호레이스 H. 언더우드에 의해 시도된 모형인데 오늘날까지 별다른 구조의 개선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 선박의 구조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색다른 특징이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현재 복원된 거북선이 잘못된 구조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식 노의 작동원리는 물고기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추진력을 얻는 것과 같은 원리이며 불필요한 동작이 없고 힘의 낭비가 없다. 그리고 추진력의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배의 선회능력이 대단히 좋으며 이는 전투용 선박에서 더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제2부에서는 이렇게 우리의 판옥선과 거북선도 이런 한국식 노를 사용해 왔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으며 소선과 대선의 규격비교, 거북선의 성능, 배수량, 선회능력, 거북선의 노젓는 방향, 군선으로서의 장점 등에 대해서도 그림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거북선의 창시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이 기회에 독자들은 거북선에 관한 전문 지식을 접해보고, 여기에 수록된 거북선의 평면 복원도 단면 복원도 측면 복원도 등의 그림과 함께 그 뛰어난 성능을 한번 분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제3부 거북선 연구의 대가님들과 우리 해군이 거북선과 이순신을 모독하고 있다
거북선의 구조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현재 언더우드 모형에다 한국식 노만 바꾸어 단 거북선을 만들어 전시해 놓고 있다. 이것은 아예 항해 자체가 불가능한 거북선으로, 저자는 오랫동안 거북선이 올바로 복원될 수 있도록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는 저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거북선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우리 해군이 시속 20km가 넘는 올바른 거북선과 판옥선을 복원해 줄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 해군이 이순신의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아 멋진 해군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한 시대의 영웅 이순신. 그는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왜적들을 방어하고 격퇴하면서 매번 해전에서 승리해 한민족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순신과 관련된 책만 해도 150여 권이 넘게 출판되었고 심지어는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어 인기몰이를 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민족이 낳은 세계적 위인 이순신에 대한 후세들의 관심과 탐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한 영웅이 남긴 생애와 업적은 후세들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주고 삶의 본보기가 되어 그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평역 이순신 자서전』은 지금까지 출간된 이순신 관련 서적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저술된 책이다. ‘이순신 자서전’이라는 생경한 제목에서 어쩌면 독자들은 약간 당황스럽고 의아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150여 권이 넘는 이순신 관련 서적 중에서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이 책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순신 자서전’으로 소개된 이 글의 원문은 『이충무공 전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기사들이다. 그 기사는 지금까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分)이 쓴 이순신의 ‘전기’로 세상에 알려져 왔다. 그 글이 ‘이순신 자서전’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저자는 이 책이 ‘이순신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그 첫째가 이순신은 당시 전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전기가 사실은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라는 것이고, 마지막 셋째는 거북선의 창시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것이다.

우선,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 라는 것과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전기가 사실은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 이라는 두 가지의 사실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순신이 쓴 글이 확실함에도 그것이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쓴 전기로 전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순신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러니까 이순신은 당시 전사하지 않고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여러 해 동안 더 살아 있었다는 명제와, 이분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이순신의 전기가 사실은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다, 라는 명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그 글이 누가 쓴 글인지 판별하는 일은 역사상으로 볼 때도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저자는 그 중요성에 기점을 맞추어 그 글이 이순신이 쓴 자서전이 확실하다는 것을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

첫째, 그 기록에는 21년 후에 출생한 조카가 좀처럼 알기 힘든 사소하고 은밀한 일화들이 적혀있다.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만큼 상황묘사나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정확하게 적혀있는 점으로 보아 이순신이 직접 쓴 글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둘째, 전기란 한 위인의 훌륭한 업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쓰는 글이다. 그런데 조카 이분이 쓴 글들에는 전기의 성격에 맞지 않는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이 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도 이분이 쓴 전기가 아니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셋째, 그 기록에는 고관들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고발하는 것 같은 내용의 기사들이 있다. 그런데 이는 그들을 중상하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는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순신의 속마음을 몰랐던 조카로서는 쓰기 어려운 글이라는 점이다.
넷째, 거기에는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이로 볼 때, 당시 이순신은 자신도 죽을 뻔 했으며 왕이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것을 기록에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쓴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이는 조카로서는, 숙부를 불경죄에 빠뜨리고 싶어서라면 몰라도, 그것이 아닌 이상 도저히 쓸 수가 없는 내용들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거북선의 발명자는 나대용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거북선의 발명자로 이순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찾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거북선에 대한 지나친 영웅시 때문인데, 저자는 나대용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나대용의 상소문’과 『이충무공 전서』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나대용이 거북선 제작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남천우는 평소 위인전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또한 이순신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순수한 물리학자이다. 다만 당시에 있던 거북선 모형이 잘못되어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자는 도해사신선의 설계도를 보게 되었는데 그 도면에는 한국식 노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것이 2층 구조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거북선과 판옥선도 일사천리로 복원할 수 있었다. 저자는 거북선이 기동력이 뛰어난, 기막히게 우수한 전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수한 전선 때문에 이순신이 매번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을 알게 된 저자는 이순신의 해전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순신의 전사에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의문을 시작으로 이순신의 전기가 혹시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게 되었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결국 그것이 이순신의 자서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마침내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분의 조카가 쓴 글이 이순신이 직접 쓴 자서전임을 밝히고, 이순신이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살 수 밖에 없었던 험난했던 그의 일생을 재조명한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