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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Ⅰ. 《난중일기》의 역사 Ⅱ.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해제 일러두기 《난중일기 교주본》 번역문 임진일기(1592) 계사일기(1593) 갑오일기(1594) 을미일기(1595) 병신일기(1596) 정유일기(1597)Ⅰ 정유일기(1597)Ⅱ 무술일기(1598) 《난중일기 교주본》 원문 부 록 1.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전사 2. 《난중일기》 교감 대조표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찾아보기 |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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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저자입니다.
2021-10-28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부족한 졸작이지만, 교감본 난중일기를 출간한지 11년만에 방대한 문헌고증을 하여 신완역 교주본을 간행했습니다. 이 책을 보시면 기존의 책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원문과 번역을 다년간 분석하여 관련내용을 일일이 주석에 달았기때문에, 교감 주석의 준말로 교주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방대한 문헌으로 교감했기때문에 기존의 활자본을 위주로한 번역서와 문화유산포탈의 난중일기 DB와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최고의 수준 높은 경지에서 번역하는 것을 교감이리고 하는데 교감학자로서 새로운 경지에서 난중일기의 진면목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저자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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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편안히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힘을 다하여 죽으나 사나 이를 따르리라.” -계사년 9월 15일 이후 기록 -
이 구절은 이순신이 《통감절요》〈후한기〉희평(熹平) 원년조에 나오는 송나라의 묵재(?齋) 채정손(蔡正孫)이 말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는 이번 문헌고증을 통해 처음 밝혀졌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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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여 년 전 암호같은 이순신의 초서 필적에 담긴 의미를 고스란히 밝혀내다
고전전문가의 문헌고증으로 10여 년 만에 가장 완벽한 번역서를 출간하다 1. 저자의 《난중일기》연구 업적은 어떠한가. 《난중일기》에 대한 한글 번역 작업은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홍기문과 이은상의 국역본《난중일기》가 오늘날 번역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용어와 명칭에서 전고 미상과 오독 등이 남아 있어 학계에서는 새로운 교감(校勘)과 재번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노승석 저자는 《난중일기》 백여 곳을 교감하여 2008년《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논문 이후로는 교감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한국연구재단 등재논문 기준) 2010년 이를 기초로 한 《교감완역 난중일기》(민음사)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최초의 교감 완역본으로서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가 등재 될 때 심의자료로 제출되었고, 개정2판이 간행되기까지 저자는 하나의 발굴 역사를 이루었다. 즉, 《충무공유사》〈일기초〉의 32일치를 난중일기에 처음 합본하고 《난중일기》에 적힌 《삼국지연의》내용과 홍기문의 《난중일기》(2013), 《태촌집》〈충무공난중일기〉의 새로운 일기 3일치, 《임진기록》의 금토패문 전문(2016), 《삼도실기》의 새로운 일기 1일치 등을 찾아 처음 소개했다. 이를 쉽게 엮은 《쉽게보는 난중일기》가 2016년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대학 신입생의 추천도서로 선정하였고, 개정2판이 2020년 대구교육대학교에서 DNUE 50Greatbooks 교양도서로 선정하였다. 2. 《난중일기》해독은 초서 해독방법과 문헌고증이 관건이다 《난중일기》의 난해한 초서 글자는 간혹 해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독된다. 그러나 초서와 고전을 정통으로 연구한 학자라면 자형보다는 문맥을 중시하는 문팔초이(文八草二, 문맥 8, 자형 2) 방법으로 해독하기 때문에 견해가 거의 일치한다. 자형이 맞더라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문맥을 따르는 것이 초서해독의 원칙이다. 자형을 위주하면 오독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일본인의 판본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은 예로 병신년 9월 14, 15일자에 나오는 “여진입(女眞卄)”과 “여진삽(女眞?)”, 그리고 정유년 5월 21일자에 나오는 “일맥금전(一脈金錢)”을 각각 들 수 있다. 여진 뒤의 글자는 일본인이 “스물 입(卄)”과 “서른 삽(?)”자로 오독하여 그동안 많은 논란과 오해가 있었다. 고전과 초서분야의 많은 전문학자들도 20년 전부터 이것이 오독이라는데 의견을 함께 하였다. 저자는 이를 “함께할 공(共)”자로 수정했는데, 이 “共”자는 병신년 7월 5일의 “忠淸虞候亦來共”의 “共”자와 자형이 일치한다. 《난중일기》에는 인명 뒤에 공(共)자가 72회 나오는데, 이는 일상에서 사람을 만났다는 의미로 관용적으로 사용된 글자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특히 명나라 학자 장자열의 《정자통(正字通)》에 “공(共)은 옛날에는 ‘두손으로받들 공(?)’자로 썼다(共, 按古作?)”는 내용을 찾아 “공(共)”은 “공(?)”자와 통용하는 글자로서 초서로 쓸 때 호용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밝혔다. 이러한 고증이 고전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해독방법이므로 다수의 학자들이 공감하였다. 또한 이번의 교주본에서는 해남윤씨 집안에서 소장한 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에서 1577년(만력 5)에 작성한 이순신의 형인 이요신(李堯臣)의 마정전답(馬井田畓) 매입 문건과 1602년(만력 30)에 작성한 문서에서 여자종 여진(女眞) 이름을 찾았다. 그 외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사내종(奴) 갓동(?同) 옥이(玉伊), 옥지(玉只)와 여자종(婢) 덕금(德今), 한대(漢代)”도 나온다. 홍기문은 여진을 북방의 여진족으로 보았으나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 잘못된 해석이다. 또한 “일맥금전(一脈金錢)”의 “맥(脈)”자를 “길 맥(陌)”자로 처음 수정하고 이 글귀의 출전이 명나라 때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라고 처음 밝히고 다른 문헌을 인용하여 일맥금전의 뜻을 정확히 고증하였다. 이 모두 일본인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형만을 따져 오독한 글자들이므로 반드시 교감해야 하는 글자들이었다. 이 두 가지의 번역 사례만 봐도 전문가의 번역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새롭게 문헌고증한 사례들도 많다. 예를 들면, 임진년 2월 1일자의 조어(?魚)는 《사문유취》와 《본초강목》등에는 “뱅어”로 나오지만, 여수지방의 기록과 전라좌수영 해안의 상황을 고려하여 “숭어 새끼(모치(毛峙))”로 비정했다. 병신년 3월 23일자의 기두(技頭)는 용례가 없어 정확한 의미를 몰랐는데, 이를 지두(枝頭)로 보고 《맹자》〈양혜왕상〉의 “절지(折枝)”에 대한 조기(趙岐)의 “안마하다(案摩)”의 뜻을 취하였다. 정유년 7월 10일자의 “정상명이 말가죽(馬革)을 종이옷[紙衣]으로 만들기를 마쳤다.(鄭翔溟馬革以紙造畢)는 내용은 《후한서》〈마원열전〉과 《자치통감》에서 유래한 것임을 밝혔다. 정유년 5월 3일자에 이순신의 둘째 아들 열(?)의 이름 풀이내용이 나온다. “아침에 둘째아들 울(蔚)의 이름을 열(?)로 고쳤다. 열(?)의 음은 열(悅)이다. 싹이 처음 생기고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글자의 뜻이 매우 아름답다.(朝以蔚改名?, ?音悅, 萌芽始生, 草木盛長. 字義甚美)” 이 글은 지금까지 출전을 전혀 알 수 없었는데, 교주본에서 처음 밝혔다. 당(唐)나라 때 혜림(慧琳)이 지은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24권 〈대방광여래 불사의경계경(大方廣如?不思議境界經)〉에서 중국 진(晉)나라 때 학자인 곽박(郭璞)이 서한(西漢)의 양웅(揚雄)이 지은 《방언》과 운서인 《고성(考聲)》의 내용을 인용하여 주석한 것임을 처음 밝혔다. 《난중일기》에는 정유년 10월 8일 이후에 나오는 〈독송사(讀宋史)〉라는 유명한 글이 있는데, 교주본에서 이글의 출처를 처음으로 밝혔다. 이글은 《송사(宋史)》를 읽고 느낌을 적은 글로 지금까지는 모두 이순신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중국 명(明)나라 때 대학자인 경산(瓊山) 구준(丘濬 1420∼1495)이 지은 역사서 《세사정강(世史正綱)》〈송세사(宋世史)〉25권에 실린 ‘송제환(宋帝桓) 강정원년(靖康元年, 1126(병오))’조에 실린 이강(李綱)의 내용을 이순신이 인용한 것임을 문헌을 통해 처음으로 밝혔다. 《세사정강》은 성화(成化) 17년(1481) 예부시랑(禮部侍郞)이었던 구준이 춘추의 필기의식과 동중서(董仲舒)의 도의정신으로 주희의 《통감강목》과 여조겸의 《대사기(大事記)》체제를 본받아 진한(秦漢)부터 원(元)까지의 주요 사건을 기술한 편년체 역사서이다. 이상으로 교주본에서 새롭게 교감하고 발굴한 대표적인 내용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내기까지 저자는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없는 한국과 중국의 희귀한 책과 문서들을 수집하여 오랜 세월을 연구하였다. 그 외 교감과 관련하여 《이충무공전서》《난중일기》(1795)를 보면, 문맥과 실용성을 고려하여 간혹 긴 문장을 줄이거나 어려운 글자를 쉬운 글자로 대체한 경우가 있다. 이는 육서(六書)의 가차(假借)법과 동음가를 사용한 한자표기 방법을 적용한 것인데, 이를 모르면 오자로 착각할 수 있다. 때문에 17년 전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의 난중일기 DB에 실린 전서본 글자는 이본의 글자일 뿐 오독된 글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은 기존의 책과 무엇이 다른가. 기존의 교감완역본이 《난중일기》원문을 축자(逐字) 형태로 완역한 책이라고 한다면, 교주본은 이순신과 관련된 한중 최대규모의 문헌자료를 문헌학과 고증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중일기》를 더욱 정밀하게 교감 역주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문헌내용들을 소개하고, 후대에 전하는 《난중일기》초본도 모두 수록하고 《난중일기》의 난해한 전고와 용어, 인명, 지명 등을 모두 완벽하게 고증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난중일기》판본의 오류를 교감한 내용을 모두 망라하였고, 이견과 논란이 있는 내용도 모두 바로잡았다.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반영된 교감본 《난중일기》원문을 번역문과 함께 수록하였다. 간혹 해독이 불가능한 글자나 학자들의 의견차이가 심한 글자의 경우에는 문헌 내용과 이순신이 쓴 용례로써 판단하였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초서를 연구한 고전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해독방법이다. 이 교주본의 특징은 문헌으로 용어와 인명, 지명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 점이다. 용어는 중국의 24사(史)를 포함한 고전적에서 관련 내용을 일일이 찾아 고증하였다. 또한 《난중일기》에는 관직만 나오고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인물의 재직 시기를 일일이 추적하여 해당 인물을 찾았다. 《선조실록》의 임면 사항과 방목류, 경상·전라도 읍지의 〈선생안〉, 교서, 《선무원종공신록》과 《호성원종공신록》등을 참고하였다. 4백여 곳의 지명과 유적지는 저자의 역저《난중일기유적편》(2019)을 토대로 향토사료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대폭 보완하였다. 이제 10여 년 만에 새로운 일기 36일치를 포함한 《난중일기》93,022자를 완전 해독하고 4백여 곳을 새롭게 고증하여 가장 완벽한《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을 출간하였다. 이는 수십 년 동안 한학과 초서를 연구하고 임진왜란에 대한 조예가 있는 전문학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 교주본은 고전 학자들이 통용하는 해독 방법으로 《난중일기》해독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번에 새로 발굴한 14건의 내용은 고전학자의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연구 성과이므로, 이 교주본은 역시 최고의 노작이자 불후의 명저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