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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들에게 쓰는 편지
2 어쩌면책 1 3 저어라, 저어라 4 살 5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 6 첫마디 7 재택 학습 8 호시절 9 하이볼 10 맞춤법 수업 11 재택 학습 12 위생 13 마술 쇼 1 14 당혹 15 초밥 16 자부심 1 17 균형 18 식은 죽 먹기 19 꼬리 이야기 1 20 꼬리 이야기 2 21 자부심 2 22 만약에 23 재택 학습 24 재택 학습 25 구약성경 26 티미와 태드와 아빠와 나 1 27 사내아이들의 언어 28 재택 학습 29 세계 칠면조 수도 30 자부심 3 31 평화주의 32 티미와 태드와 아빠와 나 2 33 재택 학습 34 재택 학습 35 좀 더 쉬운 숙제 36 티미의 침실 문 37 입맞춤 38 회피 대마왕 39 티미와 태드와 아빠와 나 3 40 티미의 도박 41 감미롭고 영예로운 것 42 자부심 4 43 전우 44 어쩌면책 2 45 마술 쇼 2 46 유용한 마술 47 염치없지만 매우 진지한 제안 48 황금 바이킹 49 티미와 태드와 아빠와 나 4 50 탈락 51 재택 학습 52 재택 학습 53 토론회 54 초밥, 초밥, 초밥 55 티미와 태드와 아빠와 나 5 56 화산 속으로 57 그러고 스튜 냄비 속으로 58 수업 계획안 59 태드의 문학 조언 60 마지막 추가 수업 계획안 감사 자료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
Tim O’Br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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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 2003년에 집필을 시작했다가 잠시 멈추었고 그 뒤 2004년 말에 가까울 무렵 재개했다. 내 의도는 티미와 녀석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러니까 임신은 됐지만 아직 대기 중이던 남동생 태드에게 작은 이야기 선물을 남기는 거였다. 내가 죽고 한참이 지났을 때 잘하면 아이들이 먼지 낀 문서 보관함에서 찾아 읽게 될 병 속의 짧은 메시지 몇 개를 단숨에 작성하려던 구상이었다. 당시 나는 아직 노인은 아닌 쉰여덟 살이었지만 사망률 수치를 보면 이미 살 떨리는 수준이었다. 그즈음 내게 든 생각은 두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그 아버지는 보나 마나 할아버지, 아니 어쩌면 할아버지의 형으로 오인되고도 남겠다 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 생각은 맞았다.
--- p.22 이 책이 시간을 건너뛰는 건 시간이 나를 주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용을 건너뛰는 건 내 인생의 내용이 나를 건너뛰었기 때문이다─공포에서 슬픔으로 분노로 깨진 사랑으로 절망으로 의기양양함으로 영겁에 관한 밤늦은 대화로. 장편소설이나 단편소설에는 인간사에 질서가 있다는 환상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부터가 자식들에게 쓰는 연애편지 묶음일 책에 질서를 부여하는 건 공연히 망신을 사는 일일뿐더러 더 안 좋게는 기만하는 일일 것이다. 내 자식들은 현실의 자식이고 나는 현실의 아버지이며 엉망진창 혼돈이야말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소박한 주제였다. --- p.25 티미는 이제 두 달 남짓, 정확히는 9주가 되었는데 울음을 그치려 들질 않는다. 녀석은 제 아기 침대와 딸랑이와 제 어머니와 나를 포함해 완전 신상품인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걸 싫어하는 것 같다. 배앓이예요, 의사들은 말했지만 이 아이는 먹는 것도 싫어하고 안 먹는 것도 싫어한다. 녀석은 자는 것도 싫어하고 안 자는 것도 싫어한다. 녀석은 빛도 싫어하고 어둠도 싫어한다. 녀석은 뜨거운 것도 싫어하고 차가운 것도 싫어하고 그 사이의 모든 온도도 싫어한다. 녀석은 분노로 차 있다. 나는 잭 더 리퍼의 아버지가 되었다. --- p.26 진실들은 모순된단 걸 아빤 네가 기억했으면 좋겠어. 티미야, 너는 크고 훌륭한 나라에서 살고 있단다 하고 내가 말한다면 그건 진실일 거야. 하지만 우리 나라는 한때 인간의 노예화를 허용했던 나라야 하고 내가 말한다면 그것도 진실일 거야. 진실은 유동적일 수 있어, 티미야. 사람들은 사랑에 빠져. 사람들은 사랑에서 발을 빼기도 해. 목요일엔 진실했던 것이 금요일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바로 당일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 p.58 “어쩌면”이라는 단어에 부도덕한 건 없어. 이 어쩌면책은 우리 인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어쩌면으로 꽉 차 있어─발견되지 않은 모든 진실, 잊혀버린 모든 진실, 알 수 없는 모든 진실로 말이야─그러니 자명하고 철석같고 기적 같고 영원한 진리에 접근한다는 믿음이 들 때조차 “어쩌면”이라고 말해도 괜찮아. --- p.61 한번은 우리 마술 쇼의 최종 리허설이 끝나고 메러디스가 야한 쇼걸 차림으로 풋라이트 앞을 지나가는데 일고여덟 살쯤 된 티미가 며칠은 기다렸다는 듯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엄마, 옷차림이 적절하다고 생각해?” 메러디스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냥 마술 쇼잖아.” 티미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방금 엄마라고 했잖아.” --- p.96 수년 전, 역사의 어느 막연한 시점에 태드가 잠결에 비명을 질렀다. “날 해치지 마! 날 해치지 마!” 방 두 칸 건너에서 책을 읽으며 누워 있던 나는 내 아들이 제 아버지 꿈을 꾸고 있다는 끔찍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 p.101 내 사랑은 지혜가 없다. 내 사랑은 지능이 없다. 내 사랑은 2월 어느 쌀쌀한 밤에 내리는 눈이 심오한 만큼만 심오하다. --- p.119 티미랑 태드에게 급히 덧붙이는 추신. 몇 년 있으면 너희 영어 선생님 중 한 분이 너희한테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이야기를 완전히 지어내보라고 요구할 텐데, 그러면 부디 한때 너희가 가상의 꼬리를 떠올렸던 것과 똑같은 최대출력의 상상력으로 그 과제에 대처하길 바라. 다시 어린이가 되렴. 너희만의 말하는 호랑이를 지어내고 너희만의 열역학을 발명해. 현실성은 잊어버려─너희가 현실 세계에서 얻고자 하는 건 이야기에 알아서 배어들 거야. 묘사하는 장, 설명하는 장, 배경지식을 전하는 장으로 너희 선생님을 (또는 너희 자신을) 지루하게 만들면 안 된단 걸 명심해. --- p.127 소설가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뭔가를 지어내기로 한 거고, 그렇지 않았으면 소설은 없었을 거야. 장편소설도, 영화도, 단편소설도, TV 드라마도, 워비곤 호수도, 『우주 전쟁』도, 『로미오와 줄리엣』도, 『율리시스』도, 스크루지도, 〈사인필드〉도, 빨간 모자나 룸펠슈틸츠헨이나 엄지공주도. 브로드웨이도 불이 꺼졌겠지. 할리우드도 셔터를 내렸을 거고. 아버지들도 자식에게 잠자리 이야기를 그만 들려줬을 거야. 모든 걸 고려해볼 때 고결한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세상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상상해보렴. --- p.146 이야기에서 설명은 마술사의 무대 뒤를 거드는 거랑 같아. 신비한 것이 기술적인 것이 되지. 기적이 진부함이 돼. 즐거움이 사라진단다. 경이도 사라지고. 한때 놀라웠던 게, 아름답기까지 했던 게 고리타분한 인과관계 속으로 사라지지. 가서 설거지나 마저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 p.160 2년쯤 전 나는 티미에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청했다. 반 시간이 지나자 티미는 내 서재에 들어와 말했다. “좋아, 다 읽었어. 무슨 얘길 듣고 싶어?” “그냥 네 의견,” 나는 말했다. 티미는 그때 어려서 쑥스러워하기 일쑤라 잠시 우물쭈물했다. “음, 얘기가 너무 솔직하던데,” 녀석은 말했다. “뭐가 솔직한데?” “왜 있잖아. 끝부분. 남자가 임질에 걸려서 택시에 탔다는 거.” “솔직한 게 나빠” “보통은 안 그렇지,” 티미는 말했다. “성병에 관해 읽으라는 사람이 아빠만 아니면.” --- p.274 “아빠는 너희가 직접 지어낸 이야길 원해. 쓰다가 막히면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를 돌이켜봐. 헉 핀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려보라고. 스스로 이렇게 물어봐. 나라면 그 상황에서 뭘 할까? 그런 다음 이렇게 물어봐. 나라면 그 상황에서 뭘 해야만 할까? 당연한 거지만 내 바람은, 너희가 어른에 가까워질 때 기필코 너희의 문을 두드릴 뭔가에 대비하도록 이 연습이 너희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너희는 선택을 해야 할 거야. 그리고 때로 너희의 선택은 라인홀드 니부어가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가장 근접한 해’라고 말한 걸 포함하게 될 거야. 이처럼 불가피하되 명확하지 않은 상황일 때 내가 매번 조언을 해줄 순 없을 테니까 그냥 지금 할게. 너희의 삶이 이야기인 척하렴. 그러니까 좋은 이야기를 쓰도록 해.” --- p.374 죽을 때가 다 되면 모든 게 빛을 띤다. 평화로울 때, 이를테면 청춘기에는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들이 언제부턴가 눈물이 날 만큼 소중해지는데, 혹시 늙음을 벌충해주는 장점이란 게 있다면 한때 어이없을 만큼 시시하게 보였던 것들의 진가를 알아보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잉글리시 머핀에 얹은 버터. 티미랑 방에 말없이 앉아 있기. 태드랑 판돈 없이 하는 텍사스 홀덤. 열다섯 살짜리한테 〈해피 버스데이〉 불러주기. 그런 시시한 것들이 의미로 가득해 보인다, 그 의미를 주로 놓칠 때가 많지만. 전쟁 기간에도 야간 매복 뒤 동이 터오는 냄새에서, 또는 황혼 녘 탁한 분홍색으로 물드는 강물에서, 또 어느 딱한 영혼이 제 두 다리를 잃고 올려다보는 몇 조각 하얗게 넘실대는 구름에서 그런 단순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 p.409~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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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그리고 쉰일곱 살에 첫아이를 본 늦깎이 아빠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작가의 ‘아빠 되기’ 산문 전미도서상, 제임스페니모어쿠퍼상, 데이턴평화문학상, “아마존 평생의 필독서 100권”, “[뉴욕 타임스] 20세기의 책” 등 많은 수식어가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을 기리지만 그는 무엇보다 전쟁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작가로 유명하다. 스물두 살이던 1968년, 당시의 많은 미국 젊은이들처럼 그는 원치 않은 징집으로 베트남전쟁에 다녀와야 했고, 그 참혹하고 분한 기억으로 1973년부터 50년 가까이 일곱 권의 장편소설과 두 권의 산문을 출간, 전쟁의 위선을 고발하고 개인들의 트라우마를 어루만져왔다. 반세기 동안 모두 아홉 권, 엄연히 과작이지만 이 사실이 무색할 만큼 그의 소설들은 지금도 미국 중고등학교 교과과정과 대학교 문예창작 수업, 전쟁/역사 다큐멘터리, 숱한 북클럽의 텍스트로 꾸준히 인용되며 사그라지지 않는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전쟁만을 천착한 건 아니지만 늘 전쟁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그에게 새로운 꼬리표가 주어진 건 2003년 6월이었다. 아빠라는 꼬리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오랜 고집 끝에 첫아이가 찾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쉰일곱 살, 아빠가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의 기억과 글쓰기에 시달리던 그에게 그 밖의 삶이 있음을 알려주는, 인생의 구원과도 같은 전환점이었다. 다만 새 삶을 시작하기에는 쉰일곱 살도 모르는 게 많은 나이였다. 늦깎이로 아이를 키우면서 그는 많은 인내와 많은 불침번과 많은 걱정과 많은 짜증을 견뎌야 했고, 그러면서 거대한 사랑을 깨달았다. 『아빠의 어쩌면책』은 소설가 팀 오브라이언의 드문 산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책으로, 첫아이가 태어난 2003년부터 작가 자신이 70대 중반의 나이에 다가선 2019년까지 16년에 걸쳐서 쓴 느리고 깊고 유머러스한 육아기요, 사색이요, 일기요, 가족 드라마다. 소설가를 업으로 삼아온 늙은 아빠가 더 늦기 전에 두 아들에게 전해주고픈 아빠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겼다. 전쟁, 기억, 추억, 글쓰기, 독서, 소설, 문학, 역사, 가족, 사랑, 인생, 기타 등등. 총 60개의 꼭지로 구성된 이 책은 때로는 아빠의 한스러운 기억을 돌아보고, 때로는 두 아들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때로는 두 아들에게 글쓰기와 역사와 도덕에 대해 “재택 학습”을 실시하고, 때로는 소설에 평생 몸담아온 사람답게 문학에 관한 깊은 상념을 펼친다. 팀 오브라이언은 “어쩌면”이라는, 삶도 죽음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가능성의 말로써 현재의 만남을 기리고 사후의 재회를 기약하며 더없이 소설가다운 ‘아빠 되기’를 실천한다. “아버지의 주요 임무는 교육이나 훈육을 하는 게 아니야. 아버지의 주요 임무는 곁에 있어주는 거야.” -20쪽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과거도 미래도 희망으로 끌어안는 가족 드라마 “‘어쩌면’이라는 단어에 부도덕한 건 없어. 이 어쩌면책은 우리 인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어쩌면으로 꽉 차 있어─발견되지 않은 모든 진실, 잊혀버린 모든 진실, 알 수 없는 모든 진실로 말이야─그러니 자명하고 철석같고 기적 같고 영원한 진리에 접근한다는 믿음이 들 때조차 ‘어쩌면’이라고 말해도 괜찮아.” -61쪽 『아빠의 어쩌면책』은 첫아이가 태어난 2003년, 자식에게 아빠를 알려줄 짧은 메시지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저자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그의 인생에는 수수께끼와 딜레마가 여전히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술주정뱅이였으나 문학을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거리감과 지독한 그리움, 인생에 커다란 한을 남긴 베트남전쟁, 그런 경험들과 늦은 나이 탓에 좋은 아빠가 못 될 수도 있다는 불안. 요컨대 인생은 짧은 메시지로 요약될 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아빠의 어쩌면책』은 16년 만에야 두꺼운 원고로 마감을 맞게 되었다. 그사이 저자는 쉰일곱 살에서 일흔세 살이 되었다. 전선을 물어뜯고 흙먼지를 디저트로 즐기던 두 아기는 말수는 줄고 반항은 는, 앵그리 버드와 마인크래프트를 사랑하는 열일곱 살과 열다섯 살 사춘기 소년이 되었다. 70대 소설가 아빠와 두 10대 아들 사이에는 소소한 의견 다툼과 짜증이 오가고, 몸에 맞지 않는 성급한 문학 담론이 오가고, 헤밍웨이와 플래너리 오코너와 포크너 등이 오가고, 재택 수업과 숙제가 오가고, 때로는 웃음, 때로는 지루함이 오가지만, 그 모든 건 함께할 세월이 많지 않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끝내 사랑으로 승화한다. 돌고 돌아 끝이 뻔한 가족 드라마. 하지만 베트남전쟁을 겪은 후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 저자는, 클리셰와 스테레오타입을 평생토록 경계해온 소설가답지 않게, 이 뻔한 드라마가 되도록 오래 이어지길 고대하고 있다. 『아빠의 어쩌면책』은 허구를 지어내는, 거짓말에 능숙한 소설가의 글답게 체념과 희망이 동시에 깃든 “어쩌면”이라는 말로 현실을 열어둔다. 지나간 일들과 가능했을 미래를 열심히 떠올리는 한 죽음은 어쩌면 끝이 아니며 육체가 없어도 존재는 생생히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티미는 이제 두 달 남짓, 정확히는 9주가 되었는데 울음을 그치려 들질 않는다. 녀석은 제 아기 침대와 딸랑이와 제 어머니와 나를 포함해 완전 신상품인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걸 싫어하는 것 같다. 배앓이예요, 의사들은 말했지만 이 아이는 먹는 것도 싫어하고 안 먹는 것도 싫어한다. 녀석은 자는 것도 싫어하고 안 자는 것도 싫어한다. 녀석은 빛도 싫어하고 어둠도 싫어한다. 녀석은 뜨거운 것도 싫어하고 차가운 것도 싫어하고 그 사이의 모든 온도도 싫어한다. 녀석은 분노로 차 있다. 나는 잭 더 리퍼의 아버지가 되었다.” -26쪽 말년의 소설가가 문학을 대하는 법 소설을 쓰고 믿는다는 것 “소설가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만 그리는 게 아니라 그 비슷한 세상 혹은 있을 법한 세상 혹은 있어야 할 세상도 그린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 나는 샌안토니오의 병원까지 형편없는 70마일 길을 차로 달릴 수 있었고 마땅히 달려야 했다. 나는 아버지를 품에 안을 수 있었고 마땅히 안아야 했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고 마땅히 말해야 했다. ‘아빠, 너무너무 사랑해요.’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우리 아버지가 죽었다가 일어앉아 그 품으로 나를 안아줄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괜찮아, 네가 아빠 사랑하는 거 아빠도 알아.’” -222-223쪽 『아빠의 어쩌면책』은 소설가 아빠가 처음부터 자신의 죽음을 상정하고 자식에게 남기는 글이다. 세월이 지나면 잊힐 아이들의 순수함과 기발함, 가족의 따뜻함이 전면에 부각되지만 그래도 그 밑에 깔린 정서는 이별을 앞둔 긴장과 슬픔이다. 이미 자신의 아버지와 아쉬움뿐인 헤어짐을 겪은 팀 오브라이언에게 이야기, 즉 소설이란 단순히 고상한 오락물이나 생계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다른 현실이 가능했음을 떠올림으로써 당장의 불완전한 현실을 견뎌내는 방법이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죽음을 봐야 했던 베트남전쟁 때가 그랬고 끝내 친해지지 못한 아버지와 이별했을 때가 그랬다. 그에게 소설은 일종의 마술이었고, 이것이 있으면 죽음도 마냥 끝은 아니어서 견딜 만했다. 그래서 그는 『아빠의 어쩌면책』 곳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의 의의를 반복적으로 들려준다. 그 배경에는 언젠가 자식들이 견뎌야 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일러주는 훗날의 팀 오브라이언, 죽어서도 자식을 챙기는 아빠가 있다. 『아빠의 어쩌면책』은 평생 소설을 쓰고 믿으면서 어느덧 말년에 다다른 한 소설가의 문학적 마음가짐을 고백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삶과 사람과 소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