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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해설 임진년(1592) 1월, 전쟁 대비를 위해 붓을 잡다 2월, 초도순시길에 오르다 3월, 거북선 운항을 시험하다 4월, 임진왜란이 발생하다 5월, 옥포로 출동하다 6월, 당포해전을 치르다 8월, 부산 가덕으로 출동하다 계사년(1593) 2월, 웅포해전을 치르다 3월, 웅천에서 왜군을 섬멸하다 5월, 명나라의 패문이 왔다 6월, 견내량을 탐색하다 7월, 한산도로 진을 옮기다 8월, 삼도 수군을 지휘하다 9월, 폐단을 보고하다 갑오년(1594) 1월, 어머니께 문후드리다 2월, 정찰활동을 강화하다 3월, 금토패문을 받아보다 4월, 별시의 과거시험장을 열다 5월, 생포한 왜군을 심문하다 6월, 명나라의 장홍유가 오다 7월, 유성룡의 사망소식이 잘못 전해지다 8월, 아내의 병이 위중하다 9월, 장문포로 출동하다 10월, 왜적이 숨어 나오지 않는다 11월, 포상 징계하는 장계를 올리다 을미년(1595) 1월, 꿈속에 부친을 만나다 2월, 도양의 벼를 포구에 나누다 3월, 한산도에 활연습장을 만들다 4월, 권율의 거짓 보고를 비판하다 5월, 삼도 장졸이 활연습을 하다 6월, 어머니의 병을 걱정하다 7월,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을 걱정하다 8월, 촉석루에서 패망을 슬퍼하다 9월, 선거이에게 이별시를 주다 10월, 수루의 대청 공사를 하다 11월, 원균의 편지를 비판하다 12월, 삼천진에서 이원익을 만나다 병신년(1596) 1월, 명나라와 일본의 상황을 듣다 2월, 둔전의 벼를 되질하다 3월, 연일 몸이 불편하다 4월, 일본 정보에 대한 보고를 받다 5월, 풍신수길이 화친을 결정하다 6월, 4도의 장수들이 모여 활쏘기를 하다 7월, 명나라 사신 수행원이 정해지다 8월, 한산도를 출발하여 순시하다 윤8월, 완도의 요충 남망산에 오르다 9월, 전라일대에서 평온한 시간을 갖는다 10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배알하다 정유년Ⅰ(1597) 4월, 출옥 후 백의종군길에 오르다 5월, 누추한 집을 전전하다 6월, 합천의 권율 진영에 도착하다 7월, 원균의 패전을 듣고 동산산성에 오르다 8월, 삼도수군통제사의 복직 교서를 받다 9월, 수군을 재건하여 명량대첩을 이루다 10월, 휴식 후 법성포로 가다 정유년 Ⅱ(1597) 8월, 삼도수군통제사의 복직 교서를 받다 9월, 수군을 재건하여 명량대첩을 이루다 10월, 셋째 아들 면(?)이 전사하다 11월, 군공으로 은자 20냥을 받다 12월, 선조가 상중에 육식을 명하다 무술년(1598) 1월, 판옥선 건조를 완성하다 9월, 예교성전투가 시작되다 10월, 육군이 후퇴하나 이순신은 계속 도전하다 11월,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다 서간첩 사진첩 참고문헌 난중일기 교감대조표 충무공 이순신 연보 |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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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적기를 생각했으나 바다와 육지를 오가느라 매우 바쁘고 또한 쉴 새가 없어서 잊어둔 지 오래였다. 여기서부터 이어 적는다.”
---「계사년 5월 일기 첨지 기록」중에서 “국가를 편안히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힘을 다하여 죽으나 사나 이를 따르리라.” ---「계사년 9월 15일 이후 기록」중에서 |
▶ 2013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심의자료 채택
▶ 2015 문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 베트남어번역 지원 ▶ 2016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대학생입생 추천도서(축약판) ▶ 중고교 교과서 27종 수록 ▶ 성균관대 성균고전 100선 선정 ▶ 2020년 대구교육대 DNUE 50 Greatbooks 교양도서 선정 4백여 년 전 암호같은 이순신의 초서 필적에 담긴 의미를 모두 밝혀내다 친필 초고본 《난중일기》 를 완벽하게 해독한 완역본. 최근까지 발굴된 이순신의 문헌자료를 수록하다. 세계역사상 최고지휘관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보고 들은 사실을 일기로 쓴 사례는 《난중일기》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순신은 전쟁을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1592년 1월 1일부터 난중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작성하였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7년간의 임진왜란 중에 쓴 전쟁비망록으로 여기에는 당시의 전쟁 상황과 진영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정사에도 없는 잘잘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역사연구에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위인의 활약상과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내용들도 상당수 들어 있다. 이러한 일기는 지휘관의 체험일기로서 실기의 성격이 매우 강한데,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기록한 다른 일기류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자주 적었는데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는 어머니의 분부를 고이 간직한 채 국난극복에 대한 한결같은 염원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을 하였다. 그 결과 백전백승의 전공을 세웠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위기를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활약상이 담긴 《난중일기》는 불후의 명작이자 전쟁문학의 백미이다. 이러한 《난중일기》의 해독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난중일기》는 조선 정조(正祖) 19년(1795)에 《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될 때 처음 해독되었고, 이 과정에서 글자들이 일부 수정되었다. 이로 인해 초고본과 차이가 발생했으나, 이는 음과 뜻이 같은 글자를 통용하는 관습법을 따른 것이다. 이는 교감 이론에 따라 국가유산포탈의 난중일기 DB원문에 실린 전서본의 글자와 함께 오자가 아니라 이본의 글자로 적시되었다. 1935년에 조선사편수회에서 해독한 《난중일기초》가 나왔고 그후 홍기문과 이은상의 난중일기 완역본이 나왔다. 여기에는 해독상의 오류가 있어 학계에서 교감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저자가 친필 초고본 《난중일기》에 대한 교감작업을 진행하여 정본화된 난중일기 판본을 새롭게 만들고, 2010년 《교감완역난중일기》(민음사)를 간행하였다. 그후 증보와 개정 2판, 교주본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는 새로운 일기 36일치, 용어, 인명, 지명에 대한 새로운 고증 내용이 망라되었다. 학계에 보고하여 교감한 사례는 총 200여 건이다. 이순신의 초서글씨는 왕희지와 손과정의 중간단계에서 형성된 서체로서, 필획에 힘이 있고 웅건하며 끝의 별획이 힘을 주어 날리지 않고 점획을 뭉뚱하게 마무리하는 특징이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왕희지와 손과정의 서체를 임서하며 연구해왔기에 난중일기 글씨를 해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전과 초서를 전문으로 연구한 독자적인 영역에서 난중일기를 연구했기에 보통의 번역과 남다른 차별성이 있다.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 3판에는 새로운 내용들을 수록했는데, 이순신의 미공개본 영정과 이순신이 옥포해전 때 말한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을 친필로 집자한 어록, 이순신이 딸의 혼사로 신랑집에 주단을 청하는 새로운 편지 1통, 2017년에 친필로 집자한 한산도가, 백의종군로 중 단성유적지, 유성룡이 《경자년 대통력》에 쓴 이순신의 전사기록 등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올라 큰 칼을 어루만지며 깊은 근심을 할 때 어디서 한 가락 강적소리는 더욱 근심을 더하네 閒山島月明夜 上戍樓 撫大刀深愁時 何處一聲 羌笛更添愁 특히 유성룡이 쓴 이순신의 전사기록 내용은 2022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의뢰로 저자가 유성룡이 소장한 수택본 《경자 대통력》 전편을 해독하면서 찾아낸 것이다. 이는 표지 앞장에 초서로 심하게 흘려 적혀 있었는데,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부하들의 만류를 듣지 않고 독전하다가 총탄을 맞고 전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부록의 서간첩에는 이순신이 조카와 인척인 현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 7편, 아들 이회(李?)가 현건에게 보낸 편지 1편, 이순신의 10세손 이규대(李奎大)가 쓴 글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첩에는 이순신의 유적지 중에서 대표적인 50여 곳의 사진을 수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